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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생님, 정말 내 생각 알아요?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7. 26. 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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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정말 내 생각 알아요?

     

    글쓴이: 권송미(사랑누리장애인단기보호센터 원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사랑누리에서는 매월 이용자 회의를 연다. 회의를 통해 먹고 싶은 식사 메뉴와 참여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누구와 함께 개별 지원 활동을 할지 방을 누구와 함께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기타 어려운 점이나 건의 사항을 이야기한다. 처음 회의를 열었을 때는 다들 머뭇거리며 의견을 꺼냈다. 그런데 본인이 꺼낸 이야기가 현실이 되면 다음번 회의 시간에는 좀 더 자신감 있게 목소리를 낸다. 우리는 언어로 하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랑누리 식구를 위해 다양한 그림 도구를 만들고, 영상 장비와 과거 사진도 활용한다. 이용자 회의 장소도 다양하다. 인근 약수터 정자에서 자연을 느끼며 이야기하고, 때로는 유성온천 족욕장에서 온천물에 발 담그고 이야기한다. 선생님이 노력하고 사랑누리 식구가 참여해서 매달 풍성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날도 김OO 선생님이 재미나게 회의를 진행해 주셔서 여러 식구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았다. 그런데 문득 창가 끝자리에 앉은 미진(가명) 씨가 손을 들었다. 평소 미진씨는 회의 때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데, 손을 번쩍 드니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김OO 선생님: 미진 씨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요?

    미진 씨: 저, 김OO 선생님…. 저 결혼하고 싶어요.

     

    찬물을 뒤집어 쓴 듯, 모두 조용히 미진씨를 바라 보았다.

     

    김 선생님: (웃으면서) 미진 씨도 결혼할 수 있죠. 저랑 하고 싶은 건 아니죠?

     

    김OO 선생님은 식은땀을 흘리며 난처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김OO 선생님: 미진 씨도 남자친구를 사귀고 결혼할 수 있어요. 그런데 결혼은 혼자 하지 못하고, 돈과 직장이 있어야 하고, 사귈 때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해요.

    미진 씨: 선생님, 선생님은 여자친구 사귈 때 부모님 허락받았어요?

     

    당황한 선생님이 미처 대답하지 못하자 미진 씨가 말했다.

     

    미진 씨: 나는 왜 허락받아야 해요? 그리고 나는 나중에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왜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김OO 선생님: ….

    미진 씨: 나는 결혼 할 수 없나요? 왜 사귀는 일도 허락받아야 하죠? 선생님은 나를 이해해요? 정말 내 생각 알아요?

     

    나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사랑누리 식구들도 연애하고 결혼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을 어린아이 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인 존재로 생각했다. 나는 그날부터 발달장애인도 연애할 수 있고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꿨다. 그리고 미진 씨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몰래 만나지 말고 선생님과 함께 만나자고 했다.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 계획을 세울 때 함께 돕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돕고 싶은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미진 씨가 밝게 웃었다.

     

    3년 후. 미진 씨가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으니 아기가 방긋방긋 웃는다.

     

    나: 미진 씨 잘 지냈어요? 요즘은 어때요? 수유하느라 힘들죠?

    미진 씨: 아기가 뒤집어서 더 바빠졌어요. 어제도 새벽에 아기가 울어서 서로 아기한테 가보라고 하다가 남편하고 싸웠어요.

    나: 어이구. 새벽에 아기 보느라 힘들었겠네. 그래도 남편 너무 미워하지 말고. 일하고 와서 피곤해서 그럴 테니 예쁘게 보고 용서해 줘요. 우리 아기 아빠잖아요.

    미진 씨: 네. 알겠어요. 권송미 선생님, 있잖아요. 김OO 선생님 결혼식이 8월이지요? 그때는 아기랑 같이 갈게요. 결혼식장 가실 때 나랑 같이 가 주세요.

    나: 그럼요 귀한 왕자님과 우리 미진 씨 모시러 갈게요. 그때 함께 가서 축하해요. 우리 미진 씨가 결혼 먼저 해본 선배니깐 결혼해서 잘 살라고 응원도 하고 아내에게 사랑받는 법도 잘 가르쳐도 주세요.

    미진 씨: 네. 선생님.

     

    “나는 결혼 할 수 없나요? 왜 사귀는 일도 허락받아야 하죠?”

    “선생님은 나를 이해해요? 정말 내 생각 알아요?”

     

    오늘 내 삶을 반성할 때마다 미진 씨 말을 곱씹으며 생각한다. ‘나는 사랑누리 식구를 사람으로 제대로 대접하고 이해하는가. 그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가?’ 나는 그날 그 질문을 잊지 못한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권송미 원장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권송미 원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심화반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설명 단락을 쉽게 쓰기 위한 만능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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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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