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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생님은 다르셨습니다.상담 공부방/해결중심상담 교육 후기 2020. 7. 2. 23:32728x90반응형
2020년 봄 학기, 모교(성공회대학교)에서 해결중심모델을 강의했다. 모든 강의가 끝난 후에, 학생들에게 간단한 소감문을 받았다. 그 중 인상적인 글을 소개한다. 꾸밈 없이 담백한 글이다. (*학생에게 이 글을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공식적으로 받았음.)
저는 그렇게 질문을 잘 하는 학생은 아닙니다. 수업을 들으면 큰 문제없이 이해했고, 질문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매주 제출해야 하는 질문은 솔직히 저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질문할 게 없는데 뭘 해야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써서 내야 하니까 계속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나서 토요일 자정이 다가올 때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위해 고민하고 다시 필기한 것을 읽고 하다 보니 ‘아하’하고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이전에는 ‘가르쳐 주신 것’에 대해서만 배우고 이해했다면, 지금은 ‘그 이상의 것’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탐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의 격려와 피드백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과제를 제출해도 내가 잘했는지 못했는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알 수 없었습니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성적표에 찍힌 ‘A+’을 보고 내가 잘했음을 지레짐작 하며 그렇게 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다르셨습니다. 제 질문에 대해 글로 설명할 수 없다면 전화로, 더 좋은 자료가 있다면 사진을 첨부해서라도 저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셨습니다. 매번 좋은 질문이라고 칭찬해주실 때마다 어깨가 하늘까지 치솟았습니다. 단순히 학문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더라도, 학교 선배로서 늘 도움이 되고자 하셨고, 제 진로나 고민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너무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좋고 고맙다고 하셨는데, 저도 단순히 감사하다는 말을 넘어, 뭐라고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한없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기말 리뷰 때처럼 하고 싶은 말을 물으셨을 때 우물쭈물 제대로 말도 못하고 내성적이고 말주변도 없어서 제 마음이 잘 표현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선생님과 만나게 되어 다행이고 감사했습니다. 이 이상 더 표현할 말이 있을까요?
이 모든 일이 사랑스러운 모교 후배들의 순수함 때문에 생겼다. 매주 월요일마다 동영상 강의 파일을 준비해서 학교 웹사이트에 올리면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과제를 내 주었다: 강의 내용에 대해서 (1) 새롭게 배운 점, (2) 느낀 점, (3) 실천할 점, (4) 질문(1개 이상 3개 이하)을 적어서 제출할 것. 사실, 나는 내가 학생들에게 "매주 반드시 질문을 하라"고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질문이 있다면 자유롭게 하라" 는 정도로 말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착한/착실한 내 후배들은 내 말을 "매주 반드시 질문을 하라"고 인식했고, 일주일 내내 질문할 "꺼리"를 떠올리려고 애를 썼던 거였다. 후배들은 내 강의를 들으면서 열심히 필기를 했고 그렇게 필기한 내용을 두 번, 세 번 들여다 보면서 질문을 만들어서 내게 보냈던 거였다. 어쨌든, 이 과정을 통해서 질문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니, 그리하여 배운 것 이상을 탐구하는 학생이 되었다니, 참 다행이다. 후배들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기특하다!
그리고 피드백! "저는 그동안 대학을 다니면서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라는 말... 너무 슬프지 않나? 대학교가 학문의 전당, 진리의 상아탑, 까지는 아니더라도, 명색이 고등교육 기관인데...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나는 지금 교수님들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4년 내내 학생에게 개별화된 피드백을 단 한 번도 주지 않는 한국의 고등교육 시스템을 문제 삼는 거다.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무엇으로 유명한지 알고 있는가? 바로 "튜터링(tutoring)" 시스템이다. 이는 학생들(tutee)에게 튜터(tutor)를 붙여주고 1:1로 개별화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특히, 학교 선배나 기타 동료가 아니라 교수가 튜터 역할을 맡음으로써 인격적이고 깊이 있는 지도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 이제 보니, 내가 이번 학기에 학생들에게 제공한 서비스가 거의 튜터링 시스템에 준하는 고급 서비스였다. 학생이 쓴 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만 있다면... 학생들은 성장한다.
지나치게 열정이 많은 선생이라서 매주 30명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학생들이 매주 제출한 레포트 속 질문에 대해서 그 질문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최대한 진지하게 답하는 선생이었다. 이 낯선 스타일의 선생이 무척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착한 후배들은 못말리는 선생의 열정을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소화해 주었다. 그리고 성장했다. (나도 한없이 고맙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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