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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출산기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3. 5. 07:06728x90반응형
15분 출산기
글쓴이: 이선영(한울지역정신건강센터 팀장, 2023)
첨삭 지도: 이재원(강점관점실천연구소, 2023)
나는 고위험 산모여서 40주까지 임신 상태로 지내면 위험했기 때문에 37주 0일에 제왕절개로 출산해야 했다. 출산가방을 꾸리고 병원근처 커피숍에 앉아 봄 햇살을 느끼며 마지막(?) 자유를 만끽했다.
그날 밤, 남편은 피곤했는지 일찍 잠이 들었지만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되나?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날까? 어떤 얼굴일까? 48시간을 아프고도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기쁘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들일 수도 있나? 현관문은 잠그고 왔나?’ 오만가지 상상을 하다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다.
나는 첫 번째로 수술받기로 되어 있어서 새벽 6시부터 간호사가 병실로 들이닥쳐 각종 검사를 실시했다. 7시 반 친정 엄마와 남편 배웅을 받으며 수술실로 향했다. 성실한 신앙인이 결코 아닌 내가 줄줄 기도를 암송했다. 그래도 불안해서 수술실 왼쪽 벽시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째각, 째각... 입술이 말랐다.
8시 정각, 의사가 마취를 했고 8시 5분 주치의가 들어왔다. “어때요? 아픈가요?” 의사는 내 다리를 뭔가로 탁탁 두드리며 점검했다. 8시 10분 쓰윽(?) 하고 배를 가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더니 몸이 왼쪽 오른쪽으로 조금씩 흔들렸고 잠시 후 아기가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15분이 걸렸네.” 나도 모르게 시간을 계산했다. 간호사가 막 태어난 아기 얼굴을 보여줬다. ‘우와, 우와, 우와’ 심장이 찌릿찌릿했다. 초음파로 보던 흑백 아기 얼굴이 컬러로 보였던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48시간 동안 죽을 고통을 겪으며 나를 낳았지만 기쁨이 더 컸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어떻게 인간이 48시간 고통을 겪고 기쁠 수가 있냐고 장난처럼 말했다. 나는 엄마와 비교하면 무척 짧은 시간(15분) 만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 보니 딸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찬란하고 기쁜 시간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 간다.
<안내>
_ 본 글을 쓰신 이선영 팀장님에게 공식적으로 사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교육 및 출판 목적)
_ 이선영 팀장님께서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글쓰기 클래스 '글로위로' 심화반에 참여하셨습니다.
<이재원 선생 피드백>
"너는 봄이만 생각하잖아."
딸 아이가 두 돌을 넘길 때까지, 아내에게 이 말을 참 많이 던졌습니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불꽃이 튀어서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난임 클리닉에 다니며 조금 고생했지만 곧바로 딸을 얻었습니다. (억세게 운이 좋았습니다.) 얼떨떨... 첫 느낌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건대, 두 돌 전까지도 계속 얼떨떨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분만실에서 아기가 먼저 나왔습니다. 간호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님, 이렇게 저렇게 안아 보세요." 아빠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안고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며 사진도 찍고 하나 봅니다. 마지 못해 정말 어색하게 사진 한 두 장을 찍었습니다. 노란 유분이 아직 뭍어 있는 아기 얼굴이며 몸을 들여다 봅니다. 별로 예뻐 보이지 않았고, '이 녀석이 사람 맞나?' 싶었습니다.
심지어, 나를 별로 닮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얼굴이 검은데 아기 얼굴은 백옥처럼 하얗습디다. (장모님, 감사합니다! 아기는 외할머니와 엄마 피부를 똑 닮았습니다.) 그래도 내 아이가 분명하다니, 그냥 내 아이인 줄 알았습니다. 따님을 집에 모셔와서 키우는 동안, 어린 것이 참 귀엽고 사랑스럽긴 했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니 질투했죠.
"너는 봄이만 생각하잖아."
오늘 새벽에, 예전에 읽은 이선영 팀장님 글을 다시 읽으니 딱 알겠습니다. 머리로는 이미 알았는데, 아기를 갖기 전에도 이미 알았는데, 실상은 까맣게 모르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는 엄마 배에서 나왔잖아요. 48시간을 아팠든, 15분만 아팠든, 엄마 생살을 찢고 나왔잖아요.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엄마 몸이었잖아요. 그러니까 녀석이 바로 엄마였잖아요.
저는 요즘, 잠자리에서 제 딸을 제 딸로 느낍니다. 잠을 청하기 전에 꼭 두 번, 물을 마시는 봄이. 엄마와 아빠 사이를 뒹굴뒹굴 굴러 다니는 봄이. 굳이 내 몸을 타고 넘어서 벽 쪽으로 붙는 봄이. 그러다가 벽에 머리를 살짝 부딪히는 봄이. 갑자기 머리를 내 머리 쪽으로 들이밀고 웅얼거리는 봄이. 발을 제 배 위에 올려 두고 음냐 음냐 자는 봄이. 저와 살이 닿는 봄이.
갑자기, 울 사모님께 사과해야겠습니다. 아니, 아내 뿐만 아니라 이 땅 모든 엄마에게 사과해야겠습니다. 저로선 골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환희를 몸으로 직접 겪어내신 엄마에게 사과해야겠습니다. 생살을 찢는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셨던 엄마에게 사과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언젠가, 엄마가 될 수도 있을 봄이에게도 사과해야겠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기-돌봄 글쓰기 모임 - 글로위로, 2023년 작품집>
<평범한 사회복지사들이 글로써 소박하게 자기 삶을 정리한 이야기>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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