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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웬일이냐? 엉?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 6. 20.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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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 6화 중에서>

     

    김준완(흉부외과 교수): 정진오 환아, ASD 크로저 시작하겠습니다. 집도의 도재학, 퍼스트 김준완입니다. 시작하시죠, 도재학 선생님. 

    도재학(흉부외과 전공의): 네. (휘유~) 

    김준완: 그쪽을 째면 안되지. 정확하게 안 열면 다른 데 다쳐. 

    도재학: 넵. 

    김준완: 엔도카디움까지 정확하게 다 떠야지. 눈에 보이는 겉에만 꿰매면 나중에 거기서 피 난다. 

    도재학: 네, 알겠습니다. 

    김준완: 거긴 너무 깊게 뜨지 말고. 네 눈을 속이지 마. 정확하게 눈으로 보고 떠. 

    도재학: 네. 

    김준완: 도재학 선생님, ICU 호출이 와서 마무리까진 못할 것 같은데, 가도 될까요? 

    도재학: (농담으로) 어, 들어가 고생했어. 

    김준완: (농담을 받아주며) 네, 감사합니다. 

    도재학: 교수님! (인사)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더 잘 하겠습니다. 

    김준완: 그래, 다음엔 더 잘 해라. (나가다 말고) 야, 근데, 너 오늘 생각보단 잘 했어. 웬일이냐? 엉? 

    도재학: (기뻐하며) 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최고의 스승-제자 케미를 보여준 흉부외과 김준완 교수와 치프 레지던트 도재학 선생. 대입 4수에 사시공부만 6년을 하고 나서 어렵게 의학의 길로 들어선 도재학 선생은, 최악의(?) 선생을 만났다: 대단히 까칠하고 싸가지 없(어보이)는 김준완 교수. 김준완 교수는 도재학을 "쥐 잡듯" 잡는다: 예컨대, 날밤을 세워서 논문 작업을 하다가 수술에 들어온 도재학이 피곤해서 서서 졸자 소리를 빽(!) 지른다. 

     

    기본적으로, 김준완 교수가 까칠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의사라는 직업은 생명을 다루는 일인데, 김준완은 특히 심장과 폐를 다루는 흉부외과 교수이니까. 즉, 흉부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 장기를 다루는 과이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실수도 허용될 수 없고, 그러므로 까칠할 수밖에 없다: 잠시라도 정신줄을 놓치는 날에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김준완은 밑도 끝도 없이, 시종일관 까칠한 사이코가 아니다. 흉부외과 교수 아니랄까봐 까칠해 보이는 외모 밑에 뜨겁고 맹렬하게 뛰는 빠알간(!) 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최선을 다해서 치료했던 아이가 사망했을 때 장례식장에 찾아가 그 아이의 부모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리거나, 심장수술을 받느라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환자의 딸 결혼식장에 슬며시 얼굴을 비춘다(심쿵 포인트!). 

     

    오늘은 도재학 선생이 ASD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날. 김준완은 수술방을 나가면서 한 마디를 날린다: 

     

    "야, 근데, 너 오늘 생각보단 잘 했어." (진짜 칭찬)

    "웬일이냐, 엉?" (츤데레 특유의 친근감 표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전통적인 도제식 방식이 좋은가? 현대적인 구성주의적 교육  방식이 최고일까? 근대 이후 대표적인 교육 방식이었던 주입식 암기 교육은 어떠한가? 

     

    언젠가, 미국의 저명한 교육학자인 파커 J. 팔머가 쓴 책을 읽었다. 한참을 재미있게 읽다가 어떤 대목에서 크게 놀랐다: (이제는) 우리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주입식 교육 방식을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주입식 암기 교육을 옹호하다니... 취지는 이랬다: "학생은 너무나도 다양하다. 어떤 방법이 좋다 한들, 그 방법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다. 그 학생의 특성에 잘 맞는 방법이 옳은 방법이지 무조건 옳은 교육 방법은 없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는 전근대적 주입식 암기 교육도, 학생이 원한다면 결코 나쁜 교육 방법이 아니다." 

     

    학생별로 좋은 교육 방법이 다를 수 있듯이, 어떤 학생의 발전 과정에 따라서도 좋은 교육이 다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학생의 질문을 들어보면 그의 학습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질문이 자유롭게 나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일단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답하느냐가 중요해진다. 

     

    나는, 학생과 질의 응답을 나눌 때 수준이 높은 질문을 마음에 품고 선생에게 용감하게 던지는 학생은, 학생이 아니라 일종의 동료처럼 크게 존중하면서 그가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이든지, 지식의 수준이 높아지면 명쾌한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선생이 무엇인가? 특정한 분야에 정답을 가진 자가 아니라, 그냥 먼저 배운 사람에 가깝다. 먼저 배운 사람일 뿐이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너무 좋은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미안하지만 이 질문은 명쾌하게 답하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질문의 수준이 높아요. 학생이 아무 것도 모를 때에는 규범적으로, 이것은 이렇고 그것은 그렇고 저것은 저렇다, 고 쉽게 답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학생이 던진 질문은 (의도했든 안했든) 수준이 높기 때문에 제가 내려다 보면서 답할 수 없어요. 쉽게 말해서, 정답이 없어요."

     

    "야, 근데, 너 오늘 생각보단 잘 했어. 웬일이냐? 엉?" 

     

    나는 김준완 교수가 수술실을 떠나면서 도재학에게 남긴 이 말이, 도재학이 이제 막 "동료 수준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그러므로 제자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존중의 언어로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르치고 키우는 학생이 크게 성장해서 진정한 동료로서 인정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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