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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송한데, 무슨 결정을 내린 거죠?
    지식 공유하기(기타)/시네마 떼라피: 위안을 주는 영화 2022. 10. 22.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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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석권하고 있을 때 '조용히' 2등을 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조용한 희망' 이라는, 다소 재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 붙은 드라마다. 웬 가난한 싱글맘 이야기, 라고 하기에 흥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시험 삼아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았다가 완전히 빠져들어서, 마지막 회까지 단숨에 정주행하면서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최근 약 15년 사이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외국 드라마는 HBO 역사 초기에 제작된 극사실주의 형사 드라마, '와이어'였다. 하지만 '조용한 희망'을 보고 나서 가장 재미있는 외국 드라마가 바뀌어 버렸다.

    이유는? 첫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받을 수 밖에 없게 된)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국가로부터 사회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적나라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둘째,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처참한 현실을 충분히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그리면서도,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어디에 털나는 다소 민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가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참말로 많다. 어쩌면, 가난과 절망을 기본적으로 달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마음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사회복지사가 모든 어려움을 경험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일 첫 번째 노력으로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고 믿는다.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조용한 희망' 함께 읽기. 드라마 주요 장면을 함께 보고, 의미를 깊게 음미하는 글을 나눈다. 오늘은 제 2화 두 번째 이야기.


    알렉스: (초점 없는 시선을 뿌리며 법정에 들어선다.) 

     

    <해설> 

    알렉스는 20대 초반 엄마. 바텐더로 일하는 남자 친구 션의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매디, 라는 예쁜 아이가 있다. 헌데, 션은 알콜 중독 증세가 있고, 술만 마시면 난폭해진다. 알렉스는 션이 술을 마시고 집안 물품을 부수는 일을 몇 번 참다가, 어느날 새벽 딸 매디를 안고 션 몰래 집을 탈출한다. 그 전날 밤, 알렉스가 설겆이를 안 했다는 이유로 션이 크게 소리 지르며 물건을 때려 부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몸만 빠져 나왔지만, 갈 곳이 없다. 관청에 가서 뭔가 도움을 청하려고 해도 조건에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는 '가정폭력' 상황이지만, 알렉스는 인식이 부족하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다.) 알렉스가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션이 법적인 조치를 취한다: 법원에 무려 '양육권 회복을 위한 법정 명령을 신청'했다. 그래서 법원에 출석한 알렉스.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가정폭력 쉼터에서 만난 동료가 빌려 준 호피 무늬(!) 티셔츠를 입고 법정에 들어선다. 이렇게 대단히 공식적인 법 절차를 처음 겪어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보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그냥 어리둥절할 뿐이다.


    방청객: (모두 일어선다.) 

    알렉스: (피고인석에 가서 앉는다.) 

    법원 직원: 사건번호 549GRT, 보이드 대 러셀. 

    알렉스: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고 있다는 눈치를 채고, 황급히 옷매무새를 고치며 일어선다.) 

    법원 행정관: (높은 곳에 앉아서 내려가 보며 엄숙한 목소리로) 션 보이드가 제출한 긴급청원서 5937-G에 의하면, 2세 매디 보이드에 대한 친부인 션 보이드의 즉각적인 양육권 회복을 위한 법정 명령 신청이군요. 

    션 측 변호사: 네, 그렇습니다. 

    법원 행정관: 해당 가족의 양육 계획 수정서 제출과 서류 송달은 끝났나요? 

    션 측 변호사: 서류는 제출했고, 러셀 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허락하신다면 지금 송달하죠. 

    법원 행정관: 승인합니다. 

    션 측 변호사:  (알렉스에게 서류 봉투를 건넨다.) 송달했습니다. 

    법원 행정관: 매디 보이드에 대한 법원 명령 근거는 뭐죠? 

     

    <해설> 

    알렉스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법원 행정관이나 변호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션은 법적으로 알렉스에게서 딸 매디를 빼앗아 가려고 시도하는 중이다.)


    션 측 변호사: 행정관님, 러셀 씨는 어쩌고저쩌고를 충족하지 못하고, 법적으로 어쩌고저쩌고해서, 법정에 어쩌고저쩌고를 요청합니다. 

    법원 행정관: 알겠습니다. 어쩌고저쩌고. 

    션 측 변호사: 아주 어쩌고저쩌고. 

     

    <해설>

    기가 막힌 장면 연출이다. 이 장면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세 사람이다. 법원 행정관(판사가 아님), 션 측 변호사, 그리고 알렉스. 하지만 알렉스는 법원 행정관과 션 측 변호사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알렉스 귀에는 두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어쩌고저쩌고' 라고 들린다. 어쨌든 알렉스와 매디에게 너무나 중요한 결정을 하는 중인데, 당사자인 알렉스는 그 과정에 대해서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당사자가 모르는 언어(전문 용어)가 얼마나 당사자를 강력하게 소외시킬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체험할 수 있는 장면이다.


    법원 행정관: 러셀씨. 

    알렉스: 죄송하지만, 판사님, 이해가...

    법원 행정관: 행정관. 판사가 아니라 법원 행정관이예요. 당신 계획은 뭔지 물었어요. 

    알렉스: 계획요? 

    법원 행정관: 매디를 돌볼 계획요. 한밤중에 집에서 데리고 나와 보이드 씨에게 아이의 행방을 숨기고 은폐했습니다. 72시간 이상을요. 당신에겐 집도, 수입도 없어요. 어쩔 계획이죠? 

    알렉스: 생각하고 있어요. 

    법원 행정관: 아이가 지낼 곳은 있나요? 

    알렉스: 네. 지금 맥멀린 하우스에 있어요. 

    법원 행정관: 거긴 가정 폭력 쉼터인데요? 

     

    <해설> 

    알렉스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 까맣게 모른다. 맥멀린 하우스. 가정 폭력 쉼터다. 알렉스와 매디가 그곳에 있다는 말은, 션이 두 사람에게 가정 폭력을 가했다는 뜻이 된다. 알렉스가 이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하면 매디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증명하지 못한다면? 션을 공식적으로 가정폭력 가해자로 모는 셈이 되고(실제로 가정폭력 가해자다), 사건이 커진다. 알렉스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가정 폭력을 당했고, 그래서 집에서 탈출했고, 션에게 매디를 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는 법정. 션이 가정 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하려면, 명확한 증거나 증인이 필요하다.


    알렉스: 네, 복지관에서 주선해 줬어요. 저희가 얼마나 위험했는지 말했거든요. 

    션 측 변호사: 완전히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제 의뢰인은 이 여성이나 친자에게 손댄 적이 없습니다. 

    법원 행정관: 러셀 씨, 집을 나오던 날 밤 경찰에 신고했나요? 

    알렉스: 아뇨. 

    법원 행정관: 이 주장을 증명할 객관적 증인이 있습니까? 

    알렉스: 아뇨. 

    법원 행정관: 보이드 씨의 가정 폭력을 신고해 문서화한 적 있습니까? 

    알렉스: 아뇨. 

    션 측 변호사: 어쩌고저쩌고 해도 될까요? 

    법원 행정관: 네, 어쩌고저쩌고하세요. 

    션 측 변호사: 피고는 어쩌고저쩌고를 충족 못 해, 법적으로 어쩌고저쩌고입니다. 

    법원 행정관: 러셀 씨, 사실입니까? 보이드 시의 아이를 뒷좌석에 혼자 뒀다가 교통사고가 났나요? 

    알렉스: 네, 애 인어를 찾으러 갔죠. 

    법원 행정관: 보이드 씨, 본 법정은 매디에 대한 귀하의 양육권 회복 긴급 청원을 승인합니다. 7일 후에 속개하겠습니다. 휴정합니다. 

     

    <해설> 

    결론은 뻔하다. 션은 알렉스나 매디를 직접 타격한 적은 없다.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벽을 망가뜨리거나, 물건을 던졌을 뿐. 그마저도 증거나 증인이 없다. 법원 행정관은 지극히 상식적으로 판결을 내린다: 알렉스는 공식적으로/법적으로 (잠정적이지만) 매디를 빼앗긴다.


    알렉스: 죄송한데, 무슨 결정을 내린 거죠?   

    법원 행정관: 임시 양육권 심리까지 7일 남았다는 겁니다. 그동안 직장을 구하고, 매디를 양육할 납득할 만한 계획을 세워요. 

    알렉스: 그때까지 매디는 션이랑 있고요? 

    법원 행정관: 중립적인 제삼자가 있는 자리에선 애를 볼 수 있어요. 

    알렉스: 안돼... 

    법원 행정관: 러셀 씨, 이미 휴정했어요. 

     

    <해설>

    아직도 알렉스는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그래서 법원 행정관에게 묻는다: "죄송한데, 무슨 결정을 내린 거죠?" 이미 버스는 떠났다. 알렉스는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서 자신이 매디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현실에서, 샤넬 뮤즈로 활동하고 있는 마거릿 퀄리(알렉스 역할 맡은 배우)> 

     

    <해설>

    이 장면에서, 존 웰스 감독이 연출을 기가 막히게 잘 했다. 시각 연출 포인트: (1) 법원 행정관은 높은 단상에서 알렉스를 내려다 보고 있고, 알렉스는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죠?' 라는 표정으로 올려다 보고 있다. 시각적으로 법원 행정관은 더욱 권위적으로 보이고, 알렉스는 더욱 참담해 보인다. (2) 법원 행정관과 션 측 변호사가 계속 무슨 말을 하는데, 알렉스 귀에는 '어쩌고저쩌고' 라고 들린다. 실제로 이렇게 말했을 리는 없다. 전문 용어를 알리 만무한 알렉스 귀에 웅얼대는 소리로 들리는 상황이다. 알렉스가 느끼는 무력감이 배가 된다. 알아 듣지 못하는 언어 몇 마디로 한 사람이 완벽하게 소외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 상황에 당신이 놓여 있다고 상상해 보라.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다. 내 삶과 직결되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내 말은 전혀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고 황당할꼬. 

    얼마 전, 미용실에 갔을 때... 머리를 다 깎고 나서 '샴푸실'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나는 이 미용실 직원 분께서 어떤 행위를 하려는지 알고 있다. 물론, 머리를 감겨 주는 행위. 이 분께서는 말도 굉장히 신경써서 친절하게 하시고, 머리를 감겨주시는 과정에서 아주 작은 행위를 할 때마다 나에게 의사를 물어 보신다: "물 온도는 괜찮으세요?", "혹시 추가로 헹구고 싶은 부분이 있으신가요?", "지압 강도가 너무 세면 말씀히 주세요." 그런데 머리를 감겨 주시다가, 실수로(혹은 부주의로) 내 귀에 물이 들어간 일이 생겼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불편했다.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미용실 직원 분께서 이렇게나 나에게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 주시는데도 나는 불편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에 관해서 어떤 중요한 행위를 하는데 나는 그 의미를 깡그리 모른다면?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비참할 것 같다. 

     

    이 장면에 관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라.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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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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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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