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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를 잘 깎고 살을 잘 빼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지식 공유하기(기타)/글쓰기 공부방 2024. 4. 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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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두절미, 먼저 사례글부터 읽고 설명하겠다. 


    <사례 1> 

     

    찰칵찰칵 소리가 난다. 건너편 앞자리에 핑크 모자 아가씨가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다. 왜 저러나 싶어서 살펴 보니 셀카를 찍는 중이다. 곱게 단장하고 나온 자기 모습을 남겨 놓고 싶나. 손에 쥔 휴대폰을 향해 여러 번 빵긋 웃고 적당한 자연광을 찾느라 이리저리 몸을 튼다. 바로 뒷자리에 앉은 여자도 여행가방 하나를 발치에 놓고, 휴대폰을 향해 턱을 당기고 눈을 살짝 치켜뜬다. 연이어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다. “미인이시네요~” 누가 말을 건네면 “아유 아니예요” 이렇게 손사래칠 수도 있겠지만, 혼자 즐기는 지금 이 시간만큼은 자기 모습에 만족하겠지. 잠시 후 앞자리 아가씨는 셀카 놀이를 끝내고, 동행과 함께 볼에 바람을 넣고 찰칵! 두 얼굴을 붙였다 뗐다 각자 휴대폰으로 번갈아 가며 담느라 몹시 바쁘다. 키득키득 웃으며 찍은 사진을 서로 보여주고 잘 나왔다는 둥 지우라는 둥 실랑이를 벌인다. 뒷자리 여자는 찍은 사진을 앞뒤로 넘기며 살펴보더니, 엄지 손가락을 분주히 놀려 자판을 두드린다.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보내거나 소셜 미디어에 올리나 보다. 뭐라고 썼을까? ‘구미가는 날~ 너무 일찍 일어나 화장이 잘 안 먹었다. 그래도 오늘 하루 즐겁게♡♡♡’ 이런 말이겠지?

     

    김정현 사회복지사(안동성좌원 요양복지과 팀장, 2024)


     

    위 글 제목은 '셀카 찍기 좋은 날'이다. 글쓴이는 버스 안에서 신나게(!) 셀카 사진을 찍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진짜 자기 모습보다 어떻게든 겉으로 꾸민 모습에 신경쓰는 문화를 직시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주름이 지고 있는 본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이 글을 사람 행위에 비유한다면? '사과를 천천히, 섬세하게 깎는 행위'에 비유할 수 있겠다. 다른 말로 바꿔서 표현하자면, 글쓴이는 이 장면을 '의도적으로 길고 자세하게' 썼다. 왜? 필자는 '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자'는 글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사례 2> 

     

    아들이 2학년이 되었을 때, 태권도 관장이 바뀌고 복지관 방과후교실까지 태워줄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 고민스러웠지만 2학년 때까지는 복지관에 다녀보기로 했다. 복지관 셔틀버스 타는 곳을 알아보았다. 학교에서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아이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렸다. 이틀 동안 아이와 같이 길을 걷고 셔틀버스를 태워 보냈다. 그렇게 생활이 이어졌다. 어느날 복지관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성호(가명)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안 와요.” 어디로 간 걸까, 셔틀을 놓쳤을까, 괜찮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스칠 때 수화기 넘어 선생님 목소리가 울린다. “성호야! 어머니, 성호 왔어요! 셔틀버스 기사님이 성호를 못 보고 지나쳤나 봐요, 여기까지 걸어왔데요!” 나도, 선생님도 그날 펑펑 울었다. 셔틀 타는 곳에서 복지관까지 가기 위해서는 6차선 도로 길을 걷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하고 여러 아파트 단지를 지나며 걷고 또 걸어야 한다. 어린 아들이 혼자 걸었을 그 길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민경재(안산시초지종합사회복지관 분관 둔배미복지센터 센터장, 2024)


    위 글 제목은 '엄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이다. 글쓴이는 워킹맘으로서 바쁘게 일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그래서 크고 작은 위기를 수없이 넘겨야 했다. 특히, 아들이 셔틀버스를 타지 못해서 잠시(?) 사라졌다가 나타났 때, 순간적으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엄마로서 매일 미안했지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즐거웠던 만큼 어렵게 키운 아들이 마침내 초등학교를 졸업한 날, 글쓴이는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 등이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 

     

    이 글쓴이도 '사과를 천천히, 섬세하게 깎듯이' 이 대목을 썼다. 마치 시간을 잠시 멈춘 듯, 아들을 잠시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급박한 상황을 매우 자세하게 표현한다. 글쓴이가 표현하고 싶은 주제는 '(엄마로서 충분히 돌봐주지 못했다고 느끼는) 미안한 마음과 (하지만 아들이 씩씩하고 든든하게 커 줘서) 고마운 마음'이다. 이 주제를 독자에게 잘 전달하려고, 글쓴이는 아들에게 미안했던 에피소드를 최대한 자세하게 풀어서 기록했다.

     

    이제 반대 사례도 읽어 보자.


    <사례 3>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연히 영화잡지를 보았다. 지금은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즐겁게 읽었다. 그후 매월 나오는 영화잡지를 보면서, 영화감독을 꿈꿨다. 당시엔 꽤 진지하게 생각했는데, 결국 수능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했다. 첫 직장도 여기저기 면접을 보다가 덜컥 합격해버린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다가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고향에 내려왔다. 지금은 사회복지사가 되어 노인복지관에서 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흘러가는 대로 살았고, 상황에 맞춰서 미래를 결정했다.

     

    이기국( 서경노인복지관 관장, 2024)


    위 글 제목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도와주고 행복해하는 게 꿈이야?'이다. 글쓴이는 어느날 딸에게 '어릴 때 꿈이 뭐였냐?'는 질문을 받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얼마나 건강하게 살고 있는지 재확인한다. 사회복지사 정체성을 수용한다. 

     

    글 주제를 생각할 때, 위 대목은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니다. 그리고 위 대목이 포괄하는 시간도 대략 20년이 넘는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군더더기를 빼고 핵심만 남겨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살을 빼야 한다. 그래서 생각을 떠올리고 정리한 후, 중요한 이야기만 남겨서 썼다.


    <사례 4> 

     

    나는 서른 넷에 결혼해서 서른 여섯에 첫 아이를 낳았다. 나이만 들었지, 실수투성이 초보 엄마여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기도 전에 복직해서 출근해야 했다. 아침마다 전쟁이 벌어졌다. 나는 육 개월 된 아들을 포대기에 둘러 업고 8시까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서 죽어라 뛰었다. 그리고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해 또 죽어라 뛰었다. 직장에 출근해서도 하루종일 뛰듯이 정신없이 지내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있어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었다. 

     

    민경재(안산시초지종합사회복지관 분관 둔배미복지센터 센터장, 2024)


    위 글은 사례 2에 제시한 글에서 발췌한 다른 대목이다. 글쓴이는 이 대목에서 워킹맘으로 살아온 기본 환경을 간략하게 제시한다. 글쓴이는 워킹 맘 생활을 한 마디로 '전쟁'에 비유했다. 그만큼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글에서 다룬 주요 소재는 아들 졸업식이라서, 위 대목은 간략하게 정리했다. 

     

    역시 이 대목도, 전체 글 주제를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니다. 글쓴이가 처한 상황을 독자가 쉽게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아래에 깔아줘야 하는 대목이지만 길고 자세하게 소개할 만큼 결정적으로 중요하진 않다. 그래서 중요한 사항만 뽑아내서 간단하게 요약했다. 비유컨대, 군살을 빼고 가볍게 전달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때로는 ' 사과를 천천히, 섬세하게 깎듯이' 내용을 풀어서 쓰고, 때로는 '다이어트해서 군살을 빼듯이' 내용을 요약한다. 그렇다면 언제 풀어서 쓰고, 언제 요약해야 할까? 소재나 주제와 직결되어서 중요한 대목은 자세하게 풀어서 쓴다. 반면에, 소재와 주제와 직결되지 않고 배경이나 맥락을 정리하는 대목은 가볍에 정리해서 요약한다. 

     

    그렇다. 글을 쓰기 전에 생각/감정부터 충분히 돌아보고 정리해야 한다.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해서, 계속 생각나는 대로 쓴다면, 길고 자세하게 풀어서 써야 할 부분은 짧게 쓰고, 반대로 간략하게 요약해야 할 부분은 한없이 길게 쓰게 된다. 생각나는 대로 쓰면 생각 없이 쓰게 된다. 글쓰기 기술이 조금 부족해도 충분히 생각하고 쓰면 꽤 잘 쓸 수 있다.


    <예시글 링크> 

     

    (예시 1) 셀카 찍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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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시 2, 4) 엄마, 저 혼자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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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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