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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희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7. 10.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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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부외과 중환자실> 

     

    김준완: 어머님만 포기하지 않으면, 저희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은지 모: 으흐흑...

    김준완: 심장 공여자 나올 거고, 은지 수술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은지 모: 으흐흑...

    김준완: 기운 내시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네? 

    은지 모: 으흐흑... 교수님, 감사합니다. 

     

    <흉부외과 병동 휴게실>

     

    김준완: 은지 어머님. 

    은지 모: 어, 교수님. 아직 퇴근 안하셨어요? 

    김준완: 오늘 퇴근 못할 것 같습니다. 

    은지 모: 왜요, 또 당직이에요? 

    김준완: 아뇨... 은지 이식수술이 있어서요. 심장 공여자 나왔고, 우리가 받기로 했습니다. 

    은지 모: 으으흑... 이거 정말 꿈 아니죠? 우리 은지가 진짜로 받는 거에요? 

    김준완: 네, 은지가 받기로 했습니다. 

    은지 모: 으흐흑... 

     

    <수술실 앞> 

     

    김준완: 오늘 이날을 위해, 어머니 아버지가 그렇게 고생을 하신 겁니다. 모두가 고생했고, 모두가 기다려 온 시간인데, 제가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은지 꼭 살릴게요.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4화에서>


    부부-가족치료자로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는, 이미 오래 전에 파탄난 관계를 뒤늦게 들고 와서 어떻게 좀 해 달라고 요청하시는 경우다. 이런 분들은 이미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태도부터 다르다. 이름은 부부이지만, 서로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들어오시는 듯 냉랭~하다. 찬바람이 쌩쌩 분다. 그 장면을 보는 내 마음마저 얼어 붙으려고 한다. 진짜로 처음부터 그런 느낌이 든다. 막막하고 답답하다. 

     

    근 10년 정도 부부-가족상담을 하면서 내가 관찰하고 포착해서 구성한 개념이 하나 있다: 애정 자본. 어떤 커플이든, 결혼을 했든 안했든, 처음에는 무척 관계가 좋았겠지. 그때는 서로 바라만 봐도 좋고, 두 사람이 만드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그 에너지가 두 사람이 탄 열기구에 더운 바람으로 들어가서 쉽게 하늘로 올라 간다. 바로 이런 분위기, 서로 끝없이 사랑하고 참아내는 에너지를 만약 물리적인 대상에 비유한다면, 은행 금고에 쌓아둔 돈(자본)이라고 칭할 수 있겠다. 

     

    내 생각엔, 어떤 부부든지 관계 초기(특히 결혼 전 연애 기간)에 많은 애정 자본을 쌓고, 결혼한 후에는 실망감에 기초한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이 자본을 조금씩 까 먹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자본은 처음에 느끼듯 무한정 쌓여 있지 않다. 실제 지폐 같은 물리적 대상물이 있는 자본이 아니므로 한 번 꺼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사라진다. 관계를 망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면, 갑부라도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될 수도 있다. 물론, 대개는 위기를 느끼고 자본을 까먹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지되기도 한다. 

     

    역시 문제가 되는 커플은, 이미 10년 전쯤에 애정 자본을 거의 모두 까먹었는데 마지막 동전 한닢이 사라지려고 하자 은행을 찾는 분들이다. 특히, 자녀 때문에 이혼만은 못한다고, 일단 아이가 대학 갈 때까지만이라도, 혹은 결혼할 때까지만이라도 참으려고 한다는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법적으로 도장만 안 찍었을 뿐, 이미 정서적으로는 거의 완전히 남남이다. 부부 자신이 파탄내온 관계, 폐허 같이 사그라진 애정 자본을 들고 오시면, 상담자로서는 막막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렵다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최소한 내가 먼저 포기하지는 않는다. 한 조각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곳을 파고 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한다. 경험으로만 따져 보면, 실패한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그래서 포기하는 편이 좀 더 합리적이지만,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에게 이건 그냥 남들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부부가 마음 속에 품고 있을 절절한 감정을 나도 고스란히, 결결이 느껴 봤기 때문이다. 누군가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이라고 말했다는데, 나야말로 부부 문제를 남의 문제로 느끼지 않고 내 문제라고 느낀다. 그러므로 나 같은 사람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내담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나를 돕는 셈이 된다.  

     

    오늘(2021년 7월 9일)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4편을 보면서 정경호 배우 연기에 감동을 받았다. "어머님만 포기하지 않으면, 저희가 먼저 포기하는 일은 없습니다. 기운 내시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네?" 꼭 의사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돕는 원조전문가가 진심을 품고 이 말을 한다면? 대부분은 통할 거라고 믿는다. 아니, 혹시나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먼저 포기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도 내가 만나서 돕는 사람들을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 내담자든, 학생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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