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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거 대답하는데 한참 생각하면 어떡해?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7. 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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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중환자실(PICU)> 

     

    김준완: 바드(VAD; 심실 보조 장치)랑 에크모(ECMO; 체외막 산소화 장치)는 어떻게 다르지? 

    장홍도: 어... 

    김준완: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 꼭 대답해 줘. 

    장홍도: 네. 

     

    <소아중환자실(PICU) 복도> 

     

    장홍도: 교수님 안녕하세요? 장홍도 입니다. 

    김준완: 어, 그래... 

    장홍도: 교수님, 바드는... 

    김준완: 아는 것 같고. 그럼 소아 바드랑 성인 바드는 뭐가 다르지? ICU에서 본 바드랑 PICU에서 본 소아 바드는 뭐가 달라? 

    장홍도: (아무 말도 못한다.)

    김준완: 다음에 만나면, 대답해 주세요. 

     

    <소아중환자실(PICU)>

     

    장홍도: 안녕하세요? 교수님. 

    김준완: 어, 안녕?

    장홍도: 바드는 체외용과 체내용으로 나뉘는데, 소아의 경우 체경이 작아 체외형 바드만 이식 가능합니다. 

    김준완: 어. 

    장홍도: 체외 전환 장치와는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30분 이상 떨어지면 셧다운이 되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서 생활해야 합니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 체내 삽입이 가능해 퇴원 후 심장 이식을 기다리며 일상생활이 가능합니다. 

    김준완: 굿. 

    장홍도: 또 구동 방식이 다릅니다. 

    김준완: 그럼 심장 이식에서 공여자와 수여자를 매칭하는데 제일 기본적인 조건이 뭐니? 

    장홍도: (아무 말도 못한다.) 

    김준완: 이건 너무 기본인데? 

    장홍도: (머뭇거리며) 혈액, 형? 

    김준완: 그래, 혈액형. 혈액형이 일단 맞아야지. 그거 대답하는데 한참 생각하면 어떡해?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1, 2, 3화 중에서>


    (장)홍도는 윤복이와 쌍둥이다. 10년 전 뇌졸중으로 하늘나라로 떠나신 엄마 덕분에(?) 의대에 진학했다. 율제병원으로 와서 인턴 생활을 하던 중, 김준완 교수가 집도하는 흉부외과 수술에 참여했을 때 아기 심장을 만져보고는 감동 먹고 흉부외과에 지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후, 방학이 되었는데도 서브 인턴으로 자원해서 흉부 외과 쪽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소아중환자실에서 김준완 교수를 만난 홍도. 아마도 김준완 교수는 홍도가 기특한가보다. 공부하러 나왔으니 공부 '빡세게' 하라는 의미로 질문을 던진다: "바드와 에크모는 어떻게 다르지?" 갑자기 당황한 홍도는 답변을 하지 못하고, 김준완 교수는 '다음에 만나면 꼭 답해달라'는 말은 남긴 채, 돌아서서는 흐뭇해 하는 표정을 날리면서 복도 너머로 사라져간다.  

     

    열심히 공부하며 김준완 교수 만날 순간만 기다린 홍도. 외나무 다리(소아중환자실 복도)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홍도가 바드에 대해서 신나게 읊으려는 순간, 김준완 교수는 방향을 바꾼다. 홍도가 뻔히 아는 눈치이니, 그보다 더 고급진 지식을 물어본다: "그럼 소아 바드랑 성인 바드는 뭐가 다르지?", "ICU에서 본 바드랑 PICU에서 본 소아 바드는 뭐가 달라?" 역시 홍도는 답변하지 못한다. 

     

    절치부심(?) 더욱 열심히 공부하며 김준완 교수에게 복수하려던 홍도. 소아중환자실 복도 의자에 앉아서 바드에 대한 의학 지식을 달달달 외우고 있다. 소아중환자실 업무를 끝내고 이동하려는 김준완 교수에게 인사하며 불러 세운다. 인사를 가볍게 받아주고 지나가려던 김준완 교수는 공부한 내용을 증명하려고 귀엽게 도발(?)하는 홍도 앞에서, 허를 찌른다: 정말 기본에 해당하는 지식을 물어본다: 

     

    "심장 이식에서 공여자와 수여자를 매칭하는데 제일 기본적인 조건이 뭐니?"

     

    홍도는 답변을 못한다. 

     

    "이건 너무 기본인데?" 

     

    홍도가 머뭇거리면서 혈액형이라고 답변하자, 결정타를 날린다: 

     

    "그거 대답하는데 한참 생각하면 어떡해?"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이등병으로서 고참에게서 배운 첫 지식은 '중대 고참들의 서열 리스트'였다. 약 60명에 달하는 고참들 이름과 입대 월(서열을 월 단위로 끊었음)을 외우는 과업이었다. 다른 소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생소한 고참 이름을 달달달 외워야 했다. 단순 암기력이 부족한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과업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배웠던 그 어떤 복잡한 지식보다도 어려웠다. 

     

    드디어 야간 경계 근무를 나가게 되었을 때, 소대 살림꾼으로서 신병 교육을 담당하고 있던 임XX 일병이 나에게 고참 이름을 다 외웠는지 확인했다: "우리 소대 고참들은 안 묻겠지만, 다른 소대 고참들, 특히 군기를 잡는 상병 군번은 너랑 근무를 나가면 중대 서열을 반드시 물어볼거야. 위에서부터 달달달 외워야 해. 물어 봤는데 답변을 바로 하지 못하면 너나 나나 모두 힘들어진다. 그래서 잘 해야 해, 알았지?" 

     

    고3 때도 그렇게 열심히 뭔가를 외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달달달 외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때 절감했다. 완전히 낯선 상황에서 단 며칠 만에 60명 이름과 입대 월을 외우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는데, 모든 신경을 모아 모아서 겨우 외우는데 성공했다. (이런 정신력으로 공부를 했다면 서울대를 갔겠지?) 근무에 나가기 전까지 외운 내용을 잊지 않으려고 앉으나 서나 서열을 외웠다. 

     

    이윽고, 야간 경계 근무표가 게시되고, 나는 중대에서도 가장 무시무시하다는 '돌+I' 고참과 단 둘이 야간 경계 근무를 나가게 되었다. 중대 행정반에서 소총 거치대 열쇠를 받아와서 소총부터 챙기고, 대대로 내려가서 공포탄을 챙기고, 초소까지 뛰어가는 과업까지 모두 무사히 수행했다. 그리고 운명적 시간이 다가왔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고참이 빙그레 미소를 띄우더니 나에게 질문했다: "중대 서열 끝에서부터 거꾸로 읊어봐."

     

    엥? 거꾸로 읊으라고? 

     

    순방향으로만 서열을 외우고 있던 내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는 질문이었다. 순간적으로 멘붕에 빠진 나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한 번 당황하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당황하는 징크스가 발동했다. 다 외웠는데... 각 군번 별로 동기들 이름도 다 외웠고 각 사람 특징까지 달달달 외웠는데...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질문 한 방에 나는 당황스러운 기분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아...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공부란 무엇일까? 

     

    1. 공부한 사람은 암기한다.

    한국 교육은 암기식 공부 때문에 망했다고 한다. 선진국을 따라잡는 동안엔 암기식 교육이 도움이 되었지만, 이제는 창의력이 중요하다고도 말한다. 암기는 마치 열등한 지적 능력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조건 외우고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주입식 교육이 문제다. 뭔가를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은 반드시 암기를 해야 한다.

    칼을 만드는 대장장이에게 “칼은 어떻게 만드나요?” 라고 질문할 때, 외우고 있던 정해진 지식을 바로 답하지 않는다면, 이 대장장이를 “전문가”로 대접할 수 있을까? 아니다. 대장장이는 칼을 만드는 법에 대해서 충분히 알지 못하는 거다. 잘 모르는 거다. 따라서 전문가로 대접해주기 힘들다. 모르는 사람이니까.

    물론, 대상에 관하여 모든 세부 사항을 외울 필요는 없다. 인간의 암기력은 한계가 있고, 지성이란 단순 암기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 지식은 좔좔좔 외우고 있어야 한다. 버튼을 누르면 바로 튀어 나와야 한다. 그대 자신에게 물어 보라. 그대가 하는 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누가 갑자기 물어 본다면 바로 답할 수 있겠는가?

    2. 공부하는 사람은 지루함을 이긴다.

    공부는 지루한 거다. 처음에는 새로운 내용을 배우므로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을 넘은 후부터는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고, 공부를 잘 하려면 이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야 한다. 실상이 이러한 이유는 머리가 익히는 지식과 몸이 익히는 지식이 다른 속도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머리에 있는 지식이 손/발까지 내려오려면 지루한 연습 시간을 견뎌야 한다.

    한편, 사회복지사만큼 교육을 많이 받는 사람들도 없다. 법정 보수교육은 당연히 받아야 하고, 요즘에는 기관별로 매주 일정한 시간을 들여서 팀교육, 전체 교육을 하는 곳도 많아졌다. 그리하여 사회복지사의 눈이 굉장히 높다: 어디에 교육을 하러 가면, (팔짱을 낀 채) “어디 한 번 해 봐”라는 식으로 지그시 바라보는 눈길이 많다. 이제는 웬만한 내용과 웬만한 방식으로는 우리 동료들을 만족시키기가 어렵다.

    하지만 개별적으로 동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아는 게 없다. 왜?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교육을 받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우리 동료들이 들은 내용을 마음 속에 쌓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듣기보다 이해가 힘들고, 이해보다 가르치기가 힘들며, 가르치기보다 지루한 복습이 힘들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 이는 새로 뭔가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배워서 이미 알고 있는 바를 훈련하는 사람이다.


    사회사업가는 '전문가' 소리를 듣고 싶어한다. 사회사업을 이해하고 설명할 때 그렇게나 '(권위주의적인) 의사 집단'과 대조하면서도, 의사처럼 '전문가' 대접을 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전문가 대접을 원하기는 하지만 죽어라고 공부는 안하려고 한다. 아니지, 공부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마치 수박 겉핥기가 사회사업가의 지적 특성이라도 되는 듯, 깊이 공부하지 않는다. 

     

    제발,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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