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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란?상담 공부방/해결중심 사례관리 자문 2025. 4. 4. 10:42728x90반응형
‘비자발적 클라이언트’란?
한국어로는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라고 통칭하지만, 실은 두 가지 개념이 존재한다.
첫째, 법적인 의무 때문에 원조전문가를 반드시 만나야 하는 법정 클라이언트(mandated clients). 이 클라이언트 군은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질렀다고 의심을 받아서 사회복지사를 포함하는 원조전문가를 만나지 않으면 형사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사회복지사를 안 만나면 체포된 후 법정에 불려가서 판사를 만나게 된다, 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이런 설명을 들으면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클라이언트 군을 만나지 않으니까. 그러면 이 개념은 어디에서 왔을까. 외국에서 왔다. 그러니까 외국에는 사회복지사를 만나지 않으면 형사적으로 처벌을 받는 클라이언트 군이 존재한다. 사회복지사 관점에서 다시 표현하자면, 사회복지사에게 클라이언트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적 권한이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이런 클라이언트 군(mandated clients)을 만나서 돕는 사회복지사는 대개 공무원이다.
범죄를 저질러서 수감되었다가 풀려나면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 보호관찰 업무를 거의 경찰이 맡는데, 외국에서는 사회복지사도 이런 일에 종사한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교정직 공무원인데 사회복지사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이런 일에 종사한다.) 아동보호 영역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미국 영화에서 본, 가정에서 학대나 폭력 사태가 발생했을 때 아동을 뺏어가는 '아동복지국' 소속 사회복지사, 모두 공무원이다. 부모에게서 아동을 분리 조치하려면 행정권은 필수 조건일 테니까. 아울러, 명백하게 정신 질환를 앓는데 병식이 부족해서 강제로라도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사람을 공식적으로 돕는 사회복지사도 법적인 권한을 부여받은 공무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일을 맡은 사회복지사는는, 적절한 이유 없이 협조하지 않는 사람 행동을 공식적으로 강제할 수 있다.
물론, 법적인 강제력이 있어도 이를 무조건 휘둘러서 클라이언트 행동을 좌우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혹은 이 범주에 속하는 클라이언트가 법적인 의무 때문에(처벌 조항 때문에) 겉으로만 수동적으로 응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비협조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소한 사회복지사가 아무런 무기도 갖추지 않고 무방비 상태로 클라이언트를 만나진 않는다. 한편, 법정 클라이언트를 돕는 사회복지사가 법적인 의무(처벌 조항)을 협상 카드로서 적절하고 현명하게 활용한다면, 완전히 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도울 때처럼 함께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어쨌든, 외국에서 발행된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 관련 문헌은 대체로 이렇게 법적인 의무 때문에 강제로 사회복지사를 만나야 하는 '법정 클라이언트(mandated clients)'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뚜렷하게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가족이나 이웃 주민 등이 가하는 사회적 압박 때문에 반강제로(?) 원조전문가를 만나야 하는 무자발적인 클라이언트(nonvoluntary clients). 이 클라이언트 군을 가장 쉽게 이해하려면, '정신건강센터에 가서 사회복지사를 만나고 그에게 도움을 받아서 술을 끊지 않으면, 당장 이혼해 버리겠다'고 배우자에게 협박 내지는 최후 통첩을 받아서 본인은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변화 의지도 없지만 이혼만은 막고 싶어서 억지로 기관을 찾아온 사람을 떠올리면 된다. 이런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사에게 법적, 제도적인 통제권은 없지만, 만약 이 사람이 사회복지사를 만나서 적어도 협조하지 않는다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잃게 되므로, 어쨌든 사회복지사 손에는 이 사람과 협상하고 설득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카드'가 존재하게 된다. 즉, 어쨌든 사회복지사에게 통제권(협상 레버리지)이 있다는 점에서는 법정 클라이언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는 '법정 클라이언트(mandated clients)'가 아니라, '무자발적인 클라이언트(nonvoluntary clients)'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그런데 여기엔 맹점이 있다. 외국 사람들이 언급하는 '무자발적인 클라이언트(nonvoluntary clients)'는 주로 자기 발로 기관을 찾아온다. 그러나 한국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무자발적인 클라이언트는 기관에 찾아오지 않는다. 거꾸로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를 찾아가야 한다. 대체로, 이 사람이 처한 사정을 딱하게 바라보는 주변인(주로 가족이 아닌 이웃 사람 등)이 본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원조 기관에 연락해서 걱정되니까 찾아가 보라고 요청해서 찾아가게 된다. 그래서 놀란 클라이언트에게 문전에서 박대당하는데, 사람을 포기할 수 없는 사회복지사는 어떻게든 설득하려 애쓰고, 그럴수록 클라이언트는 저항하고... 이 악순환 패턴을 경험한다.
이상에서 논한 개념을 정리하겠다. 우선, 한국어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영어로 번역하면 'Involuntary clients'가 된다. 이 Involuntary clients는 두 가지 하위 개념으로 나뉜다. 첫째, 법적인 의무가 있어서 사회복지사를 포함하는 원조전문가를 만나지 않으면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법정 클라이언트(mandated clients)'. 둘째,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강력한 사회적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조전문가를 만나러 오는 '무자발적 클라이언트(nonvoluntary clients)'. 한국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굳이 분류하자면 '무자발적 클라이언트'에 가깝겠지만, 자기 발로 걸어서 기관을 찾지 않는 사람 다수가 존재하므로,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를 '한국적인 무자발적 클라이언트(K-nonvoluntary clients)'라고 개념화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고려해서 전체 클라이언트 군을 분류할 때 세 가지 요소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클라이언트의) 자율성. 다소 모호한 개념이지만 편의상 사회복지사를 포함하는 원조전문가를 만나서 실질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자발적인 클라이언트)을 수평선 한쪽 끝에 두고, 이들이 보이는 특징을 자율성이라고 통칭하자. 둘째, (사회복지사의) 통제권. 이는 클라이언트 행동을 사회복지사가 (최소한도로)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셋째, 필요 혹은 욕구. 아마도 이 요소는 모든 클라이언트가 가졌으리라. 이제 세 가지 요소를 조합하면 자연스럽게 클라이언트 군을 나눌 수 있다. 먼저, 수평선에서 반대쪽 끝에는 ‘법정 클라이언트(mandated clients)’가 서게 된다. 이들은 자율성은 대단히 낮지만 (사회복지사의) 통제권은 높다. 다음으로, 법정 클라이언트 옆 조금 더 자율성이 높은 지점에 ‘무자발적 클라이언트(nonvolulntary clients)’가 설 수 있다.
‘한국적인 무자발적 클라이언트(K-nonvoluntary clients)’는 어디에 서게 될까. 한국적인 무자발적 클라이언트는 특정한 욕구가 있고 도움이 필요하지만, 자율성도 없(거나 대단히 부족하)고 그를 돕는 사회복지사에게 통제권도 없다. 쉽게 말해서, (주변인이 보기에)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너무 도움이 필요하지만, 본인 삶을 스스로 개선하려는 의지도 상당히 부족해 보이고, 원조 전문가를 만나서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법적인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외국 사람들이 만든 개념틀 안에서 굳이 이해한다면 ‘법정 클라이언트’보다는 ‘무자발적인 클라이언트’ 쪽에 조금 더 가깝겠지만, 강력한 사회적 압박이 없(거나 적)으므로 (그래서 스스로 기관을 찾아오지 않고, 사회복지사가 먼저 찾아가야 한다) 외국 개념틀 안에 딱 들어맞지도 않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원론적으로) 한국적인 무자발적 클라이언트는 남이 보기에 아무리 상황이 안타까워도 본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도울 방법이 없다.
마음이 답답한가? 진이 빠지는가? 절망스러운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사람은 포기하지 못하지만, 상황은 (경우에 따라서) 포기해야 한다. 아니다. ‘포기’는 우리 상황에 적당치 않다. ‘인정’이 훨씬 더 좋겠다. 맥락을 잘 따져보니, 애초에 (원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에 도전했달까. 비유컨대, 나는 상대를 반드시 꼬셔야(?) 해서 협상 테이블에 앉았는데, 상대는 아예 협상장에 나타나지 않거나, 협상장엔 나타났지만 테이블에 앉을 기미도 없고 그저 구석에 서서 고개를 돌린 채 어떤 패를 들었는지 전혀 안 보여주는데, 나에게는 내 놓을 카드가 전혀 없달까. 그러므로 ‘도대체 왜 안 될까?’가 아니라 ‘당연하지’에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가 아니라 ‘누가 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야’에서 시작해야 한다. 인사는커녕 문도 안 열어주는 클라이언트 집 앞에 선 바로 이 지점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협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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