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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지식 공유하기(기타)/시네마 떼라피: 위안을 주는 영화 2022. 2. 1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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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영지: 오늘부터 수업하게 된, 김영지에요. 

    지숙: 자기 소개 안 해 주세요? 

    영지: 돌아가면서 하면 어때요? 저 먼저 할게요. 저는 김영지구요, 성남에 살고, 음... 대학은 휴학 중이에요. 휴학을 좀 길게 했어요. 그래서, 나이가 적진 않아요. 

    은희: 저는 김은희구요, 대청 중학교 다녀요. 저는, 만화 그리는 거 좋아해요. 

    영지: 저도 만화 좋아해요. 

     

    은희: 안녕히 계세요. 

    영지: 은희라고 했지? 잘 가~

     

    (Scene #2) 

     

    영지: 은희는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돼요? 

    은희: 아는 사람이요? 

    영지: 네. 얼굴을 아는 사람들 말이에요. 

    은희: 한 50명? 

    지숙: 야, 50명은 훨씬 더 돼지. 초등학교 6년에, 중학교 1년. 400명은 될 걸? 

    은희: 그럼 한 400명이요? 

    영지: 그러면 그 안에서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돼요?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여러분이 아는 사람들 중에,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Scene #3)

     

    영지: (차를 따라 주며) 우롱차야.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 

    은희: 너무 울어서 죄송해요. 

    영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은희: 이따 집에 가면, 오빠가 저 죽일 거에요. 

    영지: 오, 오빠가? 

    은희: 네. 맨날 개 패듯이 때려요. 

    영지: 그럼 넌 어떻게 해? 

    은희: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하고 기다려요. 대들면 더 때려요. 

     

    (Scene #4)

     

    은희: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질 적이 있으세요? 

    영지: 응. 많아. 아주 많아. 

    은희: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시는데도요? 

    영지: (고개를 끄덕인다)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 보려고 해. 아,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Scene #5)

     

    영지: 고맙다. 잘 읽을게. 

    은희: (고개 숙여 인사한다.)

    영지: (고개 숙여 인사한다.) 

    은희: (가다가 다시 영지에게 달려와서 안기면서) 선생님! 

    영지: 응? 

    은희: 전 선생님이 너무 좋아요. 

     

    (Scene #6) 

     

    영지: 은희야

    은희: 네?

    영지: 너, 이제 맞지 마.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 절대로 가만 있지 마. 알았지? 

    은희: 네. 

    영지: 약속해. 

    은희: (영지와 손가락을 걸면서 약속한다.)

     


    (주성철 / 씨네21 편집장) 은희 주변 어른 중에서, 은희를 은희 자체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유일한 어른이 바로 영지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영지 선생님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보라 / 영화, '벌새' 감독) 영지는 아무래도 작가로서의 제 목소리를 가장 많이 담은 캐릭터에요. 내가 세상과 나누고 싶은 세계관을 영지를 통해서 말하려고 했거든요. 그래서 영지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작은 중학생, 은희에게 설부른 조언이 아니라 그냥 우롱차 내어 주고 은희의 고민을 들어 주다가 둘 사이에 관계가 쌓였을 때 쯤에 은희에게 정말 용기를 내서 어떤 식으로 개입을 하잖아요. 상대방의 존엄을 지키면서 바라봐 주는 어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1992)였다. 미술시간에 실습 과제로 나무로 돌하르방을 깎았다(팔뚝만한 크기). 그런데 가방에 도시락만 들고 다니던 게르르고 껄렁껄렁(?)한 동급생 A가 자기가 깎던 돌하르방을 몇 주 동안 교탁 아래에 보관했다. 그가 일진에 가까운 친구였기 때문에, 반친구들 중에서 이 돌하르방을 건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정치경제 과목 시간에 어떤 일(!)이 터졌다:

     

    정치경제 과목 샘은 평소 굉장히 점잖은 분이셨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예민한 모습을 보이셨다: 그러니까 그날따라 지나치게 떠들고 껄렁껄렁한 모습을 보이던 A를 교실 앞으로 불러 내셨다. 그리고 따귀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건장한 A가 반항하자... 샘은 교실 안을 뒤집으면서 매질할 연장(?)을 찾으셨다. 그러다가 A가 교탁 밑에 보관해 오던 나무 돌하르방을 발견! 정치경제 샘은 그 돌하르방으로 A를 때리기 시작하셨다... 정도로는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 같고, 거의 밟으셨다. 솔직히, 당시에 나는 정치경제 샘이 A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물론, A는 죽지 않았다. 그냥 몸 여러 곳에 피멍이 들었고, 며칠 학교에 나오지 않는 방법으로 항의하고... 그걸로 이 사건은 대략 끝이 났다.

     

    벌써 지금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과거지만, 영화 '벌새(2018)'를 보고 있노라니... 당시에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소환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화에 잘 묘사되었듯이) 아직, 일상적인 폭력이 어디에서나 정당화되는 시절이었다. 선생님들은 무슨 매질 면허라도 있는 듯, 검은색 전기 테이프를 각목에 두른 '사랑의 몽둥이'를 자연스럽게 끼고 교실에 들어오곤 했고, 실제로 대단히 자주 사용했다. 그리고 위에 소개한 에피소드처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뭔가 속이 불편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그리하여 저렇게 개 패듯이 패는 이유는 교육이니 사랑이니 따위 명분과는 이미 관련이 없고, 지극히 개인적인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생각, 아니 직감이 자연스럽게 나를 포함한 모든 학생들 마음에 들곤 했다. 

     

    나는 영화 내용 중에서 주인공 은희의 아버지 캐릭터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이 캐릭터는 주인공도아니고, 속내를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도 없으며, 출연 분량도 많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경험한 아버지 모습 중에서 한쪽 면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으로는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겠다는 본능에 가까워 보이는 책임감도 있지만, 폭력에 무심하고 어떤 때는 적극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며(은희가 오빠에게 일상적으로 당하는 폭력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슬쩍 춤바람이 난 듯도 보이고, 아픈 딸이 안쓰러워서 울먹이기도 한다. 음... 이 아버지는 오로지 살아남는 과업, 즉 생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생존 외에 제대로 된 남편 노릇, 제대로 된 아빠 노릇은, 알지도 못하고, 배운 적도 없고, 앞으로 알거나 배우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한편, 은희와 수평적으로 교류하면서도 (감독 표현에 따르면) '상대방의 존엄을 지키면서 바라봐 주는 어른' 모습을 보여주는 영지는 어떤가. 영화 속에서는 영지의 개인사가 상당 부분 생략되어 있어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영지도 뭔가 (자기 수준에서) 엄청나게 헤매고 있고, 끝없이 고민하는 존재라고 느꼈다. 어쩌면 1994년 현재 영지가 처해 있는 상황도 은희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래서 영지가 '나는 다 알아서', 혹은 '나는 이미 모두 초월했기 때문에' 은희에게 조언해 준다는 느낌보다는, '(사실은) 내가 너라서', '나 역시 너처럼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제발 한없이 찌질하게 (약자만 골라서) 폭력을 휘두르는 환경에 무력하게 굴종하지 말라는, 끝내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너의 목소리를 내라'고, 마치 자신에게 방백처럼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챙겨보아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도움을 주는 자 vs 도움을 받는자' 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대단히 섬세하게 따져보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보라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자: "영지는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작은 중학생, 은희에게 설부른 조언이 아니라 그냥 우롱차 내어 주고 은희의 고민을 들어 주다가 둘 사이에 관계가 쌓였을 때 쯤에 은희에게 정말 용기를 내서 어떤 식으로 개입을 하잖아요. 상대방의 존엄을 지키면서 바라봐 주는 어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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