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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빤스 바람으로 달려오셔서 짖으신 분의 변화 이야기
    상담 공부방/공감, 수용, 진정성 강의 후기 2022. 8. 1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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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만나는 대상자 중에 정말 큰 개가 짖듯이 왕왕거리면서 짓는 사람들 있잖아요. (중략) 그 분이 전화하셔서  “(큰소리로) 당장 우리 집에 와서 내 얘기를 들어!” 이러셨거든요. “(큰소리로) 어제 나랑 살던 사람이 죽었어. 근데 왜 우리 집에 아무도 안 와 봐?!” 이렇게 얘기를 하셨거든요. 저는 약간 그런 식으로 나오면, '오케이! 그거 원하시냐? 그럼 내가 가겠다' 이렇게 말해요. 그래도 혼자는 못 가니까 행정복지센터에 연락해서 함께 갔어요.

    처음에 들어가는 순서대로 앉았는데,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제일 앞에 앉았고요, 중간에 제가 앉았고, 그 뒤에 또 행정복지센터에 팀장님이 앉았어요. 그랬더니 이 분이 행정복지센터 직원한테 왕왕 짖으셨어요. 본인이 평상시에 행정복지센터에 갖고 있던 불편함을 말씀하시면서, 진짜로 짖으시더라고요. 그런데, 자꾸 직원이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그거는 이거고 그거는 이거고 자꾸 설명을 해 주려고 하길래, 제가 '오늘은 그냥 좀 들어주자'고 말했어요.

    그래서 이 분이 한동안 본인이 짖고 싶은 만큼 실컷 짖으셨어요. 진짜 논리에도 안 맞아요. 진짜 본인 위주로 생각하시는 분이라서 직원이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안 먹히는 상태였거든요. 어쨌든 이 분이 행정복지센터 신규 직원한테 일단 막 짖었어요. 그 다음 타자가 중간에 앉아 있었던 저였거든요. 이 분이 저한테 “너희 왜 왔어?” 이러시더라구요. “선생님께서 전화하셔서 저한테 오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선생님 얘기 들으러 왔죠” 이러니까, “오케이 기억났어!” 그러면서 전날 부인이 사망한 이야기를 쭉 하셨어요.

    그 얘기를 한 40분 하셨는데, 이분이 그 얘기를 하면서 막 울고 짜고, 망자하고 있었던 그런 자잘한 추억 같은 거를 충분히 이야기 하셨어요. 그 다음에, “오케이 니랑은 얘기가 끝났어. 내 하고 싶은 얘기는 했어” 이러니까, 세 번째 행정복지센터 팀장님이 있었잖아요. 팀징님에게는 할 얘기가 없는 거예요. 동에 대한 불만은 미리 얘기했으니까요. 대신 하신 말씀이, 부인이 남긴 짐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저거를 빨리 치우고 싶다. 저게 자꾸 눈앞에 보여서 너무 힘들다. 근데 치워주면 고맙겠지만, 지금 날씨가 너무 더우니 장마 끝나고 8월 중순에 시원할 때 치워달라’고 이러셨어요. 그래서 ‘오케이 그렇게 해 드리겠다. 8월 중순 이후에 천천히 진행하겠다’ 이랬거든요.

    그런데, 날짜가 바뀌어서 주말이 지나고 난 다음에 행정복지센터에서 이 분을 전혀 모르는 직원이 전화 통화하면서 이 분과 대판 싸운 거예요. 이 새끼 저 새끼 저 새끼 그러고 싸우니까 이 분이 정말 화가 나셨나 봐요. 팬티에 런닝만 입고 시청에 찾아오셔서 또 40분 동안 막 짖으시는 거에요. 그런데 사람이 계속 짖기만 할 순 없잖아요. 한동안 실컷 짖으신 후에 기력이 빠지시니까, “정리해서 나한테 어떻게 할 건지 얘기를 해 줘”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언제까지 우리는 답변을 드릴 거고,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랬더니 “오케이! 그날까지 안 하면 내가 OO시청 OOOO과 불싸질러 버릴 거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분은 마당이랑 집 안 곳곳에 위치한 동거하던 사람의 물건을 보면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를 너무 받고 계셨던 거예요. 저는 이분이 하도 왕왕 짖고 불만을 제기하고 이러시는 분이라서 치울 때도 그러실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 현장에 저 가고 청소업체 사람 두 명 오고 나중에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직원들이 왔어요. 그래서 함께 치워주니까 이 분이 다 끝나고 갈 때 '정말 고맙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시청에 오실 때는, 그냥 오신 적이 없었거든요. 술 취해가지고 와서 왕왕 짖던 분이신데, 정리를 하자고 약속 시간 정해놓고 하니까 멀끔한 모습으로 술 안 드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거,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물 쓰레기 꺼내서 봉투에 담고, 저희는 마당이랑 그 방에 있는 짐 중에서 이건 버려야 되는지 안 버려야 하는지 물어 보면서 행정복지센터 직원하고 저하고 함께 하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이분이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저희가 다 정리를 하니까 이 분이 마당 청소를 하기 시작하는데, 실상은 엄청 깨끗하게 사시는 분이셨던 것 같아요. 돌아가신 분이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사서 막 재고 계시는 분이었고 심각한 우울증 상태였거든요. 그런 분하고 살다 보니까 이 분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컸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분이 왕왕 짖으시는 게 같이 살고 있는 분한테 표현을 못하니까 술을 먹고 용기가 생겨서 하셨는데, 실상은 이 분이 그런 분은 아닌 것 같은 거에요. 하루 아침에 왕왕 짖던 사람이 이렇게 수그러드셨으니까요. 

    사실, 언제 언제 다시 한 번 터질까 싶어서 되게 조마조마 했거든요. 근데 한 달 동안 술도 안 드셨고요, 제가 되는 건 확실하게 된다고 얘기를 하고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딱 얘기하고, 저 보통 어르신, 할매, 그러면서 이렇게 편하게 얘기 다 하는데 이 분한테는 진짜 정중하게 선생님이라고 딱 존칭 써 드리고 그러면서 이제 치우면서 제가 뭔 이야기를 드렸냐면,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내일 저한테 우리 집에서 황금돼지 없어졌다고 연락하지 않으시겠지요?" 이랬더니, 이 분이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근데 그 다음 날 다시 안내를 하기 위해서 갔는데 이분이 '고맙다'고 말씀하신 거에요.

    보통 읍면동에서 이렇게 민원 넣고 왕왕 짖고 막 불만 제기하고 이러면, 직원들이 설득하거나 달래려고 한단 말이에요.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전 그 얘기 안 했거든요. 확실하게 될 만한 건 된다고 얘기를 하고 안 될 만한 건 혹시나 모르니까 아예 안 된다고 말하고, 그 다음에 또 알아보고, 실제로 알아봤는데 정말 안 되더라고 확실하게 말씀을 드려요. 초창기에 이 분을 대상자로 이제 선정하는 회의를 할 때, 도저히 잘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안 변할 것 같기도 하고, 자꾸 요구만 하니까 그랬는데, 한 달 동안 지켜보니까 대화가 되고 뭔가 좀 진행이 될 것 같아서 했더니, 되더라고요.


    이상은, 수 년 전에 어떤 동료에게서 다른 분이 개입하셨던 놀라운 변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내용이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강점관점으로 사례관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깊이 스며들어 있다. 대단히 다양한 관점에서 따져 보고 해석할 수 있는 깊은 이야기이지만, 오늘은 초점을 좁혀서 '설득 아닌 경청/공감'에 대해서만 생각해 본다. 

     

    마지막 단락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보통 읍면동에서 이렇게 민원 넣고 왕왕 짖고 막 불만 제기하고 이러면, 직원들이 설득하거나 달래려고 한단 말이에요." 여기 두 가지 단어가 등장한다. '설득'과 '(우선) 달래기.' 설득은 이성적인 작업에 가깝고, '(우선) 달래기'는 정서적인 작업에 가깝다.

     

    먼저 설득. 위 이야기에 등장하시는 분은 빤스에 런닝 셔츠만 입고 시청으로 달려 오셨다. 어떤 경우에 사람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분노든 불안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감정이든, 감정이 머리 끝까지 차고도 넘쳐서 완전히 폭발하는 경우일 터. 사람들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복장다. (하긴, 내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사람들 시선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런데 시청 직원들은 설득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감정적인 상태로 달려온 사람에게 극단적으로 이성적인 언어를 사용하면, 과연 이성적인 언어가 제대로 작동을 할까? (당연히)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성적인 언어가 '당신 말을 안 듣겠다'는 벽처럼 느껴져서, 민원인의 감정이 더욱 활활 불타 오를 것이다. 

     

    다음으로 (우선) 달래기. '죄송하다' 혹은 '알아보고 연락드리겠다' 이런 말이다. 사실인가? 정말 죄송하다고 느끼는가? 혹은 정말로 제대로 알아보고 연락 드릴 생각으로 하는 말인가? 우선 빨리 불을 꺼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상태에서 내뱉는 '죄송하다'는 말이, 불타고 있는 상대방 마음에 가서 닿을까? 상당히 피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던지는 말로 느껴지지 않을까? 상대는 로봇이 아니다. 아무리 살기가 팍팍하고 여유가 없어도 사람이다. 이런 저런 감정, 다 느끼는 사람이다. 혹은,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다'는 말은 어떤가. 말은 내용보다 뉘앙스, 즉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말 역시, 우선 빨리 불부터 꺼야겠다는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말. 상대는 다 느낀다. 

     

    좀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불타오르고 있는 사람을 아주 효율적으로, 식히는 방법은 따로 없다. (최면 대가들은 순식간에 마음 속 불을 끌 수 있다고 말하는데, 최면 같은 방법은 가능하기는 하지만 다소 비윤리적이다.) 위 사례에서처럼, 40분 동안 그냥 들어 드리는 수밖에. 우리가 무의식중에 선택하는 설득이나 (우선)달래기 방법은 '이성적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럴 듯 하지만, 순간적으로 감정적인 세계로 이주하신 분에게는 전혀 그럴 듯 하지 않다. 그러므로 한동안은(지치실 때까지!) 아무리 이상한 이야기라도 하시도록 놓아 둬야 한다. 화재 뒷처리는 불이 꺼진 후에 해야 한다.

     

    그런데 위 이야기에서 제일 놀라운 대목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빤스 바람으로 시청으로 달려온 어르신'께서, 집안을 치우고 있는 사회사업가가 던진 가벼운 농담에 '아니, 날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냐?'고 정색하며 말씀하실 정도로 '정상적인' 분이셨다는 사실. 이런 변화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분한테는 진짜 정중하게 선생님이라고 딱 존칭 써 드렸다'고 말하는 담당 사회사업가의 '정중한' 태도 아닐까? 이 정도로 상황 파악이 정확한 분이시라면, '빤스 어르신'께서 시청으로 달려오셔서 왕왕 짖으실 때도, '(우선) 달래기'가 아니라 '진지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셨을까? 그래서 이 어르신께서는 자신에게 계속 '정중하게 대하는' 사회사업가 태도를 감지하시고, 본인도 (이 모습이 원래 모습일 텐데) '정중하게' 응대하신 게 아닐까.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원리를 정리해 보자: (1) 상대가 감정 때문에 활활 불 타오르고 있을 때는 '설득' 같은 이성적인 방법이나 '(우선) 달래기' 같은 진정성 없는 정서적인 방법은 가급적이면 사용하지 말자. 이는 나중에 상대 마음에 불이 잦아들거나 꺼졌을 때(이성적으로 대화가 가능할 때) 사용하라. (2) '설득'이나 '(우선) 달래기' 전략을 내려 놓고 상대방 말을 경청할 때는 '정중한'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냥 불을 끄기 위해서 들으면 '(우선) 달래기' 전략과 같다. 표면적으로 들리는 공격적인 말에 초점을 맞추며 마음에 상처를 입을 필요는 없지만, 상대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 들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공격적인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상대방이 원하는 그림을 살펴야 한다. 어째서 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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