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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우 2km 달려 놓고 펑펑 울어버린 썰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1. 7. 1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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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 나이 46세, 내 나이 47세. 옛날 같으면 손자 볼 나이인 우리 부부에게 새 생명이 불현듯 날아 들었다. 날아 들었다, 는 표현이 적절한 이유는, (당연하지만) 고령으로 시험관 시술을 계속 실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에서 도움을 받을 때는, 이라고 그럴 듯하게 쓰고 실제로는 매일 아침마다 아내 배에 주사 바늘을 꽂으면서 작정하고 노력할 때는 실패했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 모두 말은 명시적으로 나누지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거의 포기하고 있던 그 일이 성공해 버렸다. 확률상 5%도 안되는 그 일을 아내가 해냈다.  

     

    사실, 임신을 준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내에게 건강한 생활을 요구받았다. 정당한 요구였다. 열달 동안 키우는 사람은 엄마지만, 적어도 생물학적으로는 나도 책임 절반을 져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일 같이 엽산을 먹고, 어머니께서 보내 주신 한약을 매일 같이 입에 달고 살고(효험을 봤다!), 몸에 나쁜 음식(과자, 술 등)은 줄이거나 끊고, 슬슬 운동도 시작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운동은 글쎄... 내가 무슨 운동을 해야 할꼬?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혀 오던 신체 활동...을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나는 기본적인 신체 조건으로만 보면 운동에 적합해 보이기도 한다. 키도 크고, 체중도 아주 많이 나가지는 않는 등, (문자를 쓴다면) 허우대는 멀쩡하다. 하지만 나는 순발력이 약하고, 동체 시력(움직이는 물체를 포착하는 시각 능력)은 더 떨어져서 학창 시절이나 군대 시절 늘 힘들었다. 특히, 군대 시절 내내 가장 많이 하는 스포츠인 축구 때문에 힘들었다. 빨리 뛰지도 못하고 순발력도 안좋아서 맨날 신나게 뛰어다니기만 했다. 이 축구가 지긋지긋해서, 병장 달고 가장 먼저 마음 먹은 일이, 나는 전역할 때까지 절대로 축구는 안한다, 였을 정도다. 

     

    그러나 사실 더 큰 문제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져온 신체적인 열등감이었다. 어머니는 막내 아들이 강인하길 바라셨나보다. 늘 내 신체적인 약점을 지적하시면서 기를 죽이곤(?) 하셨다: "너는 운동을 너무 못해", "너는 순발력이 너무 떨어져", "그러니까 맨날 맞고 다니지", "허우대만 멀쩡하고 실속이 없어" 등등. 성인이 된 후에는 어차피 신체적인 능력을 보여줘야 할 기회가 적거나 아예 없지만, 학창시절에는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쌓여온 신체적 열등감 때문에 무척 힘들었다. 선생님이 안계시면 늘 야수가 득실득실 많은 정글(!) 같았던 고교 시절에는 늘 위축되어 있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우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실내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결정했다. 혼자 살 때부터 장식용(?!)으로 집에 비치되어 있던 중국산 저렴한 실내 사이클링 머신이 있었으니, 이걸 타면 되겠다 싶었다. 집 한 켠에 괜찮은 자전거가 있지만, 2019년 추석 시즌에 한강에서 100km 거리를 달리다가 장렬하게 어깨 쇄골뼈가 부러진 전력이 있어서 끌고 나가긴 무서웠다. 그렇게 실내 사이클링부터 시작했다. 첫날은 딱 20분만 달렸다. 할 만했지만, 시간을 늘려갈 자신은 별로 없었다.


    <사회복지사를 위한 자기-돌봄, A부터 Z까지: 관계 맺기 - 마음 정원 가꾸기>

     

    사회복지사를 위한 자기-돌봄, A부터 Z까지: 전문가로서 능력을 계발하기: 양보다는 질(Quality: Not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하는, 원서 번역 프로젝트! "사회복지사를 위한 자기-돌봄(Self-care), A부터 Z까지" (2021년 6월호 원고를 공유합니다.) Q(Quality: Not Necessarily Quantity) 양보다는 질 원문: La..

    empowering.tistory.com


    그 다음 날은, 우리 집 앞 올림픽 공원 옆길에서 빨리 걷기를 30분 정도 했다. 아내가 임신하기 전, 아내와 함께 늘 다니던 길이라서 익숙했고, 평소 다니던 속도에서 조금 빨리 걸으면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냥 빨리 걷기만으로 운동이 될까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뛰어 보았...는데, 200m를 지나 300m도 채 되기 전에 숨을 헐떡이면서 포기했다: '아서라... 300m도 뛰지 못하는 게 무슨 달리기냐...' 가만 있자... 운동을 안한지 얼마나 되었을꼬. 6, 7년은 족히 된 것 같았다. 사실, 그동안 너무 힘든 시기를 거쳐 오느라 운동 같은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었다.  

     

    헌데, 실내 사이클링을 계속 하다보니 문득, 예전 기억이 났다. 운동 못한지 6, 7년이 아니라 2년쯤 된 거네! 2019년 봄부터 여름까지 내 취미생활이 야밤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누비는 라이딩이었다. 할인 행사에서 구매한 70만원짜리 자전거를 벗 삼아 밤 10시에서 12시 사이에 매일 한강에 나갔다. 그리고는 한동안 사이클링에 완전히 미쳐서(?!) 두 달 만에 한강에서 하루 만에(실제로는 약 4.5시간) 100km 거리를 달렸다. 자전거 속도가 시속 30km에 육박하고 주변에 사람마저 없을 때,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물아일체 경지를 느낀 적도 있었다. 말로는 설명 못할 신비한 경험이었다. 

     

    이 기억이 되살아나자, 실내 사이클링 시간이 늘어났다. 스포츠는 멘탈이 중요하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몸이 자전거를 기억하는 듯 했다. 거의 새벽에 한강에서 라이딩을 하면서 느꼈던 물아일체 경지를 다시 느끼고 싶어졌다. 한 마디로, 내 피가 다시 끓었다. 그리하여 사이클링 시간이 점점 늘어나서 퐁당퐁당 격일로 100분 동안 집안에서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매일 사이클링만 하는 것보다는 조깅을 섞어주는 게 좋겠다 싶어서 격일로(화/목) 한강까지 약 5km 정도 걷다 뛰다 하는 조깅 코스도 설정했다. 물론, 여전히 조깅 코스에서는 300m도 헥헥대며 뛰었고 자괴감을 종종 느꼈다. 

     

    그러나 한 달 넘게 꾸준히 실내 사이클링과 야외 조깅을 퐁당퐁당 섞어주면서, 서서히 상승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조깅할 때 한 번에 뛸 수 있는 거리가 300m에서 약 800m로 늘어났다. 속도는 별로 빠르지 않았지만 지구력이 좋은 내 강점을 살려서 조금 힘들어도 참고 뛰었다. 역시, 사이클링보다는 발을 땅에 붙이고 뛰는 조깅이 훨씬 더 힘들게 느껴졌다. 실내 사이클링은 시간을 길게 뛰고, 심박수가 분당 150회 이상 올라가도 숨이 차지는 않는데, 조깅을 할 때면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무척 힘들었다. 역시 조깅은 호흡만 잘 돼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정말 큰 관문이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우리집에서 한강까지 5km 조깅 코스를 설정했는데, 시작점에서 1km 떨어진 지점에 약 20m 오르막길이 있었다. 보기에는 그리 경사가 크진 않지만, 47세 초보 러너에게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이제 1km 정도는 쉬지 않고 뛸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올라왔지만, 이 오르막길 때문에 도저히 연결해서 달릴 수가 없었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다가 이 지점에 가까워지면 아예 머리 끝까지 올라가서 허공으로 올라갈 정도였다. 쉽게 말해서 영혼이 탈곡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에잇, 씨발..." 이 지점 앞에서는 늘 욕이 나왔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던가. 나는 상대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실내 사이클링에 좀 더 비중을 두기로 했다. 조깅으로는 1시간 정도 걷다가 뛰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힘이 드는데, 실내 사이클링은 100분 동안 분당 심박수 150으로 달려도 견딜만 했다. 속옷이 흠뻑 젖고 겉옷까지 축축하게 젖을 때까지 타도 자전거는 재미있었다. 조깅이야 그냥 사이클링에 도움이 되는 보조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로 했다. 뛰다가 힘들면 걷고, 그렇게 쉬엄쉬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너무 잘 하려고 들면 오히려 잘 안될 것 같아서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 2021년 7월 8일, 오후 5시. 나는 평소처럼 운동복을 갖추어 입고, 아이폰을 담을 밴드를 허리에 차고, 신발끈을 맨 채 집을 나섰다. 7시에 줌 수업이 있어서 빨리 다녀와야 했다. 빠른 걸음으로 매번 뛰기 시작하던 지점에 섰다. 왠지 몸이 가벼워서 처음부터 걷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100m, 200m, 300m... 초반이니까 당연히 몸이 가벼운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500m, 600m, 700m... 까지도 몸이 가벼워서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km 지점에 이르자 20m 오르막길이 보였다. 평소 같으면 멈추어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을 텐데, 몸이 가벼운 느낌이 많이 들어서 그냥 뛰어 올라가보자 싶었다. 

     

    어... 어... 어... 무척 신기하게도, 오르막길을 힘차게 뛰어 오른 후에도 몸이 가벼웠다. 숨도 차 오르지 않았다. 모든 게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삶에서 이런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는 판단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 겪는 일이라서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뭔가 중요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다가 눈에서 물이 나왔다. '이건 뭐지? 내가 왜 울고 있지? 이건 좋은 느낌 같은데 왜 눈물이 나지?' 뭔가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난 것 같은데, 이 순간 뛰는 걸 멈추고 싶지는 않아서 계속 달리는데 눈에서는 펑펑 계속 물이 나오고... 나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겨우 참으면서 2km까지 달려갔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5km 조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해 봤다. 우선 드는 생각은, 내가 뭔가 벽을 뚫어 버렸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벽? 내가 그어 놓고 있었던 신체적인 벽을 뛰어 넘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내 사이클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쌓아온 든든한 체력이 오르막길을 뛰어 오르는 순간, 폭발적으로 튀어나온 상황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신체적인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온 나로서는 늘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피했기 때문에, (적어도 신체적으로는) 뭔가 벽을 깨어 부수는 경험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이런 역사적인 경험을 하고 보니, 나도 모르게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운동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보면, '허... 거 참 웃기시네' 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겨우 2km를 이어서 뛰었을 뿐인데, 오르막길도 20m에 불과한데... 이걸 해 냈다고 감격해서 펑펑 울기까지야. 하지만 나에게는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내 딛었을 때처럼 대단히 이례적이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집까지 좀 더 걸으면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6, 7년 전에 참담한 일을 겪고 난 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완전히 지체되고 망가져 버렸던 내 삶이 오늘 신체적으로 완전히 회복세로 접어 들었다는 신호인지도 몰라.' 아울러, 집에 도착했을 때 알았다. 추측이 아니라 확신해도 된다는 사실을.


    이제 나는 조금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있다. 8월 말까지는 5km 조깅 코스를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뛰려고 한다. 9월 말까지는 꾸준하게 5km 마라톤 연습을 하려고 한다. 10월 말 전에는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진다는 조건으로) 공식 마라톤 경기에 참가해서 5km 공식 기록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2022년 봄에는 마라톤 대회에서 10km를 완주하려고 한다. 안전하게,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나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작은 변화는 큰 변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니까. 내가 경험한 작은 기적도 더 큰 기적으로 이어질 테니까. 나는 할 수 있으니까. 나는 할 수 있으니까. 나는 할 수 있으니까.

     

    나는 할 수 있으니까.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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