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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좋은 이유가 있겠지!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2. 5. 12. 06:52728x90반응형
뭔가 좋은 이유가 있겠지!
(우리들의 블루스로 배우는 해결중심적 대화)
B: 넌 다른 사람한테 다 순한데, 인권이만 보면 왜 못잡아 먹어서 난리냐?
A: 천하의 순하디 순한 내가, 쟤한테만 송곳이 드러내고 으르렁 댈 땐, 나도, 나름, 무지무지한 사연이 있겠지!
B: 그럼, 뭔 사연인지 이야기를 하든가, 임마!
처음엔 이번에도 이병헌 횽아 연기를 감상하려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tvN에서 방송하고 있는 '우리들의 블루스' 말입니다. 이병헌 횽은, 섬나라 제주도에서도 더 깊숙이 들어간 작은 섬들을 다니면서 '윗도리, 아랫도리, 냄비, 냄비' 라고 녹음한 테입을 틀고 온갖 물건을 파는 동석을 연기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짜 같아서 관련 동영상(다큐멘터리)을 찾아 보았더니, 이병헌 횽은 실제로 섬 지역을 돌아 다니면서 마트 역할을 하시는 만물상 생활을 복사하듯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떠돌이지만, 정기적으로 만나는 섬 지역 어르신들과 삶을 나누면서 가족같은 친근함을 느끼고, 그래서 어르신들께서 가끔씩 다른 만물상에게서 물건을 사면 아들이 자기를 외면한 부모에게 하듯 불같이 화도 내고, 하지만 정말로 가족처럼, 다시 나타나면 금방 화해하고 웃으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만물상 생활.
잠깐만요, 이정은 누님도 계셨죠?! 키도 작고, 볼품 없이 생겼지만, 속이 너무나도 깊고, 생활력 강한 정도를 넘어서서 '물고기 대가리 치는 일'로 동네 알부자가 된, 생선가게 주인 정은희를 연기하고 계시죠. 저는 이 분의 연기를 '자연스러운 설득력'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설계도인 플롯과 캐릭터 설정이 탄탄해야 하고, 이 설계도를 실제로 구현하는 연출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심지어 플롯이나 캐릭터가 빈약하고 엉성해도, 오로지 개인기로 이를 극복하는 연기자가 있는데, 바로 이정은 배우가 그런 분이죠. 이정은 배우가 연기한 은희는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옛 친구 최한수(무려 차승원 배우!)가 돈을 빌리기 위해서 로맨스 분위기를 방패 삼아 자신을 이용하는데도, 그래서 완전히 농락당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도, 친구로서 도리를 넘어서는 인간적인 예의를 보여줍니다. 이런 캐릭터, 이정은 배우가 아니면 누가 진짜처럼 보여주겠습니까.
허허... 그런데 말입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놀라는 지점은, 실은 이병현 횽아가 보여주는 보여주는 '도저히 깔 수가 없는' 연기력도 아니고, 이정은 누님이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엄청난 설득력'도 아닙니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조연들 연기가 환상적으로 좋다는 사실입니다. 너무 좋아서 말 그대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바로 정인권 역할을 맡은 박지환 배우와 방호식 역할을 맡은 최영준 배우입니다. 두 사람은, 어쩌면 '러브 액츄얼리' 같은 커플 로맨스 장르 같기도 한 이 드라마에서, 커플은 아니지만 거의 커플 같이 보일 정도로 '알싸~하고 징글징글한' 로맨스 앙상블 연기를 보여줍니다. 두 사람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딱 원수 집안 자식끼리 연을 맺는 로미오와 줄리엣 플롯인데, 박지환, 최영준 배우가 너무나 생생하게 연기한 덕에, 로미오와 줄리엣 부모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철천지 원수같은 사이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정말 오래된, 한 때는 둘도 없었던 친구 사이이기도 합니다. 하긴,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게 되면 원래 모르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미워하고 싸우는 법이죠. 둘은 만나기만 하면, 아니, 멀리서 스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립니다. 두 사람이 미워하는 이유는? 원래 정인권 캐릭터는 깡패 출신입니다. 청소년기에 집안 형편을 비관하면서 일찌감치 깡패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순대국 한 그릇 더 팔아 보겠다고 고생하시던 어머니 죽음을 목도하고 깡패 생활을 접습니다. 그리고 지긋지긋해 하던 순대국을 팔아서 아들을 키웁니다. 한편, 방호식 캐릭터는 조금 잘 살아 보겠다고 주식이다 사업이다 빚내서 투자하다가 쫄딱 망하고 도박에 미쳐서 아내는 집을 나가고 세 살 배기 딸이 밥통을 긁고 있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인권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다가 딸 앞에서 모욕을 당하고 마음을 크게 다칩니다. (대단히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래서 더욱 악착같이 살았습니다만.)
인권이는 억울합니다. 그가 보기엔, 호식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기를 미워하니까요. 아니죠. 오히려 인권이는 자기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맞고 다니던 호식이를 보호해 주었고, 도박에 미쳐 있을 때는 돈도 빌려줬고, 어려운 순간에 딸과 함께 찾아온 호식에게 또 돈을 빌려 줬으니까요. (호식이는 그 돈을 땅에 버리고 갑니다.) 억울하기 때문에 더욱 으르렁거립니다. 깡패는 졸업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따뜻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거든요. 적절한 표현법을 모르니 늘 하던 대로 욕부터 나가고 선빵만 날립니다. 물론, 호식이는 인권을 보면 가슴부터 아파옵니다. 딸 앞에서 느꼈던 치욕스러운 감정을 인권에게는 물론, 사람들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순딩이였고 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사람인데, 특별한 이유 없이(이면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죠!) 인권을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고 싸우려고 드는 호식이를,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의아해 합니다.
위에 제가 사진으로 소개한 장면에서도 그랬습니다. 인권과 호식이와 모두 친한 동네 친구, 명보(김광규 분)도 두 사람이 으르렁대는 이유,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렇게 순하디 순한 호식이가 인권만 만나면 으르렁대는 이유를 모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갈등하는 상황에서 중재하던 명보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 호식이에게 "넌 다른 사람한테 다 순한데, 인권이만 보면 왜 못잡아 먹어서 난리냐?"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호식이는 바로 이렇게 답하죠: "천하의 순하디 순한 내가, 쟤한테만 송곳이 드러내고 으르렁 댈 땐, 나도, 나름, 무지무지한 사연이 있겠지!" 저는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무척이나 깜짝 놀랐습니다. 대사가 오고 간 상황과 세부 내용이 완벽하게 해결중심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만약 B가 A에게 이렇게 말했다면, 대화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래, 순하디 순한 네가 유독 인권이만 만나면 그렇게 할 때는, 나름대로 뭔가 좋은 이유가 있겠지. 말 안 해도 짐작이 간다. 지금 이야기 안해 줘도 괜찮아. 나중에 네 마음 내킬 때, 그 좋은 이유 좀 들어 보자."
많은 사람들이 예컨대 '기적질문' 정도는 배워야, 그래서 현장에서 한 번 쯤 멋지게 읊어줘야, 해결중심모델을 제대로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해결중심모델을 배우면 자꾸 '질문'에 집착합니다. 정작 배우고 나서는 '생각보다 어렵다'라고 말하면서요. 그리하여 결국 '사용하진 못하겠다'라고 말하면서요. 물론, 예컨대 '기적질문'은 (어떤 사람의 서명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기호이듯이) 해결중심모델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테크닉'이 맞습니다. 그러나 시그니처 테크닉은 시그니처 테크닉일 뿐(사실, 기적질문이 유명해진 이유는 이 모델을 개발한 사람들이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즉 마케팅적인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기적질문을 대표선수인 것처럼 밀어줬기 때문이랍니다), 기적질문만이 유독 해결중심모델 본질을 품고 있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상대방이 예민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할 때조차도, 그럴 만한 좋은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고, 정중하게 알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언어가 훨씬 더 자연스럽게 해결중심적 관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저와 함께 해결중심모델을 포함하는 강점관점실천 일반에 대해서 공부해 오고 계신 안혜연 사회사업가께서는, 일하고 계신 청소년 단기 쉼터에 청소년이 입소해서 조금씩 알아갈 때마다 '누구에게나 그럴 만한 좋은 이유가 있다'는 해결중심 격언을 떠올리신다고 합니다. 쉼터에 오는 청소년들은 피학대 생존자이지만, 여러 가지 정서적, 행동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거든요. 어쩌면 술, 담배 정도는 지극히 기본적인 문제일 지도 모를 정도로요. 하지만 안혜연 선생님께서는 이런 문제가 드러날 때 무조건 통제하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명백하게 잘못된 행동을 잘했다고 (무조건) 수용해준다는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다만 잘못된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알려 주되, 그 행동이 나오기까지 켜켜이 쌓여온 수많은 그럴 듯한 맥락과 좋은 이유가 존재할 거라고 믿는 겁니다. 잘못된 행동을 덮어놓고 부정적인 것으로 규정해 놓은 상태에서는 그 어떤 긍정적인 생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해결중심 태도를 제 언어로 정리하자면, '정중한 호기심'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말과 행동을 상대가 보였을 때, '저렇게 말하고 행동할 만한 나름대로 좋은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궁금해 하는 겁니다. 기회가 온다면 "당신 나름대로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데, 그 좋은 이유에 대해서 들려 주시겠어요?" 라고 매우 정중한 태도로 묻는 겁니다. 우리는 딱, 반 발자국만 앞서야 합니다. 아무리 고급진 해결중심 질문 기술을 현란하게 구사한다고 해도, 사람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먼저 기다려야 합니다. 상대방의 감정을 터치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궁금해 해야 합니다. 상대가 부담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합니다. 그의 리듬에 내 발걸음을 맞춰야 합니다. 그렇게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참고> 본 원고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에서 매주 화요일 오전에 발행하는 정기 뉴스레터, Solutionists 내용 중에서 좋은 내용을 발췌한 후에 조금 더 심화/발전시킨 글입니다. 뉴스레터 구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 글을 읽어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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