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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짜 학대'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지식 공유하기(기타)/시네마 떼라피: 위안을 주는 영화 2022. 10. 1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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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석권하고 있을 때 '조용히' 2등을 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조용한 희망' 이라는, 다소 재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 붙은 드라마다. 웬 가난한 싱글맘 이야기, 라고 하기에 흥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시험 삼아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았다가 완전히 빠져들어서, 마지막 회까지 단숨에 정주행하면서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최근 약 15년 사이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외국 드라마는 HBO 역사 초기에 제작된 극사실주의 형사 드라마, '와이어'였다. 하지만 '조용한 희망'을 보고 나서 가장 재미있는 외국 드라마가 바뀌어 버렸다.

    이유는? 첫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받을 수 밖에 없게 된)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국가로부터 사회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적나라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둘째,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처참한 현실을 충분히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그리면서도,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어디에 털나는 다소 민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가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참말로 많다. 어쩌면, 가난과 절망을 기본적으로 달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마음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사회복지사가 모든 어려움을 경험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일 첫 번째 노력으로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고 믿는다.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조용한 희망' 함께 읽기. 드라마 주요 장면을 함께 보고, 의미를 깊게 음미하는 글을 나눈다. 오늘은 제 2화 첫 번째 이야기.


    네이트: 알렉스? 네이트예요.

    알렉스: 네이트,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네요.
    네이트: 그래요. 일찍 출근하려고 ‎페리 타려다가 봤거든요. '저 여자 꼭 알렉스 같네' 했죠. 그런데 맞군요. 얘가 매디군요.
    알렉스: 네.
    네이트: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왜 바닥에서 야영 중이에요? 뭐죠? 발이 묶인 거예요?
    알렉스: 아뇨. 선착장에 일찍 도착해서 좀 잤어요. 몇 시죠? 폰 배터리가 다 돼서요.
    네이트: 6시 5분요. 청소기는 뭐예요?
    알렉스: 요즘 청소기에 꽂혀서요. 끼고 있고 싶어요.
    네이트: 그렇군요, 페리가 왔네요. 물건 옮기는 거 도와줄까요?
    알렉스: 괜찮아요, 다른 페리 탈 거예요. 고마워요. 반가웠어요.
    네이트: 무슨 다른 페리요?
    알렉스: 좀 더 재우려고요, 얘가… 그 얘기예요. ‎졸려 해서 좀 더 재울래요.
    네이트: (잠시 생각하다가) 있죠, 이렇게 일찍 ‎출근 안 해도 되는데, 어디 태워줄까요? 아침도 사고?
    알렉스: 아뇨, 난… 우린 괜찮아요, 네.
    네이트: 차에 핸드폰 충전기도 있어요. 스타벅스 들러요. (진지한 표정으로) 돕게 해줘요.

    <해설>
    알렉스는 1화에서 천신만고 끝에 거의 새벽 쯤 페리 선착장에 도착했지만, 돈 한 푼 없이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어린 딸 매디를 안고 주저 앉았다. 그렇게 밤을 지새고, 어느새 아침이 되었지만, 여전히 막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예전부터 알렉스를 짝사랑하던 동네 남성, 네이트가 출근하다가 알렉스를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다.
    당연히, 알렉스는 네이트에게 상황을 숨기려고 한다. 청소기를 옆에 두고 뭐하냐는 질문에 '요즘 청소기에 꽂혀있다'고 아무 말이나 하고, 아침에 섬으로 출발하는 페리를 타지 않으면 저녁에나 배가 있는데 '다른 페리를 탄다'고 둘러댄다. 친절하고 세심한 네이트는 알렉스가 말과는 다르게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러면서 알렉스가 체면 상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다. 알렉스는 괜찮다고 거절하지만, 네이트는 외면하지 않는다.
    네이트는 예전부터 알렉스를 좋아했지만, (안타깝게도) 알렉스는 네이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 상황은 기본적으로 여전히 알렉스에게 미련이 남은 네이트가, 그 연정을 기반으로 알렉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네이트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라서 인간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알렉스를 그낭 지나치지 못한다. (아... 어쩌면 알렉스는 이 사람을 선택했어야 했다.)


    욜란다: ‎들어와, 또 소환장이면 당신 뒷구멍에나 박아.
    알렉스: 알렉스예요.
    욜란다: 누구?
    ‎알렉스: 알렉스요.
    욜란다: 당신, 다이슨 도둑. 애는 이 안에 들이지 마요.
    알렉스: 있죠, 해명할게요.
    욜란다: 나도 해명할게요. 밸류메이드, 무시. 밸류메이드, 무시. ‎내가 누굴까요? 당신 전화기죠.
    알렉스: 교통사고가 났어요.
    ‎욜란다: 그랬겠죠.
    알렉스: 아니, 진짜로요. 20번 도로에서 사고 나서 차가 박살 났어요. 사진도 있어요.
    욜란다: 맙소사, 당신 차예요? 내가 틀렸네요. 그래도 돈은 못 줘요. ‎그래서 온 거면.
    알렉스: 긴급 상황이었어요.
    욜란다: 고객은 신경도 안 써요. ‎당신이 안 왔다는 것밖에 모르죠. 내가 돈 못 받으면 당신도 못 받아요.
    알렉스: 청소는 다 했어요, 욜란다. 3시간 동안 뼈 빠지게 했다고요. 중간에 소변도 안 봤어요. 청소용품도 사고 기름도 넣었어요. 레지나 집 왕복하느라 2시간을 허비했고요.
    욜란다: 나라고 좋은 거 없어요. 돈도 못 받고 귀한 고객도 잃었죠. 인생은 때론 엿 같잖아요.
    알렉스: 알았어요, 다른 빈자리는 정말 없나요? 뭐든 할게요.
    욜란다: 염두에 두죠.
    알렉스: 일이 진짜 필요해요. 급여 기록이 진짜 필요하다고요. 약속해요, 다시는 망치지 않을게요.
    욜란다: 유니폼은 저기 두고 갈래요?

    <해설>
    네이트에게 도움을 받아 식사와 휴대전화 충전을 한 알렉스. 그의 차를 타고 욜란다(청소업체 사장)를 만나러 간다. 욜란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급여를 받으려는 의도. 알렉스가 처한 상황을 다시 정리한다: 뭐라도 혜택을 받으려면 무조건 직장은 있어야 한다고 해서 직장을 구하려는데, 일을 하려면 딸 아이를 맡겨야 한다. 해서 어린이집을 구해야 하는데, 혜택을 받아서 어린이집에 등록하려면 직장이 있어야 한단다.
    그런데 냉정하게 나오는 욜란다. 처음에는 알렉스가 다이슨 청소기를 들고 튄 도둑인 것처럼 취급하더니, 간밤에 있었던 자동차 사고 사진을 보여 줬지만, 고객이 항의하면서 돈을 주지 않았고, 자신이 고객에게 돈을 받지 못하면 청소한 사람(바로 알렉스)에게도 돈을 주지 못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이젠 잘 하겠다고, 아무 일이나 달라고 읍소하는 알렉스에게 '유니폼을 저기 두고 갈래요?' 라고 말한다. 헛수고 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말씀.


    알렉스: (모르는 번호가 찍인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션의 변호사: 알렉스 러셀인가요?
    알렉스: 누구시죠?
    션의 변호사: 저는 존 마셜입니다. 션 보이드 씨 변호를 맡았죠. 변호사가 있으신가요? ‎아니면 직접 말씀드릴까요?
    알렉스: (기가 막혀 하면서) 미안하지만 누구라고요?
    션의 변호사: (냉정하게) 보이드 씨의 변호사입니다. 보이드 씨가 긴급 청원을 신청했다는 걸 통보합니다. 친자인 매디 보이드에 대한 ‎양육권의 즉각적인 회복을 러들로카운티 가정 법원에 ‎청구했고 내일 오전 10시에 예심이 잡혔습니다. 참석하지 않으시면 매디에 대한 귀하의 친권 포기를 ‎추가로 청구하겠습니다. 지금 통보한 내용 전부 이해하셨나요?

    <해설>
    멍~한 상태에서 욜란다 업체에서 걸어 나오는 알렉스에게 누군가 전화를 걸어온다. 받아보니 션이 고용한 변호사. 알렉스가 딸 매디를 데리고 탈출해서 잠적(?)했으니, 션에게는 무척 당황스러운 상황. 다른 방법이 없으니, 변호사를 사서 법원에 호소를 했단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생존자를 대상으로 고소하는 이상한(?) 세상. 미국에서도 별 수 없나 보다.


    알렉스: 션은 고등학교도 졸업 못 했는데 어떻게 변호사를 구했죠?
    사회복지사(조디): 변호사는 아무나 사요. ‎1,500달러만 있으면 되죠.
    알렉스: 션은 1,500달러 없어요.
    사회복지사(조디): 가족 중에 누군가는 있겠죠. ‎나도 몰라요.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당신 문제는 애가 지낼 곳을 마련하지 못하면, 법정에서 곤란해질 거란 거예요. 거리에서 벗어나야 해요, 당장요. 쇼깃에도 자리가 없네요. ‎차 없이는 갈 수도 없지만. 욜란다가 급여 명세서 줬어요?
    알렉스: 아뇨.
    사회복지사(조디): 그러면 임시 주택도 ‎자격이 안 돼요. 가정 폭력 쉼터에는 자리가 있지만, 가정 폭력은 아니라고 했죠?
    알렉스: 네, 거긴 진짜 학대당한 사람이 들어가야죠.
    사회복지사(조디): (잠시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진짜 학대'라니, 무슨 말이죠?
    알렉스: 두들겨 맞고 다치는 거요.
    사회복지사(조디): 그럼 가짜 학대는 어떤 거죠? 위협? 협박? 통제? (작은 리플렛을 넘겨 주며) 가정 폭력 핫라인은 ‎직접 연락해야 해요. 보통 제일 가까운 경찰서로 ‎택시를 보내줘요.
    알렉스: 전화해서 뭐라고 해요?
    사회복지사(조디): '도와주세요'

    <해설>
    알렉스는 욜란다를 소개해 준 사회복지 공무원 조디를 다시 찾아와서 도움을 청한다. 조디는 알렉스에게 당장 아이가 지낼 곳을 마련하지 못하면 법정에서 곤란해질 거라고 경고(?) 혹은 조언한다. 말하자면, 매디를 영엉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는 말. 어떻게든 알렉스를 도와 주려는 조디. 그래서 가정폭력 생존자 여부를 재차 확인한다. 그러자 알렉스는 무심하게 가정폭력 쉼터에는 '진짜로 학대당한 사람들이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자 조디는 놀란다.
    알렉스는 분명히 학대당했다. 매디의 아빠이자 (결혼 안 한) 남자친구인 션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고 집안 물건을 부쉈다. 그런데 알렉스는 션이 보인 행동을 '진짜 학대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인식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본인 처지를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사회복지 공무원 조디가 다소 '정색하는' 표정을 짓는 이 장면이 무척 좋았다. 알렉스가 지나가는 말로 독백처럼 내뱉은 말 한 조각을 그냥 넘기지 않고 직면시키는 민감한 반-폭력 감수성이 좋았다.


    사회복지사(데니즈): 알렉스군요, 얘가 매디예요? 난 데니즈예요, 우리 통화했죠. ‎여기 왔으니 숨 쉬어도 돼요.
    알렉스: (미소를 지으며 숨을 쉰다.)
    사회복지사(데니즈): 잘했어요. ‎여기선 숨죽이지 않아요. ‎크게 숨 쉬어요. ‎매디를 데려가요. ‎가방은 내가 옮기죠.

    <해설>
    결국, 가정폭력 쉼터에 스스로 전화를 걸고, 입소하는 알렉스(와 매디). 쉼터 앞에서 택시 문이 열리고, 쉼터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데니즈가 알렉스에게 하는 말이 무척 짧지만 참말로 인상적이다: "여기 왔으니, 숨 쉬어도 돼요." 잠시, 눈을 감고 이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내가 알렉스라면. 내가 알렉스라서 딸과 함께 가정폭력 쉼터에 도착했을 때,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긴 설명을 듣지 못해도 마음이 탁, 하고 풀리고 '안전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사실, 처음 두 번째 에피소드를 보았을 때는 잘 보이지도 않았고, 잘 느껴지지도 않았다. 사회복지 공무원인 조디가 알렉스에게 '당신이 겪은 일이 바로 가정폭력이랍니다' 라는 표정을 짓지 않았더라면? '그냥 쉼터에 전화를 걸어서 도와 달라고, 말하라'고 권유하지 않았더라면? 두려움과 불안 등으로 주저하던 알렉스가 마침내 쉼터에 도착하던 순간, 쉼터지기 사회복지사 데니즈가 옅게 미소를 지으며 '숨 쉬어도 된다' 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여기선 숨 죽이지 않아요, 크게 숨 쉬어요' 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제 와서 보니, 이 두 사회복지사가 각각 알렉스에게 해 준 말은 겉으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작은 한 마디이지만, 알렉스가 절망해서 죽지 않고 힘든 순간을 넘길 수 있도록 도와 준 결정적인 말일 수도 있겠다. 조디는 할 일이 무척 많고 바빠 보인다. 그래서 그리 친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심하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알렉스가 흘린 의미심장한 말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가정폭력 쉼터지기 데니즈도 마찬가지. 데니즈는 정말 필요한 말만 하는 과묵한 사람인 듯하지만, 차분하고 깊이 있게 말하면서 온정을 전달한다.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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