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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 일기(D+1377)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5. 11. 1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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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그림자 놀이

    글쓴이: 이재원

     

    "싫어! 싫단 말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봄아, 제발... 11시가 넘었다. 이제 좀 자자. 맨날 이런 식이면 네 엄마는 피곤해서 어떻게 사니? 너 잘 때 조금만 소리 내면, 엄마가 바로 깨서 돌보느라 얼마 못 자. 그런데 잠 드는 시간까지 이렇게 늦어지면 엄마는 좀비가 된단다. 게다가 요즘 엄마 회사에서 많이 바쁘단 말야. 인간적으로다가 정말 이러지 말자. 아빠가 이렇게 말하면, 귀염둥이 우리 딸이 금방 딱 알아들...으면 좋으련만, 네 살배기 아이가 알아 들을 리 만무.  

     

    악몽(?)은 7시부터 시작된다. 자고로, 아이는 루틴으로 산다. 마지막으로 침대로 향하기 전에, 매일 따박따박 루틴 활동을 밟아야 한다. 우리 딸은 일단, '뽀로로 유치원'으로 놀아야 한다. '뽀로로 유치원'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소꼽장난 세트. 어디에서 얻어 왔나, 언젠가부터 이 놀이터가 우리집 거실에 자리잡았는데, 봄이는 무조건 이 세트에서 뽀로로, 패티, 루피, 에디, 포비랑 그네를 타고, 시소를 타며 놀어야 한다. 

     

    다음엔 몇 가지 경로로 나뉜다. 각종 블럭으로 비행기며 자동차를 만들거나, 책장에 가득 꽂힌 동화책을 무더기로 빼와서 언덕처럼 쌓은 후에 하나씩 읽는다. (아, 엄마랑 아빠가 읽어준다, 가 맞겠다.) 혹은, 제 방에 만들어 놓은 인디언 텐트에 들어가서 뒹굴면서 놀거나, 아빠랑 여러 색 물감을 도화지에 뿌린 후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작품을 만든다. 가끔은 엄마 아빠가 담요 네 귀퉁이를 잡고 그네를 만들어서 흔들어 준다. 

     

    만약, 8시가 넘을 때까지 봄이를 욕조로 끌어들여서 뜨뜻한 물에 씻기지 못한다면? 10시 넘어서까지 쭈욱 미친듯이(?) 논다고 봐야 한다. 끙... 짜식이 너무 똑똑해졌다. 이런 시간 흐름을 뻔히 아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욕조로 안 들어 가려고 버틴다. 아니,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싫어요! 목욕하기 싫어요~ 더 놀래요!" 엄마, 아빠도 요리조리 좇아 다니면서 애걸복걸하지만, 들은 척도 안 하고, 깔깔거리며 잘도 피해 도망간다. 

     

    여기쯤에서 설명해야겠다. 나는 1975년에 태어났고, 아내는 1976년에 태어났다. 이젠, 둘 모두 반백살에 도달했다. 남들보다 늦게 만나 결혼하고, 노산 중에서도 더 노산으로 귀하게 아이를 얻었다. 아내가 46세였을 때 봄이를 낳았으니, 거의 1% 가능성을 뚫고 태어났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봄이 태명도 '기적'이라고 붙였고, 지금도 종종 '기적아~' 라고 부른다. 그런데 기적을 만들고 보니 사정없이 우리 허리가 꺽였다. 

     

    봄이는 키가 크다. 기어다닐 때부터 매주 쇠고기 안심을 사다가 구워서 먹였는데(지금까지 두 마리는 족히 먹였다), 고기에 철분이 많이 들어서 그런지 키가 빨리 컸다. (어린이집 또래 친구보다 15cm는 더 크다) 하지만 키가 크면 자연스럽게 몸무게도 많이 나간다. 최근에는 17kg을 넘어섰는데, (엄마는 말할 필요도 없고) 아빠도 봄이를 안을 때 슬슬 버겁다. 늙은 엄마, 아빠에게 봄이는 행복과 짐을 동시에 안겨줬다. 

     

    다시, 욕조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어가자면, 요즘엔 봄이가 하루 종일 너무 잘 뛰어 다니며 땀을 많이 흘려서, 반드시 욕조에서 제대로 씻겨야 한다. 일단 욕조에 들어간다면, 엄마가 뽀로로 친구들 장난감으로 워낙 재미있게 놀아줘서 1시간 동안은 재미있게 논다. 하지만 요 녀석이 너무 똑똑해서, 씻고 나면 엄마, 아빠가 재우려고 시도하니, 어떻게든 욕실 쪽으로 안 가려고 버틴다. 그러니 매일 밤마다 옥신각신, 설왕설래. 

     

    '어떻게 하면 봄이를 빨리 재울 수 있을까?'

     

    나는 '침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다. 특히, 밤에 봄이는 침대를 어떻게 느낄까? 일단, '재미있게 노는 공간'은 아니라고 느끼겠지. 오히려 반대로 느끼겠지. 마치 정글 탐험가 발목을 슬쩍 잡아끌어서 결국 질식해서 죽게 만드는 늪처럼, 침대가 신나게 노는 자기를 집어 삼키는 녹여버린다고 느끼겠지.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오로지 침대 반대 쪽으로 도망가겠지. 침대를 이렇게 느끼는 한 쉽게 재울 수는 없겠지. 

     

    '침대를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 순 없을까?'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침대는 왜 '늪'이어야만 하는가? 침대를 놀이터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은가? 침대에서 엄마, 아빠랑 신나게 놀 수 있다면? 너무 기대가 되어서 빨리 목욕하고 침대에 눕고 싶다면? 맞다. 침대를 '늪'이 아니라 '놀이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보자. 봄이가 어서 빨리 침대로 달려가자고 먼저 제안하도록 만들 수 있는 놀이를 제안해 보자. 봄이 취향과 성향을 충분히 반영해서 만들자. 

     

    그렇게 첫 번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바로 그림자 놀이. 며칠 전, 어린이집에 데려다가 주려는데, 베란다를 통해서 거실 안쪽까지 아침 햇빛이 걸어 들어왔다. 봄이가 "어? 그림자네? 아빠, 그림자가 왔어요." 라고 말하더니 야구공, 양말, 우유 팩 등을 거실 바닥에 던지면서 그림자를 만들고 놀았다. "아빠, 야구공/양말/우유가 그림자를 만들었어요." 시간이 없어서 대충 정리하고 집을 나섰지만, 이 기억이 생생했다. 

     

    봄이가 좋아하는 그림자를 안방 천정에 만들면 어떨까? 휴대전화 플래시 빛을 천정 방향으로 쏘고, 봄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을 색종이로 오려 만들어 그 빛에 쏜다면? 별, 달, 하트를 만들어서 비추고, 뽀로로 친구들을 직접 비추면서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언젠가 봄이가 어린이집에서 상연한 '그림자 연극'을 보고 와서 재미있었다고 말했는데, 안방에서 엄마, 아빠랑 그림자 연극을 직접 만들면, 싫어할 수가 없다. 

     

    그래서 토요일 밤에 처음으로 시도해 보았다. 봄이가 목욕한 후에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발라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다. "봄아, 우리... 옷 다 입고 침대에서 천정에 그림자 비추면서 놀까?" "그, 그림자 놀이? 좋아요! 이히히." 아싸, 걸려 들었다. 봄이에게 내복을 입힌 후에,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색종이를 오려서 만든 별, 달, 하트를 휴대전화 플래시 빛으로 비춰서 거대한 그림자를 하얀 스크린에 만들었다. 

     

    "우와~ 아빠, 별이야! 달님도 있네? 하트도 보여!" 

     

    봄이는 엄마도 급하게(!) 불렀다. 침대에서 함께 놀자고. 봄이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엄마가 뽀로로 친구들 장난감도 들고 침대에 눕자, 안방 천정은 봄이 전용 극장이 되었다. "뽀로로야, 안녕? 나는 봄이야. 나는 네 살이야. 우리 함께 놀자." "봄아, 안녕? 나는 뽀로로야. 초대해 줘서 고마워. 우리 함께 신나게 놀자." 봄이는 내가 정확하게 예상한 방식대로 반응했다. (아니, 봄이가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는 놀이라니깐!) 

     

    우리는 이렇게 놀다가 자연스럽게 잠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일요일 오후가 되었다. 우리 가족은 올림픽 공원 잔디밭에서 행복하게 뛰어놀고, 집에 돌아와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는데, 봄이가 아빠 귀에 속삭였다. "아빠, 우리 침대에서 그림자 만들고 놀자." "그러면, 빨리 목욕하고 침대로 가자. 괜찮지?" "네!" 침대를 '늪'이 아니라 '놀이터'로 인식하는 봄이를 보며, 아빠는 웃었다.

     

    2025년 11월 17일, 이재원 기록.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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