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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여사님,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 줘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4. 4. 18:19728x90반응형
제목: 임 여사님,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 줘
글쓴이: 이선영(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대리,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손님, 요금을 제대로 내셔야죠.’
‘아저씨! 얘는 초등학생인데 왜 어른 요금을 내요. 나는 못 냅니다! 나 참. 얘가 어디 봐서 어른이예요? 어이가 없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무척 컸다(160cm). 그래서 아무도 나를 초등학생으로 안 보았다. 덕분에(?) 버스만 타면 엄마는 기사님과 요금 문제로 종종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나는 키만 컸지, 사실상 ‘속 빈 강정’이었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 다닐 무렵, 특별한 이유도 없이 3일간 기절해 있었다. 병원에 가 봐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는데, 엄마는 내가 영영 못 일어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듯 일어났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코피가 났다. 어디에 심하게 부딪히거나, 누구에게 맞거나, 나 스스로 코를 과도하게 후벼파지도 않았는데 그냥 코피가 났다. 그리고 한 번 코피가 나면 잘 멎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어느날 저녁, 집에 있는데 갑자기 시뻘건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비릿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휴지로 막아도 코피가 휴지를 뚫고 흘렀다. 나는 무서워서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다가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맨발로 나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갔다. 엄마 심장 소리와 숨소리가 내 귀에 '쿵쿵쿵' 울렸다. 엄마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쯤 병원에 도착했다.
아빠는 건설 일을 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 더 길게는 1년 동안 출장 중이었다. 아빠가 있었지만 없었던 셈. 엄마는 도움 줄 사람 하나 없는 서울 단칸방에서 나와 동생을 키우시며 늘 온갖 부업을 하셨다. 그래서 학교 다녀와서 문을 열면, 엄마는 언제나 눈이 빠지게 인형 눈을 붙이고 계셨다. 하지만 엄마는 늘 묵묵히 견디셨다. 돈만 벌어다 주는 하숙생(?)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만, 흔한 잔소리 한 마디 하는 법이 없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힘들었을까.
2021년 여름 어느날 새벽 5시, 우리 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계속 우는 아이를 들쳐업고 정신없이 응급실로 향했다. '내가 뭘 잘못 먹였나? 엄마가 미안해.'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때라, 1시간을 기다려서야 겨우 접수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픈 아이들 울음소리로 아비규환이었다. 진료에 필요한 검사를 받아야 해서 아이에게 밥도 물도 먹일 수 없었다. 딸은 울고 불고 울다가 잠들기를 반복했다. 천만다행으로 딸은 큰 이상은 없었고 약만 처방받았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돌아보니, 엄마가 견뎠을 하루하루가 떠올랐다. 엄마는 자신보다 나를 사랑했구나. 살면서 힘이 힘들 때면 코피가 나서 병원에 업혀 갔던 날 느꼈던 엄마 체온과 땀을 떠올린다. 그러면 불끈 다시 힘이 난다. 그렇다. 사랑이 삶에서 얼마나 힘이 되는지 엄마를 통해 배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딸을 꼭 안아주며 이렇게 속삭인다.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 내일은 우리 엄마를 만나 꼭 안아줘야겠다. 그리고 꼭 말해 줘야겠다. '임 여사님, 사랑해. 오래오래 내 옆에 있어줘.'
<이재원 선생 최종 피드백>
정말 잘 쓰셨습니다. 졸업 작품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서사 구조가 탄탄하고, 적절하게 구사하신 유머도 좋습니다. 이선영 대리님은 기본적으로 글발이 있습니다. 그리고 개성도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쓰신다고 해도 개성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적의것들'이 거의 안 보여서 좋았습니다. 네, 우리가 신경을 안 쓰면 '적의것들'은 마치 좀비처럼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우리 글을 마구 물어 뜯습니다. 그러니 계속 정신을 차리고 염두에 두면서 써야 합니다.
한편, 약점도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지적해 드렸습니다만, 이선영 대리님은 문장과 문장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하고 풀어내는 상술 기술을 좀 더 연마하셔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최대 과제입니다. 본인도 느끼시겠지만, 원문을 읽어보면 소소하게 논리적 구멍이 많습니다. 이는 여전히 자기 시각으로 글을 쓴다는 증거입니다. 글을 쓰실 때는, 사건을 직접 경험한 사람 눈이 아니라, 독자 눈으로 쓰셔야 합니다. 한 번에 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지식 공유하기(기타) >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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