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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송부연 이야기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5. 4. 02:46728x90반응형
제목: 사회복지사, 송부연 이야기
글쓴이: 송부연(서운장애인주간보호센터 센터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하나. 두 사람 이야기
서울에 사는 노신사가 시집간 딸을 만나러 대전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만난 딸과 담소를 나눈 뒤, 상경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런데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아서 역 앞 식당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집.’
문에 쳐진 발을 걷고 들어가자 알바생처럼 보이는 청년이 있다. 노신사는 “여기 순대국밥 하나 주세요.”라고 말한 후 의자에 앉았다. 청년은 어서 오라는 말도, 알겠다는 대답도 없이 물과 컵만 가져다준다. 이내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나온다. “손님 뭐 드릴까요?” 노신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국밥을 달라고 재차 이야기한다.
국밥을 먹다가 김치가 떨어졌다. 노신사는 청년을 향해 말한다. “여기 김치 좀 주세요.” 하지만 청년은 쳐다보지 않는다. 노신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한 번 더 얘기한다. “아! 여기 김치 좀 달라고요!” 짜증이 주방까지 닿았는지 아주머니가 김치를 들고 나온다. “손님, 죄송해요. 사실 저놈이 우리 둘째 아들인데, 귀가 안 들리는 벙어리에요.” 이 말을 듣자, 노신사가 무릎을 치며 아주머니에게 속삭인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인다. 노신사에게도 청각장애인 막내딸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노신사가 막내딸을 앉혀 놓고 이야기한다. “정자야, 다음 주에 아버지랑 대전에 갈래?” 막내딸은 언니가 사는 곳에 간다는 사실에 영문도 모른 채 기분이 좋아졌다. 다음 주가 되어, 노신사와 막내딸은 함께 대전에 내려왔다. 그들이 향한 곳은 대전역 앞 지하다방. 안으로 들어가니 국밥집 둘째 아들이 앉아 있다. 노신사는 막내딸에게 앉으라고 말했다. “정자야, 아버지가 너 시집보낼라 그래.”
두 사람은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대신 종이에 써서 이야기를 나눈다. 국밥집 둘째 아들이 먼저 용기 내어 종이를 건넸다. “33세, 송수용.” 바닥만 내려다보던 막내딸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본다. 남자 눈이 제법 선하게 생겼다. 마음은 떨리지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아이들도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렇게 내가 태어났다.
두울. 두 사람의 딸 이야기
나는 코다(CODA: Child Of Deaf Adult)다. 코다는 농인(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한다. 엄마가 날 임신했을 때, 나도 장애가 있을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난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코다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좋은 점도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확실히 쉽지는 않았다. 그중에서도 어른과 어른 사이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내가 바로 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부모님이 듣지 못하시니 말을 아무렇게나 했다. 부모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내가 어리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무시였다.
부모님께서는 육가공 회사에 다니셨는데, 도축한 고기를 소분 하여 납품하는 일을 했다. 두 분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냉동실을 오가며 성실하게 일하셨다. 그런데 급여일이 되고 입금된 금액이 다른 사람보다 적었다. 상황을 따져 물어야 하기에 내가 전화를 했다.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어렵게 전화를 걸어 들은 냉혹한 대답: “너네 엄마, 아빠가 여기 아니면 어디 가서 일이나 할 수 있는 줄 아니?”
나는 같은 반 아이가 생각 없이 던진 말에도 상처를 받곤 했다. “쟤네 엄마 아빠, 벙어리잖아.” 부당하게 무시당했다는 억울함과 분노 덕분에 내 마음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났다. 나는 말싸움 꾼이 되었다. 어른이든 아이든 부모님을 무시하는 사람과는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싸울 일이 있으면 온 힘을 다해 손톱을 내밀고 매섭게 쪼아버렸다. 더 이상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도록.
자랄 때는 공부도, 운동도 곧잘 했다. 상을 받으면 부모님은 그 어느 때보다 기뻐하셨다. 상장을 액자에 넣어 보란 듯 걸어 놓고 누구라도 집에 오면 자랑하셨다. 보는 사람마다 나를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공부도 운동도 내가 잘하기만 하면 아무도 우리 부모님을 무시할 수 없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잘하고 싶었고, 잘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나를 통해 부모님이 참 괜찮은 사람이라고 증명하고 싶었다.
이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선생님은 지지와 격려를 많이 해 주셨다. 다른 아이와 같은 점수를 받아도 더 많이 칭찬하고 응원해 주셨다. 문제집이나 교구가 생기면 따로 챙겨 주시는 선생님도 있었고, 외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애써 주시는 선생님도 있었다. 말하자면,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었기에 이런 호사도 누리는 셈이었다.
모순적이게도, 코다로서 살다 보니 억울하고 분할 때도 많았지만 내 능력을 키우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아 기쁠 때도 많았다.
세엣. 사회복지사, 송부연 이야기
시간이 지나, 나는 고3 수험생이 되었고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사회복지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 작은 마음으로 17년째 사회복지를 한다.
나는 자라면서 부모님을 살피는 시간이 많았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살피던 행동은 타인에게 시선과 신경을 두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사례관리 업무를 담당할 때,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매일 매일 찾아갔다. 찾아가 창문에 대고 외쳤다. “어르신, 저 오늘도 왔어요. 힘드시면 나오지 않으셔도 되요. 근데 저 여기 20분만 앉아 있다가 갈께요.” 며칠이 지났을까. 기대감보다 의무감이 더 커질 무렵, 창문 사이로 어르신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자꾸 와요, 귀찮게. 앞으로 오지 마세요.”
그런데 왜 나에겐 오지 말라는 그 말이 와줘서 고맙다는 말로 들렸을까. 그 이후로도 어르신을 계속 찾아갔다. 며칠 동안은 창문 너머로 대화가 이어졌다. 어쩌다 못 가는 날이 있었다. 다음 날 가서 대화를 해 보면 기다리셨던 티가 났다. 입 밖으로 소리내 말씀하진 않으셨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코다로 살아온 시간은 괜찮은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자연스럽게 훈련을 받았다. 가끔은 억울하고 분개하던 나, 모든 일을 잘하고 싶어 몸부림치던 나, 그 모든 ‘나’가 모여 지금 내 모습이 되었다.
네엣. 졸업 작품을 정리하는 한 마디
30년 묵은 생각 창고에서 꺼내 쓴 내 이야기 삼부작, 결론을 쓴다.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잘 살아서 부모님을 증명하고 싶었던 내 마음, 무척 어리석었다. 두 분께서 주신 내 삶이 나를 증명해 주었다.
<이재원 선생 최초 피드백>
압도적으로 잘 쓰셨습니다. 과연 ‘송부연 졸업작품’답습니다. 읽으면서 뭔가 울컥, 하면서도 해방감이 느껴졌습니다. 숨겨진 목소리. 송부연 선생님 부모님께서 참고 사셨던 그 오랜 세월, 숨겨져 있던 목소리가 송부연 선생님 글을 타고 복원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쓰기란 숨겨진 목소리를 제자리로 돌려 놓는 작업, 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처럼 이 생각이 뚜렷하게 느껴진 적은 없습니다.
송부연 선생님께서는 어떤 면에서는 저보다도 글을 잘 쓰십니다. 그래서 글에 손을 대면서 계속 뜨끔했고,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발전하셔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고, 따라서 지금도 잘 쓰시지만 앞으로 훨씬 더 발전하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염치 불구하고 손을 대곤 했습니다. 제가 조언 드린 부분을 스스로 알아서 소화해서 가져가시는 모습을 보곤, 안심했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송부연 선생님께서는 글을 더 쓰셔야 합니다. 더 많이 쓰셔서 동료들에게 보여 주셔야 합니다. 본인 안에 숨겨진 목소리를 더 많이 증언하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나아가서, 더 많은 사람이 숨겨 놓은 목소리를 발굴해서 ‘폭로’하시면 좋겠어요. 오해 마시라. 이 폭로는 좋은 폭로입니다. 약자가 움츠려들어서 내지 못한 목소리는 세상에 어둠을 가져오지 않고 그 자체로 빛이 되니까요.
<송부연 최초 피드백>
이재원 선생님은 야채가게를 하시면 좋겠습니다. 유독 당근(칭찬)을 잘 파실 것 같습니다.
<송부연 최종 피드백>
1월 26일 대화
나: “선생님, 안녕하세요, 글쓰기 화요일반 송부연 복지사입니다. 글에 사진을 넣으라고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재원 선생님: “제가 그렇게 하라고 말씀 드렸나요? 그렇게 말씀 드리지 않았는데요.”
나: “아, 저는 과제에 사진을 넣으라고 한 줄 알았어요.”
1월 29일 대화 (첫 과제 제출 후)
나: “선생님, 조심스레 살짝 드려봅니다.”
이재원 선생님: “혹시 글 주제가 ‘나와 글쓰기’라는 사실을 잊으셨나요? 엉뚱한 소재로 글을 쓰셨어요. (그런데 무척 잘 쓰셨고, 재미있네요.)”
나: “죄송해요. 수업시간에 집중을 안 했네요.”
우당탕당 개구쟁이처럼 글쓰기를 시작했다. ‘사회복지사나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서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싶다’는 동기는 어디로 갔는지, 선생님께서 내 주시지도 않은 과제를 왜 시켰냐고 묻고, 쓰라는 주제 대신 엉뚱한 주제로 글을 냈다. “나 왜 이러지?” 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한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하지만 내내 재미있었다. 이재원 선생님께서는 폭풍 칭찬(당근)해 주셨고,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매주 내주시는 과제(채찍) 덕분에, 내 주위에 글쓰기 소재가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의미를 부여했다. 말과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글로 옮겼다. 그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 이재원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 드리기도 했다.
“요즘은 글쓰기를 안 했으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싶습니다. 연애 초기에 이성 친구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찬 사람처럼 내내 글쓰기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재미있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글쓰기가 조금씩 어려워졌다. 시간이 갈수록,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락 구조를 구상하느라 생각이 깊어져 과제 제출하는 시간이 점점 느려졌다. 어떤 날은 마지막 한 줄을 쓰는데 2~3일을 고민하기도 했다. 산고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느낌으로 졸업 작품도 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글을 쓸지 잘 모르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나는 지금 매우 설렌다.
<이재원 선생 최종 피드백>
송부연 선생님께서는, 재능으로 치자면, 제가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만난 학생 중에서 두 사람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나십니다. 만약 본인께서 이 사실을 모르고 사셨다면, 세상이 너무나도 아쉬워 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동안 쓰셨을 지도 모르는 그 수많은 명문을 아직 읽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사실입니다.
따라서, 송부연 선생님께서 글쓰기를 생각하시면서 설렌다고 말씀하시니, 선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왜냐하면 독자로서 선생님께서 쓰실 글을 더 많이 읽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더 많이 읽고 싶습니다. 본인 삶에 대해서 쓰시는 글 뿐만 아니라, 돕고 계신 클라이언트께서 숨기고 계신 목소리를 세심하게 복원하시는 글을요.
코다로서 살아오시면서 겪으셨을 수많은 경험을 생각한다면, 이는 명백한 복입니다. 그만큼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 보따리는 어쩌면 1인분이 아니라, 3인분이겠지요? 좋은 글을 읽고 싶은 독자로서, 앞으로 선생님께서 마음 속 3인분 보따리를 쭉 풀어 내시길 강력하게 희망합니다. 멀리서 함께 박수치며 응원하겠습니다.
<송부연 센터장님 작품 목록>
1. 성가정
2. 봄, 여름 그 사이
3. 글이 위로가 될까요?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지식 공유하기(기타) > 글쓰기 공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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