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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노래, 'Steal Away'에서 배우는 글쓰기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5. 22. 07:29728x90반응형
며칠 전, 우연히 어떤 노래를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1998년 박지윤이 발표한 제 2집 앨범 중 수록곡. Steal Away(주인공). 내가 20대 중반, 군대에 있던 시절 발표된 노래. 참 오랫만에 듣는 노래였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좋았던 기억이 난다. 리듬과 멜로디가 경쾌하고 박지윤 창법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특별히, 가사가 좋았는데, 뻔뻔할 정도로 솔직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있어서 더 슬펐다고나 할까.
음악적으로 평가해 본다면, (내가 음악 평론가는 아니니 전문적으로 평할 수는 없지만) 25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모던하다. 남성 랩 부분은 당시에는 감각적으로 들렸겠지만 지금은 구리다.
무의식 중에 가사를 기억하고 흥겹게 따라 부르고 있다가, 문득 이 노래를 글쓰기 교육에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내가 가르치는 글쓰기 방향과 아주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우선, 유튜브 동영상으로 노래를 감상하면서, (가사를) 찬찬히 음미해 보자.
Steal Away (부제: 주인공)
작사: 이승호
작곡: 윤일상
노래: 박지윤
요즘 널 보는 눈빛 달라지지 않았니?
어쩜 그렇게도 무뎌. 정말 모르는 거니?
숨기고 싶지 않아, 그와 나의 사랑을.
이젠 너에게도 나의 존잴 알려야겠어.
나와 함께 웃고 있을 때, 너의 전화라도 올 때면
괜히 눈치보는 그가 싫었어.
포기해. 그 앤 이제 너를 원하지 않아.
오로지 그의 마음 속은 나로 가득 차 있어.
미안해. 이런 얘기, 나도 원하지 않아.
오, 제발 그의 변심 앞에 나를 탓하지는 마.
너에게 할 수 있는 나의 작은 배려는
너에 대한 그의 생각, 말하지 않는 거야.
지금 이 무대에서 그냥 퇴장하면 돼.
이제 주인공은 나야. 더는 네가 아니야.
너와 함께 웃고 있어도, 그 앤 나를 생각할 텐데.
그럼 네가 너무 비참하잖아.
포기해. 그 앤 이제 너를 원하지 않아.
오로지 그의 마음 속은 나로 가득 차 있어.
미안해. 이런 얘기, 나도 원하지 않아.
오, 제발 그의 변심 앞에 나를 탓하지는 마.
매일 새벽 내게 전화해, 우리 둘이 했던 얘기들.
상상조차 할 수 없겠지.
포기해. 그 앤 이제 너를 원하지 않아.
오로지 그의 마음 속은 나로 가득 차 있어.
미안해. 이런 얘기, 나도 원하지 않아.
오, 제발 그의 변심 앞에 나를 탓하지는 마.
수많은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들으면
오히려 너를 위로하고 나를 비난할 거야.
하지만 그가 정말 너의 운명이라면
왜 하필 나를 원했겠니. 나를 탓하지는 마.
지금까지 한 얘기.
내가 헤어진 이유.
지금까지 한 얘기.
내가 헤어진 이유.
지금까지 한 얘기.
내가 헤어진 이유.
이젠 가사를 한 줄씩 찬찬히 분석해 본다.
<1절>
요즘 널 보는 눈빛 달라지지 않았니? 어쩜 그렇게도 무뎌. 정말 모르는 거니?
숨기고 싶지 않아, 그와 나의 사랑을. 이젠 너에게도 나의 존잴 알려야겠어.
나와 함께 웃고 있을 때, 너의 전화라도 올 때면 괜히 눈치보는 그가 싫었어.
첫 줄을 읽으면 가사 전면에는 청자인 '너'부터 등장한다. 숨겨진 화자 '나'가 '너'에게 질문하면서 대화를 시작. '어쩜 그렇게도 무뎌, 정말 모르는 거니?' 이 대목을 보아 하니, '나'는 뭔가 '너'가 모르는 일에 대해서 말하는 듯하다.
나는 이 노래가 다짜고짜(?!) 시작해서 좋다. 예컨대, 화자(나)가 청자(너)에게 '안녕? 나는 누구야' 이런 식으로 예의 바르게 자신을 소개하지 않고 바로 할 말(본론)으로 들어가서 좋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대표적 이유 중 하나: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고민을 호소하는 이유는, 글을 쓸 때 자기 생각/감정을 표현하기에 앞서서 다른 사람 시선을 너무 많이 신경쓰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이 이해할까?' 이런 고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 많아지고, 오만 가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으면서 배경을 설명하게 된다.
이럴 필요 없다. 그냥 툭, 하고 들어가야 한다. 글을 쓸 때는 내가 주연이다. 주변을 신경쓸 필요가 없다. 시작부터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 내 세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내가, 내 세계를, 내 방식으로, 뚜렷하게 표현하면 된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이 된다면, 아예 쓰지 말라. 어차피 글에 힘이 안 생긴다.
두 번째 줄로 넘어가자. 숨기고 싶지 않단다. 이 대목에서 '그(아마도 남자?)'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화자는 이젠 '너'에게도 '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단다. 상황은 간단하다. 화자(나)는 청자(너)의 남자친구(그)를 몰래 빼앗고 있는, 말하자면 그가 숨겨 놓은 불륜녀다. 한 마디로, 화자(나)는 '나쁜 년'이다.
세 번째 줄로 넘어간다. 이제 정체가 밝혀진 화자(나)는 더 노골적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는 화자(나)와 청자(너) 몰래 숨어서 연애한다. 헌데, 그와 재미있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청자(너)에게 전화가 온다면? 그가 눈치를 본단다. '어, 친구랑 대화 나누고 있었어' 이렇게 말하면서 대충 둘러댔겠지? '나쁜 놈'이다.
이상은 후렴구 이전에 나오는 1절 가사 내용이다. 다시 평가하자면, 참 감각적으로 할 말을 시작했다. 엄청나게 지저분한 분륜 이야기를 소개하는, 기가 막히도록 멋진 서론이다. 불륜을 이야기 하려는데, 불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있다. 화자(나)는 참 뻔뻔한/대담한 사람이다.
<후렴구>
포기해. 그 앤 이제 너를 원하지 않아. 오로지 그의 마음 속은 나로 가득 차 있어.
미안해. 이런 얘기, 나도 원하지 않아. 오, 제발 그의 변심 앞에 나를 탓하지는 마.본론에 해당하는 후렴구를 살펴 보기 전에, 노래 제목을 다시 살펴 보라. Steal Away: 훔쳐서(steal) 멀리 달아난다(away).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 이야기다. 화자(나)가 청자(너)에게 선포하듯 말한다: (1) 포기해. 그 앤 이제 너를 원하지 않아. 오로지 그의 마음 속은 나로 가득 차 있어. (2) 미안해. 이런 얘기, 나도 원하지 않아. 오, 제발 그의 변심 앞에 나를 탓하지는 마.
그러니까, 화자(나)가 청자(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다:
"(그를) 포기해. 미안하지만 나를 탓하진 마."
가사 내용을 윤리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그냥 글쓰기 기술로만 본다면, 대단히 훌륭하다. 왜? 메시지가 뚜렷하고 선명하기 때문에. 괜히 빙빙 돌려서 말하지 않고 핵심을 곧바로 찌르기 때문에.
화자(나)는 어떤 전략을 선택했는가? 두괄식 전개 방법이다. 두괄식이 무엇인가? 단락 차원에서 이야기할 때, 주제문이 단락 앞에 나오는 전개 방법이다. 주제문이 무엇인가? 주제를 담고 있는 문장이다. 주제는 무엇인가? 소재(글감)에 대해서 내가 떠올린 핵심 생각/감정이다. 쉽게 말해서, 두괄식이란 '결론부터 말하기'다. 일단 결론부터 말해 놓고, 이 결론을 서서히 뒷받침하는 구조다.
포기해. (왜냐구?) (네가 아직도 남자친구로 생각하는) 그애는 이제 너를 원하지 않아. (마음이 떠났다구.) 오로지 그의 마음 속은 나로 가득 차 있어. (나를 생각한다구. 네가 아냐. 말하자면 이젠 내가 실질적인 여친이야.)
미안해. (무슨 말이냐구?) (나, 그렇게 나쁜 사람 아냐. 나, 그렇게 가혹한 사람 아냐.) 이런 이야기, 나도 원하지 않는다구. 하지만 그애 마음이 움직인 걸 어떻게 하니? 그러니까 걔를 탓해야지, 나를 탓해서는 안 돼.
화자(나)는 청자(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하다. 포기해. 그리고 미안해. 그리고 미리 이야기 한 결론 이후에는 '자기 나름대로' 세운 탄탄한(?) 논리가 이어진다. 그냥 멍하게 듣다간 홀라당 넘어갈 지경이다.
<에필로그>
지금까지 한 얘기. 내가 헤어진 이유.
노래 마지막 대목이다. (2절 해설은 생략한다.) 에그머니나,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지금까지 이 노래를 듣던 사람은 화자(나)를 나쁜 년으로 생각했다. 청자(너)가 만나는 남자친구를 화자(나)가 빼앗아 갔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이 모든 이야기를 한 사람은 남자친구를 빼앗아 간 화자(나)가 아니라, 남자친구를 빼앗긴 청자(너)였다. 결국, 빼앗아 온 이야기가 아니라 뺏긴 이야기.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해 준 진짜 화자(노래 속 '너')는 왜 이런 식으로 말했을까? 내 생각에는, 전 남자친구와 남자친구를 빼앗아 간 '그 년(!)'이 저지른 만행을 가장 효과적으로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하긴, 남의 연인을 빼앗아 간 사람이 저렇게 솔직하게(더 나아가서 적나라하게) 내면을 고백할 수는 없겠지. 진정한 화자가 피해자니까 연인을 빼앗아 간 나쁜 년 속마음을 이렇게 극적으로 폭로했겠지. 어쨌든, 솔직한 화법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듣다.
정리한다. 이 노래 가사는 무척 훌륭하다. 그래서 우리가 글쓰기를 연습할 때 참고할 만하다. 세 가지 이유다. (1) 배경 설명을 장황하게 하지 않고 글감과 상황을 곧바로 제시한다. (2) 글감과 관련된 글쓴이 생각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뒷받침 문장을 적절하게 구사한다. (3) 글쓴이가 경험한 진실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폭로)한다.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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