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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믿는다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0. 5. 3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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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잘 안될 것 같은데요? 사회복지사들이 가족치료자도 아니고, 여러 가지 현장의 요구 때문에 즉각적으로 써 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해요. 불필요하다고 느낄 거고 관심이 적을 거에요.

    이런 말을 참 많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고 신뢰하는 선배, 동료들에게. 그 이유는, 내가 “해결중심 강독 수업을 하고 싶다”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굉장히 합리적인 말이다. 일리 정도가 아니라 이리, 삼리는 있는 말이다.

    일단은 마음을 접어두고 있었다: 내 글이나 해결중심모델의 대가들이 남겨 놓은 책, 논문이나 대화록을 읽으면서 배경지식과 직, 간접적인 임상 경험을 풍부하게 가르치고 배우고 질문하고 답하고 토론하는 공부 방식 - 강독 스터디.

    그러던 중에 내제자, 안혜연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인성과 진정성, 호기심과 열정을 두루 갖추고 있는 분인데, 해결중심모델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내가 마침내 만난 것이다. 이분에게 딱 어울리는 공부 방식이 강독 스터디라고 생각했다.

    4월부터 매주 일요일 오전 6시 30분부터 9시까지, 세계적인 해결지향 가족치료자(임상사회사업가)인 매튜 셀렉만의 글을 한 줄씩 읽고, 설명하고, 질의/응답 나누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으아~ 안 선생님은 어찌 느끼시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나야말로 “여전히” 해결중심모델을 깊이 있게 배우고 싶어하는 학생 아니던가! “I’m STILL hungry: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나는 거의 매일 해결중심모델을 논하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공부하는데도 또 더, 그 위에 더, 더, 더 공부하고 싶고 내 지식과 실천 능력을 향상시키고 싶다. 늘 말하는 거지만, 너무 높은 수준에 있어서 나를 따라오려는 마음을 먹으면 거의 곧바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독보적인 대가가 되고 싶다.

    안혜연 선생님과 강독 스터디를 시작하자, 신기한(?) 일이 생겨났다. 내가 대가가 되는 일보다 훨씬 더 신나고 희열이 느껴지는 일이, 성장가능성 있는 똘똘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성장시켜서 나처럼, 아니 나를 훌쩍 뛰어넘는 해결중심 실천가로 키워 내는 일이 더 의미 있고 더 신나는(!) 일이라는 확신이... 겨우 두 번째 강독 시간이 끝나면서부터 이미 들기 시작했다.

    원래 나는 이 봄에 사회복지 보수교육계에 데뷔가 예정되어 있었다. 서울시사회복지사협회를 비롯하여 각 지역 협회의 보수교육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스케줄이 취소되면서 걱정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물론! 나는 내가 잘될 줄 확신하고 있(었)다. 나만큼 노력하고 공부한 사람이 (적절하게 알려지기만 한다면) 결코 실패할 수는 없다. 오로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도 돌아보아야 했기에... 뭔가 스스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강독 프로그램을 확대하자.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쓴 원고를 사람들과 함께 읽고 정말 깊이 있게 나누어 보자.” 물론, 나는 아직(앞으로도 상당히) “듣보잡” 강사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만 꼬셔도(?) 될 거다. 다만 서 너 명만이라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선발(?)하고 최선을 다해서 가르친다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다.

    이런 배경으로 시작한 소그룹 해결중심 강독 프로그램. 두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첫째,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좋아서 총 세 개 반(월요반, 화요반, 일요반), 총 인원 11명이 내가 쓴 원고를 읽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우리 스터디는 책을 아주 그냥 갈아 마시는 거라고, 그렇게 겁을 줬는데도 하겠다고 오신 분이 10명이 넘는다. 그리고 이 모든 분들이 내 프로그램을 따라 오고 있다: 우와!

    둘째, 이 항목이 정말로 대단한데, 학생들이 스스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내 글의 전반부는 해결중심모델 개발 역사와 철학적 배경을 포함해서,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학생들이 힘들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이 참 많았다: 학생들 대부분이 “스스로, 깊게 공부할 생각 없이 감나무 밑에 편안하게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는, 깊이가 얕은 사회복지사들”아니던가!

    그. 러. 나. 놀라운 대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부분은 추상적이고 어렵기 때문에 지루해 할 거야” 내지는 “이 부분은 지루해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부분을 통과하고 있는데, (ㄱ) 모두 즐겁게 통과하고 있고(혹시... 내가 속고 있는 건가?) (ㄴ) 추상적인 내용을 구체화시켜서 자기 현장, 자기 세팅, 자기 클라이언트에게 적용해 보고 있다!

    헐~!

    진짜로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해 보고 적용해 보기 시작했다. 해결중심모델을 적용한다는 말은 보통은 해결중심모델 특유의 질문 테크닉을 구사한다는 뜻이지만,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면, 강점관점의 원리를 깨우쳐서 꼭 질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강점관점 가치/철학을 적용하기 시작한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강독반 학생들이 바로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헐~!

    이 강독 프로그램은 좁은 길이다. 대중 강연의 포맷으로는 적당치 않다. “그게 어디 되겠어? 어줍잖게 배운 질문 몇 개 구사한다고 클라이언트가 좋아지겠어? 원인을 파헤치지 않고 문제를 개선시킨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거야?” 라는 상식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다. 그나마 강점관점의 취지에 공감하고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진정성이 있어야 통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아직 원고의 1/5선을 넘지 않은 초기이고, 스터디에 참여한 첫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이렇게 열심히 따라오시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 비관적으로 생각하자면) 학생들이 보여주고 있는 변화는 모두 나를 속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동료들의 진정성을 믿는다. 가치 있는 지식 체계와 임상 경험을 정말 깊이 있게 배우고 싶다는, 그래서 원조전문가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싶다는, 이들의 마음을, 빠알간 단심을 믿는다. 앞으로도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갈 변화의 첫 장을 믿는다. 작은 변화가 정말로 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체험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에서나 나오는 판타지가 아니라 각자 살아가고 있는 직업적 현실 속에서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믿는다. 내 학생들을 믿는다.

    =====

    해결중심모델은, 테크닉의 묶음이 아니다. 테크닉이 전면에 나와 있는, 대단히 정형화된 모델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해결중심모델은 관점이고, 철학이며, 태도이다. 강점관점을 어떻게 해서든 실제로 구현하려는 노력이다. 따라서 우리는 해결중심모델에서 테크닉과 함께 관점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강점관점 위에 테크닉을 살포시 얹는다면? 그리하여 작은 기적을 발견한다면? 그 작은 기적이 우리와 우리가 돕고 있는 클라이언트를 마침내 변화시킬 수도 있다.


    “다 주거써. 나 말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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