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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배우는 강점관점실천
    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2. 4. 2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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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주요 등장 인물 중 한 사람인 창희가 퇴근 길에 피 고용인 구 씨 집에 들른다. 구 씨는 어정쩡한 시골인 이곳에 어쩌다 굴러 들어와서 낮에는 창희 아버지가 운영하는 씽크대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혼자서 조용히 소주를 여러 병 마시는(실질적으로 알콜 중독 상태) 일꾼. 예전에 뭘 하던 사람인지, 왜 이런 시골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 건지, 평소 어떤 감정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과묵한 사람. 그저 성실하게 일하고 술을 마신다. 이런 구 씨에게 관심을 보인 창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친해지려고 하고, 구 씨를 도우려고 한다. 그런데 이날 이 시간에 잠시 들른 구 씨 집 방 안에서 '야릇한 초록빛'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목격한다. 신비한(?) 초록빛에 이끌려서 방 안으로 들어선 창희. 그 초록빛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아챈 순간, 놀. 란. 다.


    <장면 #2>

     

    그 야릇하고 신비한 초록빛은 방 안을 가득 채운 소주병에서 반사된 빛이었다. 구 씨가, 매일 마시는 소주병을 (이상하게도) 방안에 모두 모셔둔 상황. 상황을 '미루어 짐작한' 창희는 동네 친구 두환을 불러서 소주병을 치운다. 구 씨 대신 소주병을 고물상에 팔아서 돈으로 바꿔 주겠다는 생각인 듯 하다. 창의가 품은 의도,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일을 마친 구 씨가 집으로 돌아온다. 

     

    두환: 어? 이거 뭐 이렇게 많이 쌓아 두셨어요? 치워 달라고 하시지. 이거 아끼고 그러는 거 아니죠? 

    구씨: (나즈막한 목소리로) 둬, 그냥. 

    창희: 금방 치워요. 씻으세요. 우리 둘이 후딱 고물상 갖다 주고 올게요. 

    구씨: (화난 표정으로) 그냥 두라고. 

    두환: 이거 금방 치우는데, 이거. 

    구씨: (더욱 화난 표정으로) 내가 싼 똥 누가 치워주는 게 너희들은 고맙냐? 

     

    결국, 창희와 두환은 치우던 소주병을 그대로 둔 채, 구 씨 집을 빠져 나간다.


    <장면 #3> 

     

    주말에 창희네 집에 와서 점심 밥을 함께 먹는 두환. 맞은 편에 앉은 창희 동생 미정이에게 구 씨 집에서 생긴 일에 대해서 말한다. 본인은 구 씨를 도와 주려고 했던 일인데, 왠지 억울하게 '봉변'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두환: 아니, 창희가 어제 구씨네서 불러서 갔는데, 진짜 깜짝 놀랐다. 방 안에서 빛이 막 장난 아니게 뿜어져 나오는데, 나 무슨 외계인 있는 줄 알았잖아. 가 봤더니 방 안에 소주병이 가득이야. 해도 또 그 방에 딱 떨어져 가지고 방이 막 후끈후끈해. 둘이서 그거 치우다가 구 씨 한테 욕 바가지로 먹고. 아, 그, 바가지는 아니었는데... 아, 좀 그랬어. 아, 청소해 주다가 욕 얻어 먹고, 민망해 뒈지는 줄 알았네, 진짜. 

    미정: 도와 달라고 했어? 치워 달라고 했냐고. 근데 왜 함부로 들어가서 손 대? 인간을 갱생시키겠다는 의도가 너무 오만해. 


    <장면 #4> 

     

    구 씨와 미정은 시나브로 뭔지 모를 공통점을 서로 발견하고 호감을 느끼는 사이. 미정이 먼저 구 씨에게 다가갔는데, 구 씨는 관심 없는 척...을 하다가, 부담을 전혀 주지 않는 미정과 의미 있는 소통을 시작한다. 창희, 두환과 소주병에 얽힌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구씨는 청소를 한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미정에게 보낸다. 

     

    구 씨: 백만년 만에 청소했다. 깨끗해진 집에서 이제 내가 뭘 할 것 같아? 

    미정: 술 마셔야지. 


    <장면 #5> 

     

    구 씨를 찾아가 함께 소주를 마시는 미정. 구 씨는 소주병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들려 준다. 

     

    구 씨: 겨우내 저 골방에 갇혀서 마실 때, 마시다가 자려고 하면 가운데 술병이 있는데, 그 술병을 이렇게 치우고 자면 되는데... 그거 하나 저쪽에다 미는 게 귀찮아서, 소주병 가운데 놓고 무슨 알 품는 것처럼 구부려서 자. 그거 하나 치우는 게 무슨 (한숨) 내 무덤에서 내가 일어나 나와서 벌초해야 되는 것처럼 암담한 일 같아. 누워서 소주병 보면서 그래. '아, 인생 끝판에 왔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겠구나.' 백만 년 걸려도 못 할 거 같던 일, 오늘 해치웠다. 잠이 잘 올까, 안 올까? 

     


    [재원 생각] 

     

    아직까지 한국의 사회사업 환경은 관 주도, 조직 우선, 문제/욕구 중심, 규범적 개입 위주에 머물러 있다. '관 주도'라 함은, 사회복지법인 대부분은 자립 능력이 부족한 반쪽짜리 비영리 기관이라서 국가/지자체 세금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온갖 평가와 지침에 매여 있다는 뜻이다. '조직 우선'이라 함은, 사회사업가가 위계 질서가 강한 조직에 매어 있기 때문에,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결핍 중심'이라 함은, 현재 돌아가고 있는 조직은 거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나 부족해서 원하는 것 중심이라서, 사람들이 품고 있는 능동성이나 자율성을 북돋아 주는 방향으로 일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규범적 개입 위주'라 함은, 당사자가 원하지 않더라도 뭔가 자꾸 줘야만 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런 환경 속에서 강점관점실천을 시도하려고 한다면? 당사자에게 권한/권력을 이양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여전히 기관에서 모든 상황을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당사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에 대해서도 사회사업가가 '내려다 보면서 대신' 발견해 주게 된다. 그리고 여전히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 단시간 내에 문제를 해결해 대신 주는 방식으로 향한다. 표준화되어 있는 매뉴얼에 따라서 온갖 자원을 연결하고 서비스를 연계해서 '겉으로 보기에 그럴 듯한' 그림을 만들어 간다. 그렇다면 당사자는 행복할까?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었다고 느낄까? 자신이 보고서에 올라가는 실적 속에 성공 사례로 카운팅되는 이 상황을 안다면 그 속뜻을 안다면 과연 만족해 할까? 양적으로는 틀림없이 좋은 성적을 얻겠지만, 과연 질적으로도 그러할까? 

     

    '나의 해방일지' 속에 등장하는 구 씨는 여러 모로 사회사업가가 돕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1) 오래되어 보이는 만성적 문제(알콜 중독)를 가지고 있다. 거의 매일, 혼자서 소주 3~4병을 마신다. (2) 사회적 관계망이 대단히 취약해 보인다. 친소 관계를 떠나서 아예 대화 자체를 나누는 사람이 적고, 그 적은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량도 대단히 적다. (3) 문제가 눈에 보이는데 해결할 의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자포자기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바로 옆집에 살고 있는 창희가 구 씨를 돕고 싶어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거의 없어 보이는 구 씨에게 자꾸 말을 걸고, 말 하기 싫으면 술이라도 함께 마시자고 제안한다. 자신의 노력이 구 씨에게 어떻게 느껴지고 있는지는 거의 모른 채, 마음 속에 선의가 시키는대로, '최소한'이라고 생각하는 도움을 주려고 한다. 

     

    소주병 치우기. 

     

    하지만 구 씨는 창희가 소주병을 치우는 모습을 보고, '뼈를 때리는' 말을 삼단 콤보로 날린다: "둬 그냥", "그냥 두라고", "내가 싼 똥 누가 치워주는 게 너희들은 고맙냐?" 우리는 이 말 속에서 구 씨의 의중을 몇 가지 파악할 수 있다: (1) 너희가 뭔가 나를 돕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건 안다. (2) 하지만 너희들이 소주병을 치우는 일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3) 나도 소주병을 방바닥을 가득 메울 정도로 깔아 두는 게 자랑스럽지는 않다. (4) 고맙기는 하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도움은 줄 필요 없다. (5) 언젠가 때가 되면 치워도 내가 치운다. 실제로 구 씨는 '때가 되자' 스스로 소주병을 치운다. 창희가 말한 대로, 고물상에 가져다 주고 돈을 받아 온다. (아마도 그 돈으로 술값을 치뤘을 테지만.) 이후 미정과 나누는 대화로 미루어 본다면, 구 씨가 그렇게 소주병을 보관한 이유는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과거 어떤 일과 관련이 있다. 

     

    그냥 결과만 두고 평가하자면, 결국 구 씨가 소주병을 옮긴 이유는 변화에 대한 대단히 희미하지만 어쨌든 거기 있는 희망과 기대 때문이다. 소주병을 옮기는 데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백만년 만에 청소를 감행(?)한 이유는 미정과 만들기 시작한 묘하게 달달한 관계 덕분이다. 그렇다. 이건 어디까지나 TV 드라마다. TV 드라마에서, 더구나 멜로 드라마에서 사랑을 변화하기 위한 연료로 불태우는 일은 보편적인 현상. 하지만 연애가 아니라 연애를 포함하는 관계라는 변수를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그 마저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겨우내 술 마시고 소주병을 방안에 전시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 대상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미정이었다. 그리고 미정이가 구 씨에게 사용한 방법은, 집착도 아니고 외면도 아닌, '정중한 호기심'이었다. 쇼파 밑 공간에 숨어 들어간 고양이처럼 스스로 갇힌 구 씨가 세상으로 한 발자국 나온 이유는 미정이가 슬며시 당겼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장면을 지켜 보면서, 사회복지사가 자주 만나는 '쓰레기 집'이 떠올랐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예컨대, 드라마에 나오는 구 씨는 신체 건장하고, 스스로 돈도 벌고 있다), 다양한 사연 때문에 집에 쓰레기 같은 '물건'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마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회사업가라면 '쓰레기 집'을 보면서 '치워야 한다'고 생각할 터. '쓰레기는 쓰레기니까.' 하지만 '쓰레기 집'을 성공적으로 치운 동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작 생각을 바꾸어야 할 사람은 사회사업가다. 사회사업가가 '쓰레기'를 '물건'이라고 생각할 즈음부터, 널부러진 쓰레기를 당장 치워야겠다는 자기 생각을 잠시 내려 놓았을 때부터, 당사자와 관계를 맺게 되고, 조금씩 신뢰를 쌓아 나가고, 결국 본인이 스스로 물건을 버릴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으로 갱생시킬 수 없는 '인간'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싼 똥 누가 치워주는 게 너희들은 고맙냐?

     

    이 글을 읽으시는 사회사업가 동료들께서 강점관점실천을 개인적으로 내가 관점을 바꾸면 될 일,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결정적으로 내가 강점관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강점관점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사회사업가 개인도 바뀌어야 하지만,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고, 사회사업가가 창의적으로 일하지 못하도록 옭죄는 관 주도, 조직 우선, 문제/욕구 중심, 규범적 개입 위주 흐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내가 아무리 강점관점으로 개입하려고 노력해도,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업무 환경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터. 그래서 나 자신을 바꾸는 노력에 더해서 변화가능성이 있는 환경부터 작지만 의미 있게 바꿔 나가야 한다. 그냥 구호로만, 겉으로 보기에 괜찮은 방향으로만 '강점관점'을 이야기 하면 안 된다. 

     

     

    <'쓰레기 집'에 대한 공공사례관리사의 고찰>

     

    본인이 원하는 거는 문 열면 그 방에 있었거든요

    요즘 특히 뭔가 모으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사례관리 일을 하기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금방 뭔가 치워줘야 될 것 같았어요. 진짜 생초보였을 때 동네 지나가다가 문 앞에 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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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내가 가르친 뛰어난 사회사업가께서 들려 주신 이야기: "제가 돕는 청소년이 너무 기특한 행동을 하기에, 저나 제 동료들이나 아주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되었어요. '우와~ 너 어떻게 이렇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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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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