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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에서 온 편지
    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2. 6. 8.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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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모 지역 각급 학교에서 일하고 계신 지전가(지역사회교육전문가) 동료들과 함께 해결중심모델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교육이 끝난 후, A 교육생께서 이메일로 사례 자문을 요청하셨다. 자해를 하는 중학생 B사례였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이 학생은 우울감이 매우 높아서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언제 자살할지 모르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님께서는 매일 '오늘은 무사히 넘어갔다'는 마음으로 살아가신다고 했다. A 선생님께서는 이 학생을 너무나도 잘 돕고 싶었지만, 마음 문을 조금이라도 여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고 고백하시면서, '내가 이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셨다고 한다. A 선생님께서는 '지쳐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청소년 특성도 잘 모르는 문외한이다. 특히나, '자해' 이슈에 대해서는 더욱 더 아는 게 별로 없다. 이런 내가 A 선생님 편지를 받고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 적잖게 고민이 되었다. 꼬박 1주일을 고민한 끝에 이메일 답장을 보냈는데, 이메일을 보내고 생각해 보니, 이 사례가 반드시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대단히 특수하다고 여겨지는 문제를 겪는 내담자를 해결중심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라고 판단되어서, A 선생님께 허락을 받아서 내가 이분께 보냈던 이메일 내용을 공유한다:


    안녕하세요? 이재원입니다. 부족하지만 답변을 드립니다. 

    (1) 첫 단락에 소개된 부모님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갔다." 자살 시도 전력도 있고 우울도도 높은 청소년이니, 이 말씀은 '오늘도 겨우 살아 있구나' 라는 뜻이겠지요. 부모님께서는 아이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다, 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아이가 살아 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처지'를 그다지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으시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시각에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자살 위험이 높은 아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2) 마지막 단락에 A 선생님께서 쓰신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내가 얘한테 해 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음... 다른 문장에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모두 나와 관계 형성이 잘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라고 쓰셨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런 기대'를 일정하게 품고 계시는 듯 합니다. (저도 A와 비슷한 내담자를 만났을 때, 말로는 '내가 항상 잘 할 수는 없지' 라고 되뇌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저 사람 마음을 못 열다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열 수 있는 거야?' 라고 한탄도 하고 좌절도 했던 것 같습니다.) 

    (3) 만약 제가 이 친구와 상담을 한다면, 제일 먼저 그동안 만났던 상담 전문가들이 어땠는지 물어볼 것 같습니다. 좋았던 점과 안 좋았던 점을 모두 최대한 자세하게 물어볼 것 같아요. 좋았던 점을 물어보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저도 그렇게 해야 하니까, 입니다. 이 친구에게 먹히는 방법/방식/태도를 알아내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부분은, 이전에 상담하면서 안 좋았던 이유입니다.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한 명씩 기억하면서, 안 좋았던 점을 상세하게 들어볼 것 같습니다. 다행히 답변을 잘 해 준다면, 상담자를 대할 때 이 친구가 좋아하는 게 뭔지, 싫어하는 게 뭔지를 학교 공부하듯 미친듯이 공부해서 좋아하는 건 더 하고, 싫어하는 건 안하려고 노력하겠지요. (눈에 띄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4) 다음으로, 만약 제가 이 친구와 상담을 한다면, 자해를 하면 좋은 점을 물어볼 것 같습니다. 자해, 는 당연히 나쁘지요. 하지만 나쁜 점만 있다면 지속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느 지점에선가는 멈추었겠지요. 나쁜 점도 있겠지만(당연히, 스스로도 나쁜 점 - 예컨대, 몸이 아프다든가 - 을 인식하고 있겠지만), 그 나쁜 점을 이기기도 남는 좋은 점이 있기 때문에 계속 하고 있겠지요. (이 부분을 물어볼 때, 자해에 대한 선입견이나 아무런 판단 없이 물어보는 게 중요하겠지요?) 이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곧바로 자해를 멈추게 만들 도깨비 방망이(해법)가 생각나지는 않겠지만, 나중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정보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친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해를 통해서 이루려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면, 여러 모로 크게 도움이 되겠지요.

    (5) 다음으로, 본인이 자해를 하지 않고 싶어하는지 물어볼 것 같습니다. 만약에, 본인이 자해를 멈추고 싶어하지 않는데, 우리가 마음 속으로 자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금방 눈치 채고, 저항을 시작할 겁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청소년 시기는 가장 반항을 많이 하는 시기죠. 어쩌면 반항 자체가 삶의 목적이라고 여겨질 정도로요. (어쩌면 이 친구는 반항을 자해로 하는지도 모르죠. 만약 그렇다면 상담자가 자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자체에 대단히 예민하게 반항할 겁니다.)

    (6) 다음으로, 조금이라도 자해를 덜할 때는 언제인지에 관해서 물어볼 것 같습니다. 자해를 한다고 했지만, 항상, 언제나 자해를 똑같은 정도로 하지는 않을 겁니다. 문제란 늘 세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하니까요. 이 변화 리듬을 알아내야 해결책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겠지요. 자해를 조금이라도 덜하는 상황이, 이 친구가 자해를 하는 이유와 관련되어 있다면, 좀 더 쉬워질 것 같습니다.

    (7) 아! 우리에겐 아주 훌륭한 예외가 있군요? B가 C와 연애했던 경험 말입니다. B는 연애가 어떤 점에서, 무엇이 좋았길래, 좀 더 구체적으로 묻자면, 연애를 하면 어떤 욕구가 만족되길래, 자해를 덜했던 걸까요? 자기 마음을 완벽하게 이해해 주는 동지를 만나서? 사랑하는 감정이 너무 강력하고 만족스러워서, 자해를 하면서 얻는 쾌감을 가볍게 능가해서? 도대체 이유가 뭐였을까요? 가능하다면, B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하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8) 그런데요, 이쯤에서 좀 더 근본적인 (해결중심적인) 질문을 드려 보고 싶어요. B는 선생님과 만나는 상담을 본인이 원했던 건가요? 만약 아니라면(비자발적으로 하는 상담이었다면), 선생님을 만날 때 이 친구가 원하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상담실을 벗어나는 거였을까요? 의뢰한 사람이 있었을 테고, 선생님께서는 의뢰자를 무시하지 못하셨겠지요. 아니, 무시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겠지요. 선생님께서는 '상담이라도 제때 오는게 어디야 하면서 셀프 위로 하다가도' 라고 쓰셨는데요, 만약에 본인 의사가 아니라 타인 의사에 의해서 억지로 오는 상담이라면... '상담에 제때 오는 행위'는 셀프 위로가 아니라, 엄청나게 칭찬하고 인정해 줄 행위 같습니다. 싫은데 오는 거잖아요. (이 지점에서 선생님께서 이 아이를 돕고 싶어하셨던 마음이 매우 강력했구나, 짐작이 들었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다소 과한 기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9) 해결중심모델에서는 상담자가 원하는 바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때로는 규범적인 개입도 필요하지만) 내담자가 원하는 바를 최우선적으로 중시합니다. 더구나, 반항하는 청소년에게는 다른 상담자들처럼, '네가 원하지 않아도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원하는 바를 자세하게 듣고, 어른들이 원하는(바람직한) 방향과 절충하려고 시도합니다. 청소년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그가 원하는 걸 이루려면 타협과 절충이 필수적이니까요.

    (10) 음... 자세한 이야기는 여쭙지 못했습니다만, A 선생님께서는 '지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치는 사람은, 사실 에너지가 많은 사람입니다. 무엇인가 바라는 게 없다면, 기대하는 게 없다면, 지치지 않습니다. 지쳤다는 건, 뭔가 바라는 바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라는 바가 많은데,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으니 지치는 거겠죠. 저도 살면서 많이 지쳐본 적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지치는 심정은 대개 타인과 세상에 기대하는 바가 많아지는 '좋은' 욕심이 많을 때 생기더라구요. 하지만 타인과 세상이 제 마음대로 달라지진 않았지요. 이럴 땐, 기대를 내려 놓고 푹 쉬는 게 답,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재원 드림.


    [A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답 이메일]

     

    다 읽은 후 먼가 먹먹해지는 게, '지금 잘 하고 있다', '괜찮다'.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다독임이 필요했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례 자문과 동시에 제 개인 상담 받은 느낌입니다. A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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