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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와 나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 16. 07:20728x90반응형
글쓰기와 나
이재원
나는 나에게 어느 정도 글 쓰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상당히 오랫동안 잘 모르고 살았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까맣게 몰랐다. 대학에 가서 여러 필요에 따라서 작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40세가 넘어서서 내 전문 분야 관련 글을 왕성하게 쓰면서 더 분명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만약에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에컨대, 대학에 갈 때 국문과를 지망했을 수도 있겠고, 최소한 주간지 기자 정도가 되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미래를 꿈꾸었을 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종교에 미쳐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어떤 보수적인 개신교 선교단체로 흘러 들어가서, 뜬금없이 '선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살았다. 그런데 이 단체는 '설교 말씀 읽고 글쓰기'를 가장 중요한 의식(?)이자 훈련 방법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구성원이 글을 많이 쓰도록 강력하게(거의 '강요' 수준으로) 권장했다. 무엇보다도, 매주 1편씩 쓰는, 그곳 사람들이 '소감'이라고 칭했던, 개인 QT 글을 좀 더 길게(A4지로 4, 5매) 쓰도록 만들어서 구성원을 훈련하고 단속(?)했다.
글쓰기로 훈련시키기, 정말 강력한 방법이었다. 이 단체에서는 구성원끼리 모이면 거의 무조건 글을 썼고, 서로 써 온 글을 읽으면서 함께 반성하고, ‘은혜' 받으며, 폭로(?)하고, 달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이렇게 대단히 전투적인(?) 선교 단체에서, 약 3년 반동안 거의 원리주의에 가깝도록 복음주의적인 텍스트를 읽은 후에, 신 앞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돌아보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짧지 않은 글을 꾸준히 쓰면서, 현재 내 문체 중 일부가 형성되었다: 고백체(고민이 담긴 생각이나 힘들고 어려운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한편, 이 시기를 거치면서 나는 글쓰기에 약간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내가 남보다 글을 잘 쓴다는 상대적인 자신감을 얻었다기보다는, 그냥 나 스스로 글쓰기에 두려움이 없어졌달까...어떻게? 역시, 질보다는 양이 문제였다. 주간지 기자들은 수년에 걸쳐서 일정 분량 이상 원고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쓰면서 자동으로 글쓰기를 연습하게 된다고 한다.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꾸준히 이겨내면서 필력이 생기는데, 그러면 어떤 주제가 할당되더라도 무난하게 글을 완성한다. 말하자면 이런 자신감을 나는 이 시기에 탑재하게 된 셈.
이 무렵부터 나는 글쓰기 학습 관련 책을 한 권씩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 분야에서 영원한 고전에 속하는 '문장강화(이태준 저)'부터 유시민 씨가 쓴 '글쓰기 특강'이나 강원국 씨가 쓴 '강원국의 글쓰기'까지, 웬만큼 유명한 글쓰기 관련 서적은 거의 모두 사서 읽어본 듯하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있듯이, 방금 언급한 책 모두 좋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책은 따로 있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쓰신 '옥중서신'이다. 왜? 솔직하고, 쉬우면서도, 내용이 깊다. 그리고 모든 책 내용이 그가 살아낸 위대한 삶으로 충분히 검증되었다.
김대중 선생께서 쓰신 글을 읽으면서, 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소설가나 시인처럼 반드시 문학적인 재능을 타고 날 필요는 없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얻었다. 그리고 나중에 탁석산 (철학)박사께서 쓰신 글쓰기 책을 읽으며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문학적인 글쓰기와 실용적인 글쓰기로 나뉘는데, 전자는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한 반면, 후자는 노력만 하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그 후부터 글쓰기에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잘할 수 있다니! 나도 노력으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말 아니던가.
그래서 글을 많이 쓰기 시작했다. 헌데 그냥 무작정 많이 쓰지는 않았다. 되도록이면 우리말을 최대한 곱게 구사하고 싶어서 국어 공부를 병행했다. 아울러, 우리말, 특히 지식을 다루는 우리말은 영어나 일본어에 많이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기에, 온갖 오염 물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오덕 선생님께서 쓰신 '우리말 바로쓰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구한말 시기 이후 지식인 계층이 어떻게 우리말을 더렵히고 망쳐 놓았는지 방대한 자료를 제시하는 이 책을, 지금도 나는 글쓰기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필수 코스로 강력하게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최근 10년 동안 내 글쓰기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대상과 만나게 된다: 해결중심상담(Solution-Focused Approach). 엥? 상담 모델이 글쓰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있다. 그것도 대단히 근본적으로 관련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글쓰기는 나에게 '잊혀진 목소리를 되찾는 활동'이다. 그리고 해결중심상담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내담자가 잊고 지냈던 목소리를 되살려서 말할 수 있도록 마이크를 쥐어 주는 일'이다. 한 마디로, 글쓰기와 해결중심상담은 '해방(emancipation)'이라는 매우 정치적인 요소를 공유한다. 해방이라... 얼마나 즐겁고 신나는 말인가!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게 되었다. 내가 거의 완전히 독학으로 엄청나게 쓰고 또 쓰면서 배워 온 글쓰기 개념, 원리, 방법, 테크닉을 나만 알고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글쓰기와 해결중심상담을 '해방'이라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누군가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말에는, 그가 스스로 자신을 해방시키는 모습을 곁에서 목도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경험도,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학생이 힘들어 하다가도 자신이 쳐 놓은 벽을 넘고 깨 부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선생이 느끼는 폭발적인 희열을.
그래서 나는 학생에게 글을 쓰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키우라고 특별히 강조한다. 물론, 다른 모든 기술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처음에는 좋은 모델을 찾아내어서 열심히 따라하고 베껴야 한다. (예컨대 필사는 평범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글쓰기 공부 방법이다!) 하지만 결국엔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뚜렷한 개성을 찾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창법이나 매너가 누군가를 따라하는 느낌이 든다면, 제대로 된 아티스트로 인정받지 못하듯이, 글쓰기도 쓴 사람이 개성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절대로 인정받을 수 없다.
덧붙임: 글을 마치면서 유영덕 선배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재원 샘은 글을 쓸 때 어떻게 시작해?", "재원 샘은 왜, 어떻게 글쓰기를 좋아하지?" 등등 해결중심상담(다시 말해서, 좋은 질문 만들기) 전문가인 나조차도 놀랄 정도로 고급진 성장 질문을 던져 주셨다. 이 글은 최근 한 달 사이에 함께 대화를 나누는 중에 유영덕 선배님께서 내게 던지셨던 많은 질문에 대한 총체적인 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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