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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우 얘기하고 싶어서 오시는 거야
    지식 공유하기(기타)/슬기로운 의사생활 2021. 6. 2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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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 외과 병동>

     

    간호사1: (의심하는 눈초리로) 연우 어머니... 연우 안좋게 된 거... 병원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하시고 혹시 고소 같은 거 준비 중이신 건 아니겠죠?
    간호사2: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느 식당> 


    장겨울: 연우라고, 작년 가을에 하늘나라로 간 아이요. 연우 어머니가 연우 보내고 한 달인가 뒤부터 계속 병원에 찾아오세요. 별 다른 용건 없이 병원에 자주 오시는데, 저한테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안정원: 연우 엄마는, 연우 얘기하고 싶어서 오시는 거야. 태어나자마자 병원에 쭉 있었으니까, 병원 밖에서 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엄마 입장에선,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데, 대화할 사람이 없어. 오랫동안 아이를 봐 왔던 담당 의사랑 간호사 빼고는. 부담되고 겉도는 이야기만 하실 수도 있는데, 그래도 다음에 또 뵈면, 겨울이가 먼저 말 걸어 드리고 따뜻한 커피라도 한 잔 사 드려.
    장겨울: (고개를 끄덕인다.)

     

    <소아 외과 병동> 


    연우 어머니: (의아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장겨울: 제가 커피 한 잔 사 드릴게요.
    연우 어머니: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제 1화 중에서>


    연우 어머니, 또 오셨다. 케이크를 들고 소아외과 병동에 오셨다. 의료진 처지에선 난감하다. 연우는 병원에서 태어나서 병원에서 살다가 안타깝게 숨진 아이. 아이가 하늘로 떠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병원을 찾으시니… 그래서 의료진은 의심도 하게 된다: “연우 어머니... 연우 안좋게 된 거... 병원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생각하시고 혹시 고소 같은 거 준비 중이신 건 아니겠죠?”

    누구보다 좌불안석인 사람은 담당 전공의, 장겨울 선생: “모르겠다. 연우 엄마가 찾아오는 이유를. 매번 생각해 보건만, 잘 모르겠다. 연우 엄마 앞에 설 때마다 서늘한 민망함과 막연한 답답함을 느낀다. 특별한 주제 없이 하시는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모르는 척을 하고 있지만, 책임감이 느껴져서 죄송하고 민망하다.”

    장겨울 선생이 안정원 교수에게 묻는다. 그리고 안정원 교수가 답을 준다:

    “연우 엄마는, 연우 얘기하고 싶어서 오시는 거야.”

    연우는 세상에 왔지만 세상에 없던 아이다. 보통 아이들이 누리는 삶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병원에서 태어나서 병원에서 자랐고 병원에서 숨졌다.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고, 유치원을 다니지도 못했다. 엄마가 밥 짓는 냄새 대신 알콜 솜 냄새를 맡았고, 까르르 까르르 뛰어 노는 대신 아파서 울었다. 부모를 제외하면, 의료진만 연우를 기억한다. 자연스러운 보통(normal) 삶을 살지 못하고 특별한(special) 공간에서 잠시 머물다 갔다.

    인간 존재는, 정체성은 무엇으로 확인하는가? 내가 나라는 사실은 어떻게 아는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으로 자신을 확인한다. 기억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국적이나 부모) 확인하고, 기억으로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문화, 일상) 확인하며, 심지어 앞으로 다가 올 미래(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스케쥴)도 기억으로 확인힌다.

    한편, 인간의 기억은 사회적이다. 우리 이름은 타인에게(부모) 받은 것이다. 우리는 별명도 누군가에게(친구) 받는다. 우리는 타인(배우자)을 만나서 그와 맺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규정한다. 우리 기억은 거의 언제나 의미 있는 타인과 함께 나눈 활동을 기반으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연우는 사실상 병원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만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연우 어머니는 연우를 추모하면서 떠나 보내고 있다. 연우 손을 잡고 걸으려면, 그렇게 걷다가 떠나 보내려면, 연우가 존재하는 병원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연우를 기억하는 의료진에게 와야 한다. 이는 연우가 떠나간 사실을 부인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정하고 또 인정하려는 행위다. 인정하려면, 떠나 보내려면, 연우를 기억해야 한다. 연우를 제대로 기억하고 충분히 애도해야 연우도 편히 쉴 수 있고 엄마도 비로소 편히 쉴 수 있다.


    뜯어 보면 대단히 넓은 주제를 품고 있는 장면이지만, 나는 ‘공감’을 이야기 하고 싶다. 공감(empathy)은 진정성(genuineness)과 수용(accept ance)과 함께 간다. 공감은 진심어린 태도로(진정성), 상대방이 보이는 부정적 언행 너머에 존재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수용) 가질 수 있는 마음이고 태도다.

    안정원 교수는 연우 어머니 마음을 안다. 오랫동안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함께 넘기면서 매순간 관찰했다. 연우가 어떤 아이고, 연우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부정적인 신호(아무 이유 없이 병원에 찾아오는 행동, 뭔가를 병동에 두고 가서 또 다시 병동에 돌아올 핑계를 만드는 행동, 할 말도 없으면서 담당 전공의를 자꾸 부르는 행동 등)가 보여도 무시한다. 연우 어머니가 품고 있는 진심이 뭔지 알기 때문이다. 연우 어머니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연우 얘기 하고 싶어서 오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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