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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은 아빠의 육아 일기 (D+232일)
    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10. 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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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전까지만 해도 엎드려서 두 팔을 벌리고 나비처럼 팔랑대기만(?) 하던 딸이 드디어 앞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빠랑 그렇게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해도, 가장 좋아하는 사자 인형을 눈 앞에서 아무리 흔들어 대도 가만히 있던 녀석. 그런데 어느 순간을 넘어서니 또 거짓말처럼 슝슝슝 기어가기 시작했다,

    … 까지 쓰고 글쓰기를 멈추었는데, 그 짧은 며칠 사이에 아이가 쇼파를 잡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기어가기에 이어서 바로 다음 단계 연습. 언제는 눕히면 엎드리고 싶다고 성화를 부렸는데, 이제는 엎드리면 뭔가를 잡고 일어서고 싶다고 난리. 오 마이 가뜨! 이쯤 되니 속도를 따라 잡을 수가 없다. 아이는 빨리 성장한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새롭게 달라지는 딸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그 옛날 아부지, 어머니 얼굴을 자꾸 느낀다. 나도 이런 때가 있었겠지? 나도 부모님에게 한없는 기쁨을 주는 존재였겠지? 그리고 울 아부지 얼굴도 지금 딸을 들여다 보는 내 얼굴처럼, 마냥 흐뭇했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마음도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세상에 나처럼 부모님 욕을 많이 한 사람도 드물 거다.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마지막까지 내 마음 속 분노 대상으로 불려 나오셨던 아부지, 어머니. 아부지는 너무나도 보수적이셨고 무서운 분이셨다. 어머니는 말을 너무 함부로 하셨고, 늘 나에게 겁을 주셨다. 그땐 내가 힘든 일 겪는 이유가 다 부모님 탓만 같았다.

    그런데 곰곰 따지고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 두 분 모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몸뚱아리 하나만 믿고 그 험한 세상을 버텨내셨다. (심지어, 아부지는 겨우 일곱 살 무렵 피난다니며 한국전쟁을 직접 견디어 내셨다.) 먹고 살기가 지상목표였던 시절, 제대로 부모 노릇 하기가 어려우셨을 거다.

    허면, 나는 내 딸에게 어떤 아빠가 되어줄 수 있을까. 일상에서 자주 나타나는 장면: 내가 거식 테이블에서 밥을 먹거나 몰두해서 일을 하고 있으면, 옆에서 아내가 쿡쿡 찌르며 말한다: "여보, 봄이가 여보를 빤히 보고 있어요. 반응 좀 해 줘요." 그래서 돌아보면 진짜로 우리 딸이 나를 빤히 쳐다 보고 있다. 아빠가 뭐라고 넌 이리도 열심히 보고 있니.

    왠지, 뭔가 값비싼 물건을 사 주고 거창한 일을 해 줘야 좋은 아빠로 인정받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나를 빤히 바라보는 딸 얼굴 한 번 더 보고, 얼굴 한 번 더 부비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결국 의미 있는 변화는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작은 걸음을 내 딛느냐 못 내딛느냐가 변화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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