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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훈이가 제일 많이 겪었고, 제일 잘 알 거에요.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6. 27. 20:52728x90반응형
<소아 외과 외래 진료실>
승훈: (울부짖는다) 아~ 아파, 하지마, 싫다고, 안한다고~!
승훈 모: 승훈아, 안아파~. 사실대로 말해 봐. 아직 아무 것도 안했어.
승훈 부: 승훈이가 가만히 있어야 얼른 하고 가지. 안그러면 계속 해야 해.
안정원 교수: 자, 선생님이 안아프게 빨리 할게요.
승훈: (다시, 울부짖는다) 아~ 하지마, 하지마, 안한다고~!
승훈 모: 승훈아! 아직 아무 것도 안했어. 엉? 승훈이가 울어서 지금 아무 것도 못하고 있잖아!
안정원 교수: 어머니, 다른 아이들 좀 보고 있을 테니까, 승훈이 잠깐 데리고 나가셔서 기분 좀 풀고 올게요.
승훈 모: 죄송합니다. (승훈이 옷 내리며) 자, 내려와.
<소아 외과 외래 대기실>
승훈 모: 결국 실밥도 못 뽑고, 교수님 진만 빼고... (눈물을 흘리면서 혼잣말을 한다) 속상해 진짜... 쟤는 왜 저러나 몰라. 그걸 못참으면 어떡해. 아... 진짜.
안정원 교수: 아이고... 어머니, 승훈이 힘든 암 수술도 이긴 아이에요. 아픈 거, 승훈이가 제일 많이 겪었고, 제일 잘 알 거에요. 속 상하신 거 이해해요. 그래도, 아픈 승훈이 잘 달래고 잘 케어해서 여기까지 오셨는데... 오늘 같은 실밥 제거 정도야, 전에 승훈이 아프고 수술 받을 때에 비하면, 이 정도 일은 오늘 일은 진짜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전 괜찮으니까, 어머니,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일 주일 후에 다시 도전하면 되죠, 뭐.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2화 중에서>
승훈이가 병원에 왔다. 엄마랑 아빠랑 함께 왔다. 암 수술이 끝난 후, 등 절개 부위에 남아있는 실밥을 뽑으러 왔다. 수술을 집도한 소아외과 안정원 교수는 승훈이 부모님과 함께 작전(?)을 펼친다: "자, 선생님이 안아프게 빨리 할게요~", "승훈이가 가만히 있어야 얼른 하고 가지. 안그러면 계속 해야 해." 하지만 오늘은 승훈이 심기가 불편한가보다. 도저히 틈을 안 준다. 실밥 근처에도 못 갔는데 엉엉 울고 비명을 지른다: "아~ 하지마, 하지마, 안한다고~!" 승훈이가 저항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안정원 교수, 승훈이 기분 좀 풀고 다시 하잔다. 승훈이 엄마 아빠는 죄송스러워하며 승훈이와 함께 나간다.
하지만 이날, 승훈이는 기분을 풀지 않는다. 엄마 손을 잡고 두 세 번이나 병실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지만, 상처 부위에는 손도 못대게 한다. 결국, 실밥을 하나도 못 뽑고 포기한 안정원 교수. 엄마도 기분이 안좋다. 하루 종일 아들 덕분에(?) 진만 뺀 교수님에게 죄송하다. 이런 일로 폐를 끼치고 속을 썩이는 아들내미가 몹시 원망스럽다. 진료 시간은 모두 끝났고, 못된(?) 승훈이는 아빠랑 밥 먹으러 나갔고, 승훈 엄마는 외래 진료실을 다시 찾은 안정원 교수와 마주친다. 그리고 방백같은 독백으로 속상한 마음을 토로한다: "속상해 진짜... 쟤는 애 저러나 몰라. 그걸 못참으면 어떡해..."
이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순간, 안정원 교수는 슬며시 승훈이에게 빙의한다. 전문의(안정원 교수)와 보호자(승훈 엄마)가 대화를 나누는데, 환자(승훈이)가 전문의 입을 통해 말을 한다: "언제 실밥을 뽑을지는 제가 결정해요. 아무래도 오늘은 안되겠어요. 다음에 뽑아요." 물론, 실제 빙의는 아니고 이런 말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정원 교수 말을 들어보면, 승훈이가 말을 한 것 같이 느껴진다. 왜? 승훈이의 관점을 반영했기 때문에. 승훈이 편에서 승훈이 마음을 공감했기 때문에: "승훈이, 힘든 암 수술도 이긴 아이에요. 아픈 거, 승훈이가 제일 많이 겪었고, 제일 잘 알 거에요."
내가 해결중심모델을 가르쳐 보면, 사회사업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 이런 말씀을 가장 많이 듣는다: "선생님, 해결중심모델... 내담자가 원하는 것, 내담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자원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는 거 다 좋아요. 좋은데요, 사실, 저희가 가족치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래서 주로 만나는 분들은 자발적인 분들이 아니시거든요. 대부분 비자발적인 분들이고, 비협조적이신 분들인데... 해결중심 질문이 아무리 좋아도 현실적으로 이분들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머리로는 좋다는 걸 아는데, 현실적이지 않아서 고민이 됩니다." 그렇다. 해결중심모델을 사회사업에 적용하는 맥락에서도 결국 문제는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다. '옳은 방향'에 저항하는 분들, 무조건 '눈앞에 있는 것'에만 관심 있는 분들, 좋은 건 '죽어라 안하려고' 하시는 분들. 이분들을 '스무스하게 요리(?)하는 방법'을 어쨌든 내 놓으라는 거다.
그렇다면, 해결중심모델에서는 이런 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도우라고 이야기할까?
"당신이 틀렸다"고 말한다. 애초에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은 누구에게 옳은 거냐고 묻는다. '눈앞에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판단은 누구의 기준을 따라서 내린 거냐고 묻는다. '비자발적', '비협조적', 이런 낱말은 누구의 언어냐고 묻는다. 해결중심모델을 공동으로 개발한 스티브 드쉐이저에 따르면, '내담자의 저항'은상담자(전문가)가 그렇게 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실체는 없다고 한다. 상담자가 주도하는 모델에서는 어디까지나 상담자의 관점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담자의 관점에서 벗어나면 모든 게 부정적으로 보이고 '내담자가 저항한다'고 보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내담자를 기준을 놓고 생각한다면, 그가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상담자가 자꾸 하라고 하니까 반대하게 되고 저항하게 된다.
승훈이는 일부러 많게 봐도 6, 7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 만약 어른들이 "아이가 알면 뭘 알겠냐?" 라고 생각한다면, 승훈이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발언한 기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발언할 기회는 곧 권력 관계를 나타내는 단적인 지표. 발언 기회를 얻지 못한 목소리는 쉽게 대상화되고, 부정적인 시선을 받게 되고, 왜곡된 인식틀 안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안정원 교수가 승훈이 관점에서 승훈이 어머니를 설득하는 발언이 매우 놀랍게 느껴진다: "승훈이, 힘든 암 수술도 이긴 아이에요. 아픈 거, 승훈이가 제일 많이 겪었고, 제일 잘 알 거에요."
한편, "그렇다면 내담자가 신이라는 말이냐?"는 다소 원초적인(?) 질문에 부딪힐 수 있겠다. 해결중심모델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사람들은 이 질문을 '내담자를 낮춰보는 무례한 질문'으로 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해결중심모델을 떠받들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전제가 "내담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해결책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어떨까? 모. 태. 솔. 로. 모태솔로는 한 번도 연애다운 연애를 못 해 본 사람을 다소 익살스럽게 일컫는 말이다. 모태솔로에게 원하는 바를 물어본다면, "당장 연애하고 싶어요!" 라고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태솔로는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혹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관해서 "진정한 전문가"인가?
나는 이 두 관점 사이에서, 길을 유연하게 찾자고 말하겠다. 나는 우선적으로 내담자를 강점관점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런 관점이 현실적 맥락 속에서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될 때는, 유연하게 관점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기본적으로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파악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강점/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강점/자원이 현저하게 부족할 수 있고, 그렇다면 그를 "자신의 삶에 대한 전문가"라고 보는 관점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서 그를 돕는 과정에도 별로 도움이 안될 수도 있다.
<내담자를 돕는 과정에서 해결중심 실천가가 유연하게 역할을 취하는 방법>
<비자발적인 내담자에게 강점관점실천을 적용한 사례>
승훈이 이야기로 돌아가자. 안정원 교수가 한 말은, 이 장면에서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소외되어 있던 승훈이 관점을 복원시키는 의미가 있다. 승훈이가 한 말과 취한 행동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약간 유치하고, 엉성하고,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는 다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엄마와 아빠가 느꼈을 당혹감과 민망함, 그리고 죄송함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강점관점을 "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 실용주의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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