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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강진구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3. 12. 14. 07:18728x90반응형
즐거운 강진구
글쓴이: 강진구 (인천종합사회복지관 사례관리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언제까지 마무리할래요?"
"사회복지사가 그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해요?"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고 하고, 그건 그렇게 해 주세요."
"내가 언제 선생님한테 그렇게 하라고 말했나요?"
"이번 사안은 그냥 내 생각대로 해 주세요."
이상은 모두 내가 첫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뱉은 말이다. 그때는 내 말이 모두 맞는 줄로만 알았다.
2004년 11월 1일. 나는 국내에 처음 생긴 복지기관에서 사회복지를 시작했다. 나는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것이 오로지 끈기밖에 없어서, '힘들더라도 무조건 최소한 3년은 버티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굉장히 빨리 승진했다. 신생 기관이라서 아직 조직이 안정되지 않았고, 업무가 너무 많아서 버티지 못해 중도에 퇴사하는 직원이 많았고, 관장과 마찰이 있어 퇴사하는 팀장도 생겼다. 그렇게 하나 둘씩 동료들이 사라지면서 나에게 승진 기회가 자주 돌아왔고, 일한 지 8년이 지나자 어느덧 기관에서 두번째 자리까지 도달했다.
당시에는 그냥 내가 능력이 뛰어나서 빨리 승진했다고 확신했다. 버티다 보니 어떻게 내 차례가 돌아왔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른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르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 열심히 일해서 빨리 성과를 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이때부터 내 리더십은 비뚫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채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열심히 했다. 연장 근로가 인정 안 돼도 주말에 출근하고, 평일에도 밥 먹듯이 야근했으며, 심지어는 집에까지 일거리를 가져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일하는 방향과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직원이 눈엣가시처럼 보였다.
'쟤 도대체 왜 저러지?'
'직장에 일하러 오는 거야? 아니면, 잡담하러 오는 거야?'
'아직 이 정도 일도 끝내지 못하고, 뭐 하는 거야?'
나는 직원들 마음은 살피지 못하고, 오로지 내 마음만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앞만 보고 무조건 달리다 보니, 앞서 무수히 퇴사했던 동료들처럼 나도 소진되었다. 매년 반복되는 온갖 짜증나는 상황(실적/성과 압박, 신규 사업, 외부 사업, 감사, 지도 점검, 평가, 재위탁) 때문에 너무 힘들었는데, 직원들 사이에 떠도는 나에 관한 악성 소문까지 귀에 들어오니, 그냥 모든 것이 허망했고 허탈하게만 느껴졌다.
'난 이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결과가 겨우 이거야?'
심리적으로 완전히 쓰러져서 허우적대고 있을 무렵, 내가 일하는 지역 지자체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사회복지사 임금을 2년 동안 동결했다. 이때 나는 넉다운되었다. 그리고 사회복지 일을 때려 치우기로 결심했다. '됐어, 어차피 이 바닥 글렀어. 돈이나 벌어야지!'
나는 사회복지계를 떠나서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가치와 의미를 추구한 사회복지와 달리, 일하는 목적이 돈이다 보니 차라리 홀가분했다.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서 누구와 마음 시끄럽게 얽히지 않아도 되고,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어서 신나게 일했다. 한동안은.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헛헛한 말 한마디가 마음 속에 무시로 떠올랐다.
'아... 돈 많이 번다고, 일이 재미있지는 않구나...'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면 내가 그에게 못 해줬던 일만 생각나듯이, 10년 넘게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한 직장에서 퇴사하고 혼자가 되어 보니, 평소에 내가 잘 챙겨주지 못한 직원들 얼굴이 생각났다. 그리고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라는 알량한 생각으로 내가 그들에게 퍼부은 모진 말이 비수처럼 되돌아왔다.
'뭘 그리 대단한 일을 한다고 심각하게 일했을까?'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관장님한테 왜 그렇게 심하게 말했을까?'
(그때는 되게 멋있게 행동했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우쭐댔다.)
완곡하게, 여유 있게, 부드럽게, 재치있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데... 오로지 성과에만 매몰되어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직원들만 나무랐던 행동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아... 다시 돌아가면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래! 만약에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로 즐겁게 일할 거야. 아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해 줄 거야!'
마음 속에 어느 정도 결심이 선 후에, 아내와 이렇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 "당신도 이제 안정된 직장에 들어갔으니, 나 이제 사회복지로 돌아갈까?“
아내: "그래, 다시 사회복지 해, 자기는 사회복지가 더 어울리는 사람이야. 가족을 위해 7년 동안 ‘하기 싫은 일’ 하느라 고생했어, 고마워.“
나: "그래, 우리 이제 하고 싶은 일 하며 행복하게 살자."
우여곡절 끝에 나는 마침내 사회복지계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와 보니 여러 모로 환경이 달라졌지만, 아직 변하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특히, 젊은 사회복지사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와! 이렇게 열심히 일한다고?'
그런데 열심히 일하는 몇몇 직원 표정이 무거워 보였다. 내가 사회복지를 그만 두기 전에 짓던 허망한 표정과 비슷해 보여서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저들을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래! 이렇게 하자. 매일 복지관 모든 직원에게 최소한 한 번씩은 말을 걸어야지.'
그런데 막상 동료들에게 말을 걸려고 보니, ‘그럴 듯한 이야깃거리’가 중요했다. 무턱대고 가서 말부터 걸 수는 없었다. 괜히 집적댄다고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을 걸 수 있는 상황을 잘 살펴보고,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슥~ 하고 들어갔다.
"선생님, 목금 월차인데... 이 업무가 오늘은 마무리 되어야 해요. 오늘은 함께 관/부장님과 가타부타 결론을 내 볼까요?"
"제가 우연히 대화를 들었는데 직원들끼리 평일에 어디 놀러가나 봐요? 그날 복지관에 사람이 많이 없을 수 있으니 미리 휴가원 결재를 받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자, 올해는 ’징구 어워즈‘가 개최됩니다. 3등은 직원 헹가래 3회, 2등은 부장님 업무 지시사항 거부권 1회, 1등은 징구 어부바 시승권 3장을 받겠습니다."
이렇게 시덥지 않은 농담도 흘리고, 소소하게 챙겨주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열심히 동료들에게 말을 걸고 함께 즐겁게 일하려고 노력했더니, 어느 날 직원이 말한다.
"과장님 오시고 나서,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래, 이 한 마디면 내가 일하는 이유로 충분하다' 라고 생각했다. 사회복지를 떠나서 나 자신을 성찰하는 동안, 나로 인해 동료들이 즐거워하면 좋겠다고 소원했는데, 내 간절한 바람이 현실로 나타나니, 많이 즐겁고 행복했다.
'그래, 즐겁게 일해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성과를 낼 수 있어!’
사회복지사는 바쁘다. 지역주민부터 후원자, 자원봉사자까지, 무수히 많은 사람을 두루두루 살피며 챙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런데 날마다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면서, 우리는 동료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종종 상처를 주는 언행을 저지른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내가 바로 동료 상처주기 종목 대표 선수였다. 열심히 일한다는 생각을 핑계삼아 동료들에게 너무 자주 상처를 입혔다. (오늘, 이날까지도 너무 후회된다.)
나를 돌보고 살피는 시간 만큼 다른 사회복지사도 살펴야 한다. 동료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떻게 일 하는지, 요즘 무슨 어려움을 겪는지, 내가 오해하지는 않는지 살피고, 내가 챙겨 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편하게 묻고 바라보고 이야기 나눠야 한다. 그래서 내가 살피고 챙겨준 그 사회복지사가 조금이라도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면? 그가 만나서 돕는 지역 주민도 자연스럽게 즐겁고 행복해지리라.
‘살펴보는 리더십,’ 내가 사랑하는 사회복지 동지들을 떠나서 성찰하는 시간 동안, 느끼고 깨달은 소박한 진리다.
<안내>
_ 본 글은 직접 글을 쓰신 강진구 선생님께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강진구 선생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심화반, '글로위로'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드디어! 강진구 팀장님 외도(?) 스토리를 듣게 되었네요. 그리고 어째서 강진구 팀장님께서 이수근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시는지도 알게 되었고요. 이수근... 그래요, 함께 공부하면서 시종일관 생각했는데, 강진구 팀장님은 딱 이수근 같으세요. 늘 밝고 장난기가 많은데, 타인을 지나치게 놀리거나 모욕하지 않는 유머. 함께 따라서 웃다 보면 문득 느껴지는 깊고 따뜻한 마음.
자고로, 개그는 철저하게 의도적이고 이성적인 작업입니다. 지금 여기 분위기가 어떤지 파악하고,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세심하게 관찰한 후에, 톤을 맞춰서 적절하게 녹아들어야만 사람을 웃길 수가 있으니까요. 이 귀한 글을 읽어 보니, 강진구 팀장님께서도 평소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철저하게 준비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웃기실 수 있었네요.
제가 빨간색으로 표시한 문장이 특히 마음에 들어옵니다.
"과장님 오시고 나서, 사무실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이 문장은 강진구 팀장님께서 성공하셨다는 '강력한 증거'겠지요?
언젠가, 제가 번역한 '자기-돌봄' 해외 문헌에서, 어떤 사회복지사가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동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방법을 실천한 사례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글을 읽고 보니, 강진구 팀장님께서 유머로써 동료들과 함께 자기-돌봄 활동을 실천하시는 한국적인 사례를 제시해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원래도 자랑스러웠는데) 오늘 훨씬 더 자랑스럽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쭈욱, 후배들에게 조금은 실없고 우스은 선배로 남아 주세요.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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