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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쫄이 바지를 입다니!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5. 1. 22. 06:30728x90반응형
김정현 사회복지사 세 줄 일기
2025년 1월 7일 화요일, 날씨: 칼바람이 귀를 잘라내는 것 같다
(누가/무엇) 1. 직장 동료를 따라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필라테스 수업에 갔다.
(내용/의미) 2. 한시간 반동안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잘하는 사람을 곁눈질로 보면서 시늉만 냈다.
(생각/감정) 3. 힘들었지만 땀을 흘리고 나니 개운하기도 하다. 그동안 방치한 내 몸에게 미안하다.
[확장판]
제목: 쫄쫄이 바지를 입다니!
글쓴이: 김정현
퇴근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칼바람이 불어와 귀가 달아날 듯 아리다. 얼른 차에 뛰어들어 시동을 켰지만 바로 출발하지 못한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책부리는 건 아닐까? 못 따라하면 어쩌지. 옷은 또 왜이래...’
며칠전 퇴근길에 1층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길래 들어갔더니 건강생활지원과 황과장님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퇴근 안 하세요? 다른 약속이라도 있으신가봐.”
황과장님은 조금 있다가 운동하러 간다신다. 가까운 지역주민센터에서 필라테스 수업이 있어서 거길 가려고 옷 갈아 입고 몸을 푸는 중이란다. 황과장님은 일 년 째 참석하고 있단다. 와, 대단해요, 어쩐지 몸매가 좋더라, 나도 운동을 하긴 해야 하는데 시간이 안 맞네요 어쩌고... 입바른 소리를 해가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는데 아니나 다를까,
“팀장님도 같이해요. 지난주에 개강해서 아직 자리 있어요.”
하며 내 뒷걸음질을 딱 잡아 버린다. 그리고 한 마디 더.
“저녁 8시가 넘어서 하니까 시간도 가능하죠? 팀장님도 이제 관리해야 돼요. 날씬해질려고 하는게 아니라 우리 나이에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은 필수예요. 저도 맨날 어깨 아팠는데 지금은 어깨도 덜 아프고 다리 쥐나는 것도 없어졌어요. 나랑 같이 가요.”
속사포로 맞는 말만 쏘아대는데 피할 데가 없다. 소심하게 한 마디 해 본다.
“너무 못 따라하면 챙피할 것 같아요. 보통 그런데 가면 날씬한 사람들만 있어서 더 못가겠던데. 옷도 막 딱 붙고...”
“걱정마요. 주민센터에서 하는 거라 70넘은 할머니도 와요. 통통한 사람도 많아요. 레깅스를 입으면 내 몸이 보이니까 운동효과가 좋긴하지만 부담되면 아무거나 편하게 입으세요.”
이리하여 일주일 뒤에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동사무소 필라테스 수업에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용기를 내어 레깅스(일명 쫄쫄이 바지)도 하나 사서 퇴근전에 갈아입었다. 도저히 봐 줄 수 없어서 착장 확인은 생략하고.
민망함과 두려움을 가득 안고 교육장에 들어가니 황 과장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매트도 깔아주고 자기 운동기구도 빌려준다.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살펴보니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 이십 여명이 앉아 있다. 한명도 빠짐없이 쫄쫄이 바지를 입고 눕거나 앉아서 다리를 쩍쩍 벌리거나 허리를 뒤로 젖히며 준비운동에 집중한다. 남의 뱃살, 허벅지에는 조금도 관심없다는 표정. 그렇다면 나도 겉바지를 벗고 쫄쫄이 바지로 시작해 볼까(여전히 부끄럽다, 벽에 거울이 너무 많다).
강사님이 오시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음악을 배경으로 선생님의 단호한 구령 소리가 이어진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으신다. 걷고 꺾고 펴고 휘고 들고 내리고 뻗고 오므리고...한 시간 반동안 죽을동 살동 따라하고 나니 세수할 힘도 없다.
옷 갈아입고 언제 잠들었는지 출근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한번도 깨지 않았다. 일어서려니 허리, 다리, 팔에 근육통이 잔물결처럼 밀려온다.
미안하다 내 근육아. 면목없구나 관절들아.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다. 앞으로 꾸준히 운동하면서 사이좋게 잘 지내보자꾸나.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다 보면 지금보다 조금더 건강한 나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정말 잘 쓰셨습니다. 김정현 선생님 개성과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셨어요. 흐름은 부드럽지만, 주제는 뚜렷합니다. 주제(망설임, 반성/자기-돌봄)와 직결되는 결정적인 장면에서 시작하셨고, 플래시 백을 거쳐 다시 주제로 돌아옵니다. 독자는 술술술 재미나게 읽다가 진지해지는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듭니다. 게다가 곳곳에 김정현 표 재치를 유쾌하게 심어 놓으셨어요. (예시: ' 속사포로 맞는 말만 쏘아대는데 피할 데가 없다')
무엇보다도, 내용이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입니다. 안동 지방에 사시는 김정현 선생님께서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하신 이야기 자체는 특수하죠. 김정현만 아는 김정현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안에 보편적인 주제(망설임, 반성/자기-돌봄)를 담으셨어요. 누구나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실제로 참여할지 말지를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하잖아요? 소재/주제를 잘 포착하셨습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습니다. '걷고, 꺾고, 펴고, 휘고, 들고, 내리고, 뻗고, 오므리고...' 이 대목이 참 좋습니다. '고'를 반복하시니 기본적으로 재미있고 리듬감이 느껴집니다. '죽을동 살동 따라하신 한 시간 반'을 단어 몇 개로 감칠맛나게 요약하셨어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시간이든, 장소든, 논리든, 단조롭지 않게 펼치고 오므립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데 전혀 반복하지 않는 듯 느껴지게 만듭니다. 김정현 선생님처럼요.
<참고>
본 포스트에 사용한 글은 김정현 사회복지사께 공식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 받았습니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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