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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걸 잘 써먹어야 하는데,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2. 7. 4. 07:57728x90반응형
해결중심모델을 (제너럴리스트) 사회사업가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면, 어디에서든(학부에서든 대학원에서든, 심지어 직장에서든) 해결중심모델을 배웠다는 사람을 꼭 만난다. 비율로 따지자면, 해결중심모델을 배웠다는 사람 이 어떤 경우엔 10~20%에 머물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50%를 넘길 때도 있다. 이 말은 그만큼 사회사업가 중에서 이 모델을 들어본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해결중심모델을 배운 사람이 많은데도, 해결중심모델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고, 평소 즐겨 적용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니, 가끔씩은 초장부터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유가 뭘까?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대개는 이렇게들 이야기 한다: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평소에 잘 적용해야 하는데, 바쁘게 일하는 동안 그 가치를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 사회사업가가 가장 잘 하는 것, '반성 혹은 자책'하는 모습. 말하자면, '(적용)해야 하는데, 내가 게을러서,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는 셈. 여럿이 함께 배우는 클래스에서 한 명이 이렇게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죄다 돌아가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음... 사람들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약간 다르게 생각한다. 한 마디로, 나는 사람들이 과도한 반성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기반하고 있는 숨겨진 전제 때문이다: "해결중심모델을 (사회사업에) 적용할 수 있다."
이 전제는 참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 온 사회사업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우리가 해 온 사회사업을, 우리가 클라이언트에게 던져 온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나요?", (2) "그래서, 뭐가 필요하세요?" 먼저, (1)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나요?" 질문은 사실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과거 어떤 일 때문에 생겼는가?' 질문, 즉 문제 원인을 탐색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문제 원인을 왜 탐색하는가? '원인(과거)을 알면 혹은 원인을 제거하면, 결과(현재/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자세하게, 꼬치꼬치 그가 어떻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는지에 대해서 묻고 또 묻는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질문, (2) "그래서, 뭐가 필요하세요?" 질문은 '당신에게 부족한 게 무엇인가?' 질문이면서, '우리가 그 부족한 부분을 (효율적으로) 채워 주겠다'는 태도를 드러내는 질문이다. "그래서, 뭐가 필요하세요?" 질문은 겉으로만 보면 상대방을 생각하고 위해주는 질문 같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당신에게 뭐라도 줄 수 있는지, 만약 줄 수 있다면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빠르게 알아 보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도움을 받는 상대방 의사가 중요한 질문이 아니라, 도움을 주는 내 상황이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더 깊이 음미해 보면, '우선적으로, 상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나 어려움에 관심을 기울이는' 질문이다. (우리는 빨리 묻고, 빨리 파악해서, 빨리 도와 주는 방식을 선호한다.)
매우 많은 사회사업사가 '주민/이용인의 자립'을 사회사업(social work)이 추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없고, 그래서 괴로워하고 답답해 하는 것 같다. '자립(自立)'이란 말 그대로 스스로 일어서는 것인데, 우리가 돕는 분들은 자립은 커녕, 그에게 필요한 걸 우리가 열심히 보충해 주는데도 자립은 커녕 절반이라도 스스로 일어서는 '반립(半立)'도 어려운 형편이다. 이유가 뭘까? 나는 우리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뛰어가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에 빠진다고 믿는다. 우리가 말로는 주민/이용인의 자립을 위해서 일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속한 시스템은 주민/이용인을 일어나지 못하게 뭉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두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1) "언제부터 문제가 생겼나요?" 질문. 이 질문은 아마도 '프로이트 이론'에서 시작되어 사회사업에 흘러 들어와 여전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대단히 관습적인 질문 같다. 그런데, 이 질문이 의미가 있으려면,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뭔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프로이트 박사가 내담자 과거를 그렇게 자세하게 탐색한 이유는 문제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면서, 동시에 문제가 생기는 과정 전모를 알게 되면 내가 충분히 도와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주민/이용인이 말하는 문제 이야기를 다 들으면 다 도와 줄 수 있는가? 우리가 그토록 자세하게 파헤치면서 듣는 문제 이야기는 대부분 그냥 듣고 끝나는 이야기 아니던가?
(2) "그래서, 뭐가 필요하세요?" 질문. 우리는 입으로는 클라이언트가 '자립'하기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립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인 자존감/자신감을 낮추는 질문을 한다. 내가 '개입'해서 도와 줘야만 주민/이용인이 일어설 수 있다는 태도를 (나도 모르게) 취하고 있다. 혹은 나는 주민/이용인에게 '부족한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서, '결국엔 그가 스스로 일어설 것이다' 라는 다소 막연한/순진한 기대를 품고 있다. 우리 역할을 '주민/이용인에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라고 박아 놓고, 계속 뭔가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가 내 도움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는 능동적이면서도 진취적인 사람이 되길 바란다, 고 말하고 있다.
나는 지금 '자립'이라는 목표 자체에 가치가 없다거나 이 목표가 잘못된 목표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실제로 일해 온 방식은 '우리가 추구한다고 말해 온 가치에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주민/이용인이 진짜로 원하는 바'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정해져 있는 일상적 루틴대로,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빈약한 방법 몇 가지를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주민/이용인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평가에 맞는 실적을 올리고 싶다. 우리가 속한 시스템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주민/이용인 중심으로 실천해 보려고 해도, 이미 우리가 일부인 시스템은 공장처럼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정통 해결중심모델을 질문으로 요약하면, '가까운 미래에 당신이 진정으로 보고 싶은 구체적인 모습/상황/행동은 무엇인가요?'이다. '그리고 그 모습 중에서 (일부라도) 이미 존재하는 모습/상황/행동은 무엇인가요?'이다. 이 두 질문은 '그래서, 뭐가 필요하세요?' 질문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도움을 주는 내가 중요하지 않고,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바'가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도움이 무엇인지를 묻는 게 아니라, (혹여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당신이 무엇을 추구하고있는지'를 묻고 있다. 질문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상대방이 진짜로 원하는 바에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졍중한 호기심)가 중요하다. 상대방에 대한 정중한 호기심이 없다면, 아무리 멋지게 질문을 해도 의미를 상실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나는 "해결중심모델을 (사회사업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전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보고 싶었다. 다들 이 질문을 너무나도 쉽게 수용하기 때문이다. 내 답변은, 가능은 하지만 (1) 반드시 특정한 질문을 실제로 구사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2) 해결중심 질문에 담긴 가치나 태도, 관점을 배우면서 상담 이외 업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더욱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일하고 있는 시스템을 인식해야 한다. 내가 일할 때 일상적으로 전제하고 있지만, 겉으로는 드러나 있지 않은 생각/태도/가치/관점을 관찰해야 한다. 실제로는 내가 거대한 공장 속에서 공산품을 찍어내고 있는데,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일하는 사람처럼 일하고 싶어한다면, 이는 모순이다.
현실에서 나는 양적인 실적(몇 건이나 자원을 연결했는가)을 중시하는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데, 질적인 차원을 묻는(얼마나 주민/이용인이 원하는 가치에 부합하게 일했는가, 얼마나 가까이 주민/이용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에 다가갔는가 등) 질문을 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생각하는(사정하는) 그에게 필요한 것에만 온통 집중하도록 시스템에 요구하고 있는데, 그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그가 생각하는 그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니까 해결중심모델을 배운(혹은 배우고 있는) 사회사업가 동료들께서 '게으르거나, 기억력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동료들께서 속해 계신 환경이, 시스템이, 해결중심모델에서 강조하고 있는 가치와 맞지 않기 때문에, 해결중심모델을 (현실) 사회사업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거대한 공장 시스템 속에서 구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 오해 마시라. 시스템이 그러니까 해결중심모델을 적용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쓰자는 말이다. (예컨대, 질문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가치를 이해하시라. 질문은 수단일 뿐!) 적용하되,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말이다. 가치를 추구하되, 현실 시스템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말이다. 시스템 때문에 불가능한 지점은 그냥 인정하되, 한계 지점까지는 가 보자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부족해서, 내 자신이 게을러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 없는 반성은 더 이상 하지 말자. 강점관점으로, 해결중심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정적으로)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이 이런 방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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