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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칭찬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상담 공부방/해결중심상담 교육 후기 2020. 7. 3. 10:06728x90반응형
이재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구체적인 형식이 없다고 하셔서, 편지 형태로 남기려고 합니다.
코로나 19사태로 온라인 강의가 낯설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이렇게 강의를 끝까지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상담 및 가족치료를 들으면서 조금은 낯선 수업 방식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 기억에는 많이 남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저에 대해 질문을 받는 환경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제 이야기를 한다는 게 더 이상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게 됐거든요.솔직히, 해결중심모델 수업에서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내담자를 대하는 태도나 전제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동안 저는 치료자의 관점만 주목해 봤지 내담자의 경험에 주목했던 적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 시각이 조금은 편협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주류의 논리가 전부 옳을 수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마음으로 인정하는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결중심모델은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저희 가족에 빗대어 많이 생각했습니다. 왠지 이 수업을 들으면 저희 가족이 생각났습니다. 그게 해결중심모델이 현실적이라는 증거겠죠? 요즘 드는 생각인데, 기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뿐, 기적 그 자체는 없어요. 해결중심모델에서도 기적이 없다는 말에 동감할 거 같네요.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이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았던 점도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전화 통화할 때마다 저 자신이 부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살면서 칭찬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칭찬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지만요. 그리고 기말 과제 리뷰를 해 주실 때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가를 받는다기보다는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강의보다 마음이 좀 더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평가받고 점수 매겨지는 게 익숙해진 대학생활이 조금은 지겨웠나 봅니다.)
일일이 통화하시고 강의 준비하시고 피드백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셨을 텐데, 제가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모습을 보시고 조금은 위로를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학기 동안 수고하셨고, 저도 선생님도 조금은 쉬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생에게 이 글 공유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았음.)
"제 직업이 칭찬하는 겁니다. 그리고 칭찬할 때 조금 세게 하는 건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아무나 칭찬하지는 않는 답니다. 제 기준이 꽤 높거든요."
라고 말했지만, 놀랐다. "살면서 칭찬을 제일 많이 들었어요" 라니. 냉정하게 돌아 본다. 이런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칭찬을 많이 했던가?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칭찬을 즐겨 하긴 했지만, 아무 때나 하지는 않으려고 노력했다. 학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당한 칭찬을 하고 싶었다. 누구나 칭찬이 과하면 "아니에요" 라고 답하는데, 이런 답변은 무시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학생이 한 말을 읽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칭찬에 인색한 사회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평가받고 점수 매겨지는 게 익숙해진 대학생활이 조금은 지겨웠나 봅니다."
문득,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학부 3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중간 고사 기간이었다. 이영환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사회복지 정책론 시간이었다. 학생이 40명쯤 되었을까, 새천년관 3층 교실이 가득 찼다. 보통은 조교가 들어와서 시험을 감독하곤 했는데, 그날은 교수님께서 직접 들어오셨다. 교탁 위에 서신 교수님께서는 미소를 띈 채 학생들을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 여러분, 둘씩 짝을 지으세요."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옆에 있는 학우와 짝을 지었다. 그랬더니 교수님 말씀:
"자, 이제부터 시험문제와 답안지 종이를 나누어 드릴 건데요,
지금 정한 짝과 함께 상의해서 답을 적으세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어젯밤을 꼴딱 샜는데... 모의 답안지 만들어서 지금까지 달달달 외워서 들어왔는데... 왜 내 노력의 결과를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솔직히, 이때 실제로 답안을 어떻게 작성했는지, 어떻게 제출했는지, 성적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영환 교수님의 미소 띈 얼굴 표정은 아직도 잘 잊혀히지 않는다.
이번 학기에 내가 학생들을 가르친 방식이 어디에서 왔을꼬, 생각해 보았다. 성공회대학교에서 배운 것 같다. 이영환 교수님께 배운 것 같다. 많은 한계 속에서도, 언제나 학생들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셨던, 교수님의 가르침에서 온 것 같다. 모교에서 내가 배운 것을 극단까지 밀어 붙여 보고 싶었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고 싶었다.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면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교육은 개인이 하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거대한 구조가 중요하다. 어떤 한 개인의 노력으로 교육이 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는 거대한 시스템,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확인했다. 선생이 다르게 접근하면 학생들은 또 금방 적응해서 그 안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변화가 조금 더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한국의 대학은 애초부터 머리가 좋고(그마저도 그냥 기억력 정도가 좋은 친구들이지만) 우수한 인재를 뽑아 놓고선 지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퇴보시키는 방식으로 교육을 한다. 자유로운 지적 여행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 있는 좁은 길로, 재미 없는 길로 몰기만 한다. 학생을 사각 닭장에 넣고 안전하게만 키우려고 한다. 신나게 열매를 따 먹으려고만 하지, 열매를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씨앗이 열매로 자란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성장은 죽음이다. 전혀 다른 존재로 질적인 비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장에는 댓가가 따른다. 두려움과 고통을 수반하는 죽음을 거쳐야 더 발전된 존재로 발전한다. 이 댓가는 선생과 학생이 함께 치루는 것이지만, 선생이 좀 더 치뤄야 한다. 선생이 좀 더 힘들어야 학생이 힘든 과정을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다.
내가 좀 더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도록 귀한 가르침을 선사해 준 사랑하는 모교 후배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할지 알려주고 보여준 이번 학기 내 고객들에게 감사한다.
<내가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여러분께서 써 주신 소감문을 읽으면서 진솔함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제가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후배들을 만나서 배움을 돕는 일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는 미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농담처럼 "못되면 선생 탓, 잘되면 학생 덕"이라고 말했지만,
혹은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여러분께서 제 지론을 확실히 증명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여러분이 가장 확실한 증거랍니다.삶은 늘 만남과 헤어짐이 교차하지요?
보통 헤어짐은 괴로운 일이지만,
배움의 장에서 겪게 되는 만남과 헤어짐은
행복함만 남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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