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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하지 않는 삶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4. 5. 06:14728x90반응형
제목: '척'하지 않는 삶
글쓴이: 차정숙(군산나운종합사회복지관 과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첫 아이 어린이집 재롱잔치 날, 아이가 귀여운 딸기 모자를 쓰고 무대 중앙에 서 있다. ‘아싸~ 중앙에 서다니, 제일 잘 하나 봐. 역시 센터상이야!’ 백일 갓 지난 둘째를 엄마에게 부탁하고 나오길 참 잘했다. 그런데 웬열? 음악이 들리고 하나둘 율동을 시작하는데, 우리 아이는 우두커니 서 있다. 이제 곧 시작하겠지 생각하며 응원해 보지만, 녀석은 몸을 움직일 생각은 안 하고 객석에 앉은 엄마를 찾으려고 눈만 더 동그랗게 뜬다. 모두 웃기다고 박수치고 난리가 났는데, 우리 둘만 공연 내내 울상이었다. 길기만 했던 노래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무대 뒤 대기실로 달려 갔더니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긴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연습 때 제일 잘했는데 아쉽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아이 손을 잡고 집에 돌아왔다.
초등학교 3학년 봄, 우리 아빠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른 후 처음 등교하는 날, 엄마가 골라 준 제일 예쁜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갔다. 반 친구 모두 등교하고 나서 담임 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불러 세웠다.
“같은 반 친구가 슬픈 일이 있었어요. 모두 위로해 줘야겠죠? 이럴 땐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요?”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소심했던 내가 발표를 해서 주목을 받아도 힘들었을 텐데, 심지어 위로를 받는 상황이라니. 울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서 있는 그 몇 분이 너무 길었다. 아빠가 없으니 슬픈 일도 많아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씩씩해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괜찮아 보이고 싶었다. 소극적으로 생활하면 아빠가 안 계신 아이처럼 보이고, 그러면 모두 나를 동정한다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였어도 아빠가 없어서 동정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척하면서 살기로 했다. 원래부터 씩씩하고 활발한 아이처럼.
그때까지 멀리했던 바깥놀이에 열심히 참여했다. 술래잡기나 고무줄놀이처럼 여자들이 주로 하는 놀이뿐만 아니라, 말뚝박기나 말타기처럼 남자들이 주로 하는 고된(?) 놀이도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사람 숫자가 안 맞으면 깍두기라도 되어서 어떻게든 끼려고 애썼다. 별이 뜰 때까지 운동장에서 놀거나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했다. 어려서 코미디 프로그램이며 토크쇼까지 열심히 챙겨보던 내 말주변이 빛을 발했다. TV에서 본 장면을 어설프게 흉내내도 깔깔대며 웃어주는 친구가 많아졌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니 어느새 나는 친구도 많고 우스갯소리도 잘하는, ‘재밌는 친구’가 되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성격도 좋으시고, 적극적인 분이시라고요?” 처음 만난 사람도 이런 말을 꺼낼 정도로, 이제 나는 ‘항상 적극적이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먼저 다가가서 스스럼없이 말을 붙이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누가 그렇게 말하더냐고, 나 그런 사람 아니라고 손사래 쳐봐도,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실제로는 적잖게 부담스럽고 불편한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성격도 좋고 적극적인’ 사람인 척해야 한다. 그래서 아마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새롭게 누군가를 만나면 너무 피곤하다.
다시 둘째 아이 이야기로 돌아간다.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정적인 아이. 무대 중앙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는 아이를 보니 어린 내가 보였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사람들 앞에서 몹시 수줍어하고 내성적인 내 원래 성격을 숨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해 온 내 모습이 보였다. 과연 나는 행복했는가? 확실히, 성격 좋아 보이고, 적극적인 사람처럼 보이긴 했다. 이런 점에선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내 마음 속 무대 위에선 그리 행복하진 않았다. 울상을 지으며 얼어붙었던 둘째 아이처럼. 그래서, 조금 돌아왔지만 이제는 원래 내 모습으로 살고 싶다. 최소한, 더 이상 척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온전히 내 마음과 감정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있는 그대로, 생긴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한다. 네 삶에서는 네가 주인공이니까.
<이재원 선생 최종 피드백>
전체적으로 이야기 구조를 잘 짜셨습니다.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적당한 유머도 좋습니다. 차정숙 과장님께서는 이미 있는 글발과 개성을 유지하신 채 잘 성장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성장하실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디 글쓰기를 멈추지 마시고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다만, 한 가지만 간곡하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글이란 내가 내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이면서, 내 글을 읽는 독자를 의식해야 하는 소통 행위입니다. 즉, 내가 쓰고 싶은 내용만 써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할 말에 집중하다 보면, 독자가 내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를 덜 신경쓰면서 생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용을 찾으셔야 합니다. 언제나, 글로 나를 처음 만나는 독자를 가정하시고, 그가 내 이야기를 술술술 읽을 수 있도록 쓰세요.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독자를 배려하는 소통 정신이 바로 글쓰기 실력입니다. 계속 정진하세요.
<본인 최종 피드백>
이재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저도 이 글을 쓸 때 각종 세부 정보를 넣을까 말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다가 뺀 부분을 거의 다 지적해 주셨어요. 어느 정도 수준으로 구체적으로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한편, 마지막 대목에서 이재원 선생님께서 제가 미처 정리하지 못한 부분을 콕 짚어서 정리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밝게 지내려고 노력했던 노력이 무조건 나쁘지는 않았거든요. 좋은 점도 있었어요. 반대로 원래 제 모습대로 내성적이고 소심하게 살아가고 싶지는 않거든요. 어쨌든 지금 제 모습을 긍정하면서, 이대로 살아가야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고쳐 주셔서 무척 좋았습니다.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지식 공유하기(기타) >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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