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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포가 뭐 별거냐?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7. 24.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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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부외과 김준완 교수 연구실>

     

    안정원(소아외과): 창민이라는 아기 말하는 거지? TOF(심장 질환) 아기. 

    김준완(흉부외과): 어. 유착이 심해서 수술도 힘들었는데... 수술은 그래도 버텼는데, 패혈증이 왔어. 

    안정원: (탄식하며) 아이고...

    김준완: 우리 과 전공의 창민이랑 이름이 같아. 그래서 다들 조금 특별하게 생각했던 아기야. 로봇같은 창민이도, 처음으로 마음 준 아기고. 아기 엄마하고 라포도 많이 생겼어. 야, 라포가 뭐 별거냐? 저 사람 우리 아기 열심히 봐 준다, 아기 엄마 보니까 우리 엄마 생각난다, 그럼 그게 라포지. 

    안정원: 안가? 

    김준완: 가야지. 갈 거야. 발이 잘 안떨어지네. 가서 말씀 드려야지. 갈게... 

     

    <중환자실 복도>

     

    김준완: (정중하고 담담하게) 창민이 심장이 간신히 뛰고는 있지만, 멎은 거나 다름 없습니다. 창민이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창민이가 그동안 중환자실에서 많이 외로웠을 텐데, 마지막 가는 길, 위로가 될 수 있게 지켜 주세요. (정중하게 인사하고 사라진다.) 

    창민 부모: 으흐흑... (바닥으로 무너진다.)


    사회사업가만큼 '라포(rapport)'라는 말을 사랑(?)하고 자주 쓰는 전문가도 없는 것 같다. 동료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가만히 들업 보라. 우리는 조금만 주민/이용인과 친해지면 '라포가 형성됐다'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을 거의 '친해졌다'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러니 거의 아무 때나 쓰곤 한다. 

     

    헌데, '라포(rapport)'는 학문적/전문적으로 보면 어떤 의미일까? 

     

    일단 어원부터 알아보자. 라포(rapport)는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서, 접두사 re(back/again 뒤로/다시)와 ad(toward 향해서), 어근 portare(carry 나르다)을 합성해서 만든 단어라고 한다. 뜻 풀이를 해 보면, '내가 상대에게 마음을 보냈더니, 나에게(toward), 다시 돌아(back/again) 온다(carry)'는 뜻이다. 

     

    1990년 보스턴 대학교 Linda Tickle-Degnen과 하버드 대학교 Robert Rosenthal이 쓴 논문, "The Nature of Rapport and Its Noverbal Correlates"에 따르면, 라포란 어떤 개인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두 사람이 상호작용할 때만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은 라포에는 세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고 썼다: (1) 상호적 관심(mutual attentiveness) 상대가 말하는 내용에 집중하고 관심을 갖는다, (2) 긍정적 태도(positivity) 두 사람이 서로 매우 친절하며, 서로 걱정하고 관심을 보인다, (3) 호혜적 조화(coordination) 두 사람이 서로 공통된 이해를 공유한다. 라포가 형성된 두 사람은 에너지 수준, 목소리 톤, 그리고 신체적 언어가 비슷해진다. 한 마디로, 라포는 '서로 이해하고, 생각과 정보를 공유하며,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조화로운 유대관계'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신연희 외, 2017). 

     

    이상과 같은 학문적/전문적 정의는 개념적으로 엄밀하고 정확할 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라포가 뭐냐?'는 질문에 답을 얻은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나는 라포(rapport)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포(rapport)가 형성되었다, 는 말을 어떤 뜻으로 사용하는가?'

     

    라포: 의미있는 관계

    라포를 형성하다: ~와 의미있는 관계를 맺다

     


    2018년 여름, 나는 모 대학교 학생상담실에서 의뢰를 받아서 어떤 대학생 커플을 상담하게 되었다. 커플 상담으로 의뢰받았지만, 사실은 두 사람 중에서 여성을 만나는 개인 상담이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갈등하고 싸우는 이유가 대부분 여성 파트너의 '지랄 맞은(?!)' 성격었기 때문이다. 첫 회기에 간단하게 두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과연 그랬다. 

     

    (참고: 본 사례에 나오는 내담자는 자신의 사례를 교육적인 목적으로 지나치게 사적인 내용이 아닌 한 책이나 블로그에 소개해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동의하였음.) 

     

    겉으로만 보면, 참 신기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평상시 학교 친구들에게는 반대로 너무나 착하고 순하게 대했지만, 남자 친구에게만은 너무나 가혹하고 못된 말을 서슴치 않고 내뱉곤 한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욕 한 마디 못하는 그녀였지만, 남자 친구가 조금이라도 서운하게 행동하면(남자 친구 말에 따르면, 특별히 서운하게 만든 일이 없어도 수시로) 광분을 하면서 남자친구에게 폭언을 던지고 심지어는 폭행(?)까지 감행한다고 했다. 그녀는 폭행 사실도 순순히 인정했다. 솔직히, 자신도 자신이 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고백했다. 

     

    자세한 상담 내용을 공개할 순 없지만, 요약하자면... 이 여성은 어릴 적 어머니께서 일로 바쁘셔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형성된 '버림 받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결국 남자 친구에 대한 집착과 폭언/폭행을 야기하는 것 같다고 통찰했다. 다른 친구들은 '진짜 내 사람'이 아니라서 '솔직한 자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지만, 늘 잘 보이려고 웃고 착하게 대하지만, 남자 친구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내 사람'이므로 평소에 잘 하지 못하는 언행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담 초기에는 이 내담자가 대단히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나(상담자)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하지도 않고, 피상적인 이야기를 주로 꺼내곤 했다. 하지만 내가 내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꾸준히 진솔하게 대하자, 서서히 변화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상호 간에 신뢰가 싹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15회기가 끝나고 상담을 종결했을 때, 이 내담자가 인사를 하다가 말고 가방에서 종이 쪽지를 꺼내서 내게 건냈다. 그동안 상담을 받으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과 변화에 대한 기쁨,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담담하면서도 솔직하게 적은 편지였다. 이 짧은 쪽지 편지에는 우리가 서로 의미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단어마다 숨겨져 있었다. 내담자가 숨겨 둔 증거를 하나씩 줏으면서 편지 행간을 걷던 나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심장병으로 고생하다가 거의 사망 직전에 다다른 영아의 부모에게 가기 직전, 사망선고를 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면서 김준완 교수가 친구 안정원 교수에게 말한다: 라포가 뭐 별거냐? 저 사람 우리 아기 열심히 봐 준다, 아기 엄마 보니까 우리 엄마 생각난다, 그럼 그게 라포지. 학문적으로 엄밀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우리 심장에 날아와서 콱, 박히는 문장이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는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냥 '친해진다'고 라포가 형성되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관계가 되어서 상호적인 믿음이 생겨야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묻고 싶다: 그대는 원조전문가로서 사람들과 어떻게 의미 있는 관계를 맺었는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목차)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배우는 원조전문가의 태도 [시즌 2] 1. 산모와 태아를 도와 주고 싶었어 장겨울: 이 환자 분, 잘 하면 성공할 수도 있겠는데요? 추민하: (마우스를 스크롤해서 한 차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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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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