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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딸을 잃었어요, 어디 맘대로 해 봐요
    지식 공유하기(기타)/시네마 떼라피: 위안을 주는 영화 2022. 10. 2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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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석권하고 있을 때 '조용히' 2등을 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조용한 희망' 이라는, 다소 재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 붙은 드라마다. 웬 가난한 싱글맘 이야기, 라고 하기에 흥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시험 삼아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았다가 완전히 빠져들어서, 마지막 회까지 단숨에 정주행하면서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최근 약 15년 사이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외국 드라마는 HBO 역사 초기에 제작된 극사실주의 형사 드라마, '와이어'였다. 하지만 '조용한 희망'을 보고 나서 가장 재미있는 외국 드라마가 바뀌어 버렸다.

    이유는? 첫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받을 수 밖에 없게 된)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국가로부터 사회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적나라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둘째,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처참한 현실을 충분히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그리면서도,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어디에 털나는 다소 민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가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참말로 많다. 어쩌면, 가난과 절망을 기본적으로 달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마음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사회복지사가 모든 어려움을 경험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일 첫 번째 노력으로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고 믿는다.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조용한 희망' 함께 읽기. 드라마 주요 장면을 함께 보고, 의미를 깊게 음미하는 글을 나눈다. 오늘은 제 2화 세 번째 이야기.


    알렉스: (쉼터에 들어와서 곧장 자기 방으로 들어간다.) 

    대니얼: (알렉스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됐어? ‎(따라 가면서) 알렉스~ 알렉스~ (방 문을 열었더니 알렉스가 카페트 위에 누워 있다.) ‎괜찮아? 망할 자식들! ‎법원에서 애를 얼마나 맡겼어? 얼마나 오래?
    ‎알렉스: 일주일. 
    대니얼: 7일? ‎최악은 아니네. ‎훨씬 더한 경우도 들었는데. ‎7… 7일은 괜찮아. ‎일곱 밤만 자면 되잖아. ‎적어도 보는 건 돼?
    알렉스: 목욕 시간에. 
    대니얼: ‎잘됐네, 보통 그렇게 안 해줘. 내가 처음 카를을 떠났을 땐, ‎방문권도 안 줬어. ‎부적격자라고. ‎양복쟁이들 맘대로지. ‎하지만 넌 훌륭한 엄마야. 

    알렉스: ‎집을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대니얼: 아니, 나왔어야지. 
    알렉스: ‎숀은 좋은 아빠야. ‎좋은 아빠라 매디도 좋아해. ‎둘은 지금 집에서 꼭 붙어 있고, ‎난 혼자 쉼터에 있어. ‎내가 있을 곳도 아닌데. 

    대니얼: 학대당해서 온 거잖아. 
    대니얼: 학대는 안 했어. ‎내 머리 옆의 벽을 친 거야.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신고도 안 하고 경찰도 안 불렀어. 

    대니얼: ‎경찰 신고? 엿 먹으라고 해. ‎네 옆의 벽을 치는 건, ‎정서적인 학대야. ‎물기 전에 짖는 거야. ‎때리기 전에 주변을 치는 거야. ‎다음엔 네 얼굴을 쳤을 거야. ‎너도 알잖아. 

    알렉스: ‎모르겠어, 내가 뭘 아는지. 

    대니얼: ‎알았어, 관둬. ‎이리 와, 날 봐, 날 보라고. ‎이걸 좀 봐. ‎보여? ‎그 개새끼가 목을 졸랐어. ‎처음부터 그랬을 것 같아? ‎첫 데이트 때 ‎그랬겠어? '소금 좀 줄래? ‎언젠가 네 목을 조를 거야' ‎아니야. ‎점점 커지는 거야, 곰팡이처럼. 
    알렉스: ‎매디를 잃었어. 

    ‎대니얼: 좋아, 일어나자. ‎어서, 당장 일어나. ‎어서, 가자. ‎내가 이 카펫 모르는 거 같아? ‎나도 겪었어. ‎내 인생의 몇 주를 ‎이 카펫에서 잃었어. 이 카펫에서 일어나야 해. ‎알렉스, 싸워야 해. ‎어서, 가자,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쉼터라 뺨도 못 때려. ‎그래도 일어나야지! ‎일어나!
    ‎알렉스: 젠장, 알았어.

     

    <해설> 

    알렉스는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주인공인데, 약점이 무척 많고 놀라울 정도로 어리석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사례를 꼽자면, 주변에 좋은 남자도 무척 많았는데, 하필이면 가정폭력범을 선택했다.) 법원에서 (잠정적이지만) 공식적으로 딸인 매디를 빼앗기고 나서 가정폭력 쉼터로 돌아오는 길. 알렉스는 당혹감과 자책감, 그리고 우울감에 빠져든다. 쉼터 자기 방에 누워서 일어나질 못한다(시각적 연출). 그러자 쉼터 입소 첫날부터 알렉스를 도와 주었던(알렉스의 딸, 매디에게 인형을 잔뜩 안겨준) 대니얼이 재빨리 눈치 채고 알렉스를 따라온다. 그리고 자신이 가정폭력 피해를 입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는 알렉스에게 누군가가 (아마도 남편이) 목을 졸라서 생긴 상처를 보여 준다. 빨리 정신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분노하고 싸우라고 외친다. 


    대니얼: 일어나. ‎7일은 금방 가, 알았어? ‎가정 폭력 변호사를 구해야 해. ‎법정에 낼 학대 증언 작성해야지. ‎준비 단단히 해야 한다고. 그런데 드러누워 있으면 어떡해? 
    알렉스. 그래... ‎내 말은 안 들어줄 텐데…
    대니얼: ‎'내 말은 안 들어줄 텐데…' ‎칭얼칭얼, 화를 내! ‎열나 버티면서 뭐든 해봐야지. ‎그 자식이 네 인생 조졌잖아. ‎제대로 열 받기 시작해야지. ‎좋아, 그거 알아? 내가 도와줄게. ‎내가… ‎어디 보자. ‎화나는 거 하나만 말해 봐. ‎열 받는 거. ‎뭐든 돼, 뭐든 원하는 거. 
    알렉스: 지금 고맙긴 한데… 
    대니얼: 아니! ‎화나는 거 하나 말해보라니까. ‎뭐든. ‎빨리.

    알렉스: 난…‎ 레지나 때문에 열 받아. 

    대니얼: 좋아, 레지나가 누구야?
    알렉스: ‎피셔아일랜드에 있는 ‎그 여자 집을 청소했는데, ‎보수를 안 줘서 직장을 잃었어. 
    대니얼: ‎일을 했는데도 돈 안 줬어? ‎세상에, 집도 끝내줄 텐데. ‎룰루레몬 팬츠에 ‎키친에이드 반죽기도 있고. 진짜 화나겠다. 
    알렉스: 응. 
    대니얼: ‎좋아, 코트 입어. ‎가자, 한판 뜨는 거야. ‎그년한테 돈 받자. 가자!

     

    <해설> 

    대니얼은 누워서 자책만 하고 있는 알렉스를 일으켜 세운 후에, 화 나는 일을 아무 거나 말해 보라고 제안한다. 당연히, 알렉스에게 일만 잔뜩 시키고 돈은 한 푼도 주지 않은 레지나의 이름이 등장한다. 레지나가 돈을 주지 않아서 욜란다가 운영하는 청소업체인 밸류메이드에서 해고되었고, 직장에서 해고되니 어린이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졌고, 매디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 법정에서 증명해야 하는 생활 계획도 짤 수 없게 되었다. 레지나 이름이 언급된 순간, 대니얼은 알렉스와 함께 가서 레지나와 싸우고 돈을 받아오자고 알렉스를 선동(?)했다. 


     

    레지나: ‎미스터 다시! ‎천만다행이구나. ‎개집을 어떻게 빠져나왔죠? ‎너 어떻게 나온 거야? ‎어디서 찾았어요?
    ‎알렉스: 길거리에서요. 
    ‎레지나: 어떻게 여기까지 왔담?
    ‎알렉스: ‎개는 멀리 가죠. ‎다리는 이렇게 짧으면서. 
    레지나: ‎미스터 다시, 그래. 
    알렉스: 도움이 돼서 다행이에요.  
    레지나: ‎아, 그럼요. ‎정말 고마워요, 진심이에요. 
    알렉스: ‎나 모르겠어요?
    ‎레지나: 뭐라고요?
    알렉스: ‎당신 파출부잖아요. ‎당신 집을 청소했죠. 
    레지나: ‎맞아요, 당신… ‎아이 방에서 쓰러졌죠. 

    알렉스: ‎내 돈 떼먹었잖아요. 
    ‎레지나: 이런… 세상에, 이거… 뭐… ‎이게 뭐죠? ‎내 개를 훔쳤어요?
    ‎알렉스: 살짝 맛이 간 친구가 당신 개를 ‎빌렸어요, 인질로 삼으려고요. ‎하지만 돌려드리는 거예요. ‎됐네요, 당신 개 돌려드렸어요. ‎난 영웅이죠. 

    ‎레지나: 이런 망할 경우가! ‎경찰을 부를 거예요. 
    ‎알렉스: 경찰 불러요, 경찰 불러 봐요. ‎당신이 도둑인 거 말할 테니. ‎37달러 50센트 안 줬잖아요. ‎

    레지나: 말도 안 돼. ‎난 범죄자랑 협상 안 해요. 
    알렉스: ‎나한테 빚진 돈 줘요. 

    ‎레지나: 한 푼도 못 줘요. ‎와서 마무리도 안 했잖아요. 
    ‎알렉스: 아니, 갔어요, 당신 집으로 갔어요. ‎당신 집으로 가는 길에 ‎20번 도로에서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2살 난 딸과 난 ‎그 차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젠 노숙자가 됐죠. ‎게다가 당신이 인색한 개자식이라, ‎애한테 먹을 것도 잘 곳도 ‎줄 수 없어서... ‎페리 선착장 바닥을 ‎못 벗어나고 그러다가 ‎오늘 아침 법원에서 ‎애를 빼앗아 가버렸어요. ‎그래요. ‎당신은 개를 5분 잃었죠? ‎난 딸을 잃었어요. ‎어디 맘대로 해봐요. 

     

    <해설> 

    알렉스는 대니얼과 함께 호기롭게(?!) 길을 나섰다. 하지만 대니얼의 차를 타고 페리 선착장을 거쳐서 피셔 아일랜드까지 가서 레지나의 집 앞에 당도하지만, 레지나를 만나지는 못한다. (역시, 레지나는 '잘 나가는 변호사'라서, 몹시 바쁘다.) 아마도 레지나가 이사를 갈 생각인지, 웬 부동산 중개업자가 손님과 함께 집을 둘러 보고 있다. 알렉스와 대니얼은 마치 집을 보러 온 손님처럼 행세하면서 집안을 쭉 돌아보았는데, 대니얼이 '뭐라도 들고 나가자'며 레지나에게 귀중한 물건을 찾다가... 레지나가 애지중지하는 반려견, '미스터 다시'를 몰래 들고 나온다(명백한 절도 행위!). 그러나 가족(딸)을 빼앗긴 엄마로서 마음이 약해진 알렉스는, 레지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반려견이 길을 잃어서 보호하고 있으니 와서 찾아 가라고 말한다.

    반려견을 (되)찾으러 부리나케 좇아온 레지나. 알렉스는 반려견을 되찾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고맙다'고 되뇌이는 레지나를 보면서 갑자기 억장이 무너진다. 그리고 화가 난다. 시작은 레지나가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자기 집에서 청소하다가 배가 고파서 쓰러지기까지 했고, 눈을 보면서 대화까지 나누었는데 전혀 못 알아 본다니? 레지나는 알렉스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전형적인 하대, 청소부/파출부? 너 같은 건 아웃 오브 안중! 그리고 끝은 레지나의 무심함 때문에 어떤 참담한 일이 생겼는지 알려 줘야겠다는 결심 때문에. (쉼터에서 만난) 대니얼이 '화를 내라'고 아무리 외쳐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알렉스였지만, 이젠 다르다. 정말 열 받았다. 

    레지나에게 떼 먹은 청소비를 달라고 말했으나, 알렉스가 반려견을 훔쳐 갔던 사실을 인지한 레지나도 열 받은 상태. 알렉스를 '도둑'이라고 칭하면서,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돈으로, 겨우 4만원!) 오히려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전형적인 형식 논리. 자신이 청소비를 주지 않은 행위는 소비자로서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정당한 불만 접수 행위. 하지만 알렉스가 미스터 다시를 데려갔던 행위는 재판까지 걸 수 있는 절도 행위. 맞다. 형식 논리로만 보면 레지나가 맞다. 알렉스도 안다. 다만, 어느날 갑자기 도망치듯 집을 나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딸까지 빼앗긴 엄마로서, 자신을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는 레지나에게 외친다: "그래요, 당신은 개를 5분 잃었죠? 난 딸을 잃었어요. 어디 맘대로 해봐요."

    언젠가 알렉스가 극중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래, 나 어리석고, 가진 건 하나도 없고, 완전히 외톨이야." 맞다. 알렉스는 어리석고, 엉망으로 살고, 외톨이다. 가정폭력 가해자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 기억 일부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피해를 입은 생존자인데, 하필이면 딱 아버지 같은 남자(남자 친구 션도 아버지가 알콜중독)를 골랐다. 알렉스는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자친구에게 의존해서 살고 있으니 그를 떠나면 완전히 빈털털이고, 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와 가정폭력 가해 사실을 잊고 사는 생부를 빼면 집도 절도 없는 외톨이다. 하지만 사실이 이러니까 레지나 같은 사람에게 무시 당해도 되나? 인간으로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그저 기계에 불과한 진공 청소기와 다를 바 없는, 시간당 돈을 지불하면 그뿐인 표준화된 노동력으로 취급받아도 괜찮나? 당연히, 아니올시다.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알렉스가 남의 반려견을 훔쳐오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장면까지 보여주면서 슬쩍 '선을 넘지만', 이를 통해서 알렉스가 (정서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욜란다: ‎(문자 메시지로) 레지나가 청소비 줬어요. ‎와서 수표 가져가요. 
    알렉스: (기뻐서 소리 지른다) ‎꺅~ (쉼터로 뛰어 들어가면서) ‎대니엘! ‎대니엘! ‎레지나가 돈 줬어! (대니얼 방에 갔지만 비어 있다. 새로운 입소 가족이 있어서 안내하고 있던 쉼터 사회복지사 데니즈를 발견한다.) ‎데니즈, 대니엘 어딨어요?
    데니즈: ‎(당황스러워 하면서) 사무실에서 얘기하죠. 
    알렉스: 쫓아냈어요? 어떻게 된 거죠?
    데니즈: ‎(단호하게) 아뇨. 
    ‎알렉스: 사라졌어요, 물건도 사람도 없어요. 
    ‎데니즈: ‎(새로운 입소 가족에게) 정말 미안해요. ‎23호로 갈래요? 금방 갈게요. (가족이 가고 나자 알렉스에게) ‎대니엘은 나갔어요, 떠났어요. 
    알렉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무슨 의미죠?
    데니즈: ‎‎오늘 아침 일찍 쉼터를 나갔어요. ‎그거 말고는 말 못 해요. 
    알렉스: ‎어디로 갔을까요? ‎데니즈, 목이 졸렸어요. 

    데니즈: ‎‎종종 있는 일이에요.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아요. ‎대개 여성이 7번은 다시 돌아가죠. ‎완전히 떠나기 전에요. ‎대니엘은 이번이 세 번째였어요. ‎난 다섯 번 걸렸고요. 

     

    <해설> 

    정서적으로 충격을 주는 또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알렉스가 생활하는 가정폭력 쉼터에서는 지리적 위치가 (가해자에게) 드러나면 안 되기 때문에, 입소자들이 쉼터에서 한 두 블럭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서 개인 전화기를 사용해야 한다. 알렉스도 다른 입소자들처럼 쉼터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전화기를 켰는데, '웬열?!' 욜란다가 문자를 보내왔다: 그 레지나가 청소비를 줬고, 그래서 알렉스에게 일한 댓가를 주겠단다. (그리고 알렉스가 욜란다 업체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끼얏호!" 라고 외치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알렉스. 문득, 자기가 바닥(카페트)에 드러누워서 우울해 하고 있을 때, 함께 화를 내면서 도와 줬던 대니얼 생각이 난다. 그래서 함께 기뻐하려고 대니얼을 만나러 쉼터로 달려간다. 

    그런데 대니얼이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알렉스는 당황한다. 쉼터지기 사회복지사, 데니즈에게 가서 물어본다: "데니즈, 대니얼 어딨어요?" 데니즈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대니얼은 나갔어요, 떠났어요" 라고 답한다. 이게 무슨 말? 대니얼의 목을 졸랐던 폭력 남편에게 돌아갔다는 말. 말을 잇지 못하는 알렉스에게 데니즈가 쇄기를 박는 말을 한다: "종종 있는 일이예요. 돌아가는 경우가 더 많아요. 대개 여성이 7번은 다시 돌아가죠. 완전히 떠나기 전에요. 대니얼은 이번이 세 번째였고, 난 다섯 번 걸렸어요." 세상에나~ 데니즈도 가정폭력 생존자였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사회적 어려움에 빠진 당사자를 도우며 한편으로는 안쓰러워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엄청나게 답답해 하는 동료 사회복지사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는 사회복지사가, 동일한 문제나 어려움에 다시 빠질 수밖에 없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답답해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어떤 문제나 어려움에 빠져드는 과정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는 지난한 과정이다. (우리는 보통 이를 간과한다.) 그래서 이 문제나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는 과정도, 꼭 그만큼 혹은 그 이상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사회복지사에게 최대한 빨리 결과물을 토해 내라고 몰아붙이고 요구하는 평가 체계나 운영 시스템도 문제겠지만, 사회복지사 마음가짐도 문제가 될 수 있겠다. 

    결국, 우리는 이 고통스러운 장면을 지켜보면서 단순한 진리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 본인이, 당사자가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가 여러 모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면, 진정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라면 꼭 봐야만 하는 드라마, '조용한 희망' 리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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