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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계획(PCP)을 지향하는 사회복지사가 해결중심 질문을 배우면?상담 공부방/해결중심상담 교육 후기 2022. 4. 6. 08:14728x90반응형
[상황]
발달장애인거주시설 내 같은 집에 사는 A씨가 B씨의 방문 앞에 와서 크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표현하는 일이 있었음. 짐작하건대, 본인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A씨의 물건 중 일부가 없어져서, 화를 내는 상황으로 보임. (이전 경험을 보면, A씨가 보관 장소를 착각한 경우도 있었고, B씨가 몰래 가져 간 경우도 있었음.)
_ B씨: (큰 목소리로) A가 소리 질러요! 나가라고 해요!
_ 나: B씨, A씨가 큰 소리로 말했어요? 왜 A씨가 큰 소리로 말하는 거 같아요?
_ B씨: 몰라! 나가라고 해요!
_ 나: B씨는 조용한 게 좋은데, A씨가 큰 소리로 말해서 시끄러워서 화나셨나 보다.
_ B씨: 맞아요!
_ 나: 그런데 지금 B씨 목소리도 저한테는 엄청나게 크게 들려요. (작게 속삭이며) 작게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_ B씨: (누그러진 목소리로) 있어요.
_ 나: B씨, 무슨 일이 있었어요?
_ B씨: A가 내 방에 들어와서 소리 질러요.
_ 나: 왜요?
_ B씨: ...
_ 나: 뭐 잃어버렸대요?
_ B씨: ...
_ 나: 그래서 B씨는 어떻게 했어요?
_ B씨: ...
_ 나: B씨도 같이 화냈어요?
_ B씨: 아니.
_ 나: 어머~ B씨~ A씨는 화내고 소리치는데, 어떻게 화 안 내고 있었어요? [대처질문]
_ B씨: ...
_ 나: 그럼 화내는 대신 여기로 온 거예요?
_ B씨: 네.
_ 나: 그렇구나.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으셨어요?
_ B씨: ...
_ 나: 도와달라고 온 거예요?
_ B씨: 네.
_ 나: B씨~ B씨도 화났을 텐데 같이 소리치지 않고 여기 와서 말로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_ B씨: 할 수 있어요.
_ 나: 근데 A씨가 소리 지르면서 뭐라고 했어요?
_ B씨: 몰라. 걔는 맨날 소리 질러.
_ 나: A씨가 화난 거 같아요, 속상한 거 같아요?
_ B씨: 속상해?
_ 나: 그럼 B씨는 어땠어요?
_ B씨: ...
_ 나: 같이 가볼까요?
_ B씨: 그래요.
발달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일하고 계신 김행민 사회사업가께서 '차근차근 해결중심상담 기본과정(화요반)' 수업 과제를 제출하셨다. 최근 수업 시간에 배운 '대처 질문(coping question)'을 실제 상황에서 사용해 보셨단다. 대처 질문에서 '대처(coping)'이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바람직하고 훌륭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상담자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나요?' 라고 대처질문을 구사하면, 답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한 가치나, 긍정적인 목표, 혹은 강점이나 비결을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된다. 한 마디로, 대처 질문은 스스로 칭찬을 해 보라는 요청이다.
그런데, 김행민 선생님께서 대처 질문을 시도하신 대상이 누구인가. (비장애인이 보기에) 장애 정도가 약간 중해서, (비장애인과) 언어적 의사소통이 조금 어려우신 분이시다. 이런 경우, 해결중심 질문에 대해 고전적인 비판을 가할 수 있다: '해결중심모델은 대단히 낯설고 복잡한 언어적 기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비장애인과)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예컨대 발달장애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적용하기는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이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반론을 펼 수 있을까? 혹은 어떤 대안으로 응수할 수 있을까? 나는 오랫 동안 저 비판에 지고 있었다: '그래...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게는 쓸 수 없을 거야.'
아니다!
쓸 수 있다. 우리가 형식적인 질문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바로 김행민 선생님 대화록이 증거다. 나는 위 대화록 중에서, 김행민 선생님께서 대처질문을 멋지게 구사하신 대목보다는, 전반적인 대화 분위기와 행간을 주목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 내용은 보존하되, 쉽게 말한다.
위 대화록에서 B씨가 답변하지 못하는 대목("...")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고 한다. (1) 본인에게 불리해서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 (2) 질문이 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워서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 첫 번째 경우는 보편적인 이유로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두 번째 경우가 조금 문제가 될 수 있겠는데, 이 경우엔 내용은 보존하되 말을 쉽게 하면 된다. 위 대화록을 꼼꼼하게 읽어 보면, 김행민 선생님께서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오랫 동안 도와 오신 전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김행님 선생님께서는 (ㄱ) 말 자체도 전반적으로 쉽게 구사하시고, (ㄴ) 복잡한 질문은 쪼개서 순서대로 구사하신다.
(2) 언어 외에 다른 방법을 활용한다.
그런데 사실 김행민 선생님의 언어가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이면에 언어적인 테크닉 이상 존재한다는 사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행민 선생님께서는 A씨와 B씨를 오랫 동안 지켜보면서 세심하게 관찰해 온 내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되, 미리 단정하지는 않으신다. 두 세 발자국이 아니라 딱 반 발자국만 앞서는 태도를 보이신다. 계속 돌아 보시면서 이게 맞냐고, 만약 아니라면 저거냐고, 그것도 아니라면 그거냐고,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확인하신다. 현장에서 잘 훈련받은 사회사업가답게, 정중함, 침착함, 인내심을 잃지 않고 대화를 부드럽게 이어 나가신다.
(3) 어쨌든, 본인이 직접 하는 말이 제일 중요하다.
김행민 선생님께서는 언어적 소통이 어려운 분과 왜 이렇게 어렵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계실까? 그 이유는 아무리 서툴고 부족해 보여도, 본인이 직접 자신이 원하는 바에 대해서 혹은 자기 삶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관찰을 세심하게 하고 아무리 정중한 태도로 그 사람의 의사를 확인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본인이, 본인 입을 통해서, 본인 언어로 직접적으로 표하는 의사를 확인하는 노력보다는 '현저하게' 가치가 떨어진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최근 장애인복지계를 휩쓸고(?) 있는 흐름이 바로 PCP(Person-Centered Planning: 사람중심계획)이다. 김행민 선생님께서도 기관에서 PCP를 실천해 보시려고 애쓰고 계신다고 한다. 그런데 해결중심모델을 배워 보니, '왜 PCP인가?' 라는 질문에 조금 더 명확하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PCP에서는 OPD(One-Page Description)를 포함하는 다양한 도구로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이 가진 꿈, 희망, 강점, 자원을 사정하고 그가 원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기관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사회를 바꾸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곰곰 따져 보면, PCP에서 사용하는 온갖 도구와 서식은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라는 단순한 질문에 효과적으로 답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본인이 원하는 바를 중심에 두려는 기본 방향과, 이 방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온갖 도구와 서식을 간결한 원리로 연결짓지 못한다면, 정작 도와야 할 사람을 돕기 전에 내 머리만 복잡해지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
해결중심모델 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PCP와 해결중심모델은 '역사적으로는 관련이 없거나 적지만, 논리적으로는 완벽하게 붙어 있다.' 역사적으로 관련이 없다는 말은, 두 모델을 개발한 사람들이 개발 과정에서 서로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면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양자를 비교해 보면 내부적인 논리가 너무나도 흡사하다. 그래서 PCP는 언어적인 소통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을 위해서 개발되었으므로, 해결중심모델을 배우는 사람이 언어적인 소통이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해결중심모델은 테크닉이 대단히 간결하고 강점관점이 대단히 강력하게 내장되어 있어서, PCP를 배우는 사람이 이 모든 도구며 양식을 왜 써야 하는 거야? 라는 질문이 들 때 적절한 답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도대체 왜?'에 해당하는 논리를 명쾌하게 제공해 준다.
나는 김행민 선생님께서 해결중심모델을 열심히 배우시되, 너무 질문 테크닉 그 자체에 집착하지는 마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미 김행민 선생님께서는 내면에 해결중심질문을 품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뜻하고 세심하며 정중한 태도로 장애 당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늘 수업에서 말씀 드리듯이, '정중한 호기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질문 테크닉은 이 정중한 호기심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아무리 멋지게 고급 해결중심질문을 구사한다고 해도, 내 마음 속에 정중한 호기심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김행민 선생님을 포함해서, '차근차근 해결중심상담 기본 과정'에 참여하고 계신 학생 분들께서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탐구하는 태도를 놓치지 않으시길 간절하게 바란다.
<참고>
본 포스트에 사용한 텍스트는 김행민 선생님께 검토 받은 후, 사용을 허락 받았습니다.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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