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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모 아직도 수술방에 안 내리고 뭐해?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7. 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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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부인과 분만실 앞>

     

    추민하: (흥분한 목소리로) 지금 자연 분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아기 머리가 산도에 끼어 있는 시간이 오래 되면, 태아에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조금씩 아기 심박동도 불안정해지고 있구요. 아기도 힘들 수 있어요. 지금 바로 수술 들어갈 겁니다. 산모분도 간절하게 원하고 계세요. 

     

    남편: (다급하게) 우리 와이프, 무조건 자연분만 해야 해요, 선생님. 아마 지금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럴 거에요.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추민하: 지금, 산모 아기 다 위험하다고요. 산모 분 이미 지치셨고, 아기가 하늘 보면서 내려와서 진행이 더디고 안 내려 오고 있어요. 세 시간 넘게 전혀 내려오지 못한 거면, 이거는 수술 해야 돼요. 새벽 네시 넘었어요, 지금. 네 시간이 다 돼 간다구요. 

     

    시모: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며느리가 저랑 약속했거든요. 자연 분만 하기로. 선생님, 조금만 더 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때 수술해도 되잖아요?

     

    추민하: 네, 그게 지금이에요. 조금만 조금만 해서 그게 지금이라구요. 응급이에요, 응급! 

     

    양석형: (화 내며 나타난다) 산모 아직도 수술방에 안 내리고 뭐해? 

     

    추민하: 교수님, 보호자 분들이 계속 자연분만 하고 싶다고... 수술을 못하게... 

     

    시모: 자연분만 해야, 애가 똑똑하다는데... 조금만 더 해 보면 안될까요? 

     

    양석형: (단호하게) 자연분만이 목표이신가 본데, 우리는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고 산모 분이 건강하게 출산하는 게 목표입니다. 지금도 많이 늦었어요. 최예림 산모 수술 필요하고, 산모 분도 동의하셨고, 지금 수술 들어갑니다. (추민하 보면서) 뭐해? 

     

    추민하: 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3화 중에서>


    위기 상황이다! 산모는 자정부터 진통을 시작했는데 새벽 네 시가 될 때까지 아기가 나오지 않았다. 산모는 지칠 대로 지쳤고, 산도에 머리가 끼어 있는 상태로 멈추어 있는 아기는 더 죽을 맛이다. 만약에 태아도 말을 할 수 있다면 욕부터 할 지경이다. 산부인과 터줏대감, 추민하 전공의는 새벽부터 아기 아빠와 아기 할머니를 상대로 빨리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어렵게(?) 설득하고 있다.

     

    솔직히, 산모 남편이자 아기 아빠가 하는 말이 놀랍다: "우리 와이프, 무조건 자연분만 해야 해요, 선생님. 아마 지금 너무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럴 거에요. 이 고비만 잘 넘기면..." 지금 의사가 산모도 태아도 잘못될 수 있다고, 응급 상황이라고 소리를 치는데, 이 양반은 '자연분만' 운운하고 있다. 진짜로 비극이 일어나면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가? 도대체 왜 자연분만을 고집하는가? 

     

    시어머니 목소리를 들으니 딱 알겠다: "자연분만 해야, 애가 똑똑하다는데... 조금만 더 해 보면 안될까요?" 하긴... 예컨대, 아동이 영어를 잘 하게 만들기 위해서 혀끝을 찢는 수술까지 하는 나라인데, 산모나 태아 생명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지능에 대한 끔찍한 집착, 아니지... 공부에 대한 필사적인 집중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마디로, 졌다, 졌어!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로서 최근에 다시 문을 연 시즌 2는 (여전히)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의사들을 지나치게(거의 판타지 수준으로) 선하게만 묘사하는 부분이 특히 실망스럽다. 아마도 이 드라마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케이블 TV 드라마가 보여왔다는 시청률 한계를 돌파해서, 이제는 거의 '국민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금 언급하고 있는 이 장면을 분석해 보자. 이견이 별로 없을 소재다. 태아와 산모의 생명이 위급한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자연분만을 해야 아이 지능이 높다는 통설을 따르는 어머니 뜻을 받들어서 제왕절개 수술을 미루고 있다. 그것도 자신의 몸 속에 아기를 품고 있는 산모 본인도 수술에 동의한 상태에서. 두 생명이 위태롭기 때문에, 누가 봐도 명백한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원조 전문가는 당연히 '행동'해야 한다. 

     

    그런데 곰곰 따져보면, 산모의 남편과 시어머니는 상대적으로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처해 있다. 현실을 간단하게 축소하는 시각 예술이 가진 특성을 고려하면, 특별히 배경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들의 진위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시청자는 이미 1년 이상 양석형 교수 캐릭터를 지켜봐 왔다. 그가 얼마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의사인지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확인해 왔다. 따라서 양석형 교수가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당연히 산모(태아)를 구하려고 하겠지. 반면에, 산모의 남편과 시어머니에 관해서 시청자에게 허락된 정보는 두 문장 뿐이다: "우리 와이프, 무조건 자연분만 해야 해요", "자연분만 해야, 애가 똑똑하다는데... 조금만 더 해 보면 안될까요?"

     

    다시 강조하고 싶다. 시각 예술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 복잡다단한 현실 중에서 대단히 좁은 한 국면을 선택해서 강조한 불완전한/제한적인 결과물일 뿐이다. 우리는 드라마 작가와 PD가, 양석형 교수가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장면만 강조해서 구성해 놓은 선택적 창작물을 보았다. 반대로, 우리는 산모의 남편과 시어머니가 '대단히 비이성적인 신념에 기초해서 산모의 생명을 경시하는 듯한 장면'만 보았을 뿐이다. 영화/드라마는 수많은 장면을 편집해서 창조하는 예술이므로 어떤 장면을 이어서 보여줄 것인지가 관객의 사고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오해 마시라. 나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추민하나 양석형 교수처럼 판단하고 말했을 테니까. 다만, 현실은 흑백으로 나누기 어려운 복잡한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굳이, 일부러, 의도적으로 말하고 싶을 뿐이다. 급한 판단은 급하게 내리되, 산모의 남편과 시어머니를 단순하게 악마화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제언하고 싶다. 그렇다. 전문가로서 내리는 윤리적인 판단은 어려워야 한다. 복잡해야 한다. 한 면만 보고 한 방향으로 치우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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