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무엇을 하고 싶냐?' 질문이 가진 힘!
    지식 공유하기(해결중심모델)/해결중심 고급 테크닉 2022. 9. 17. 10:37
    728x90
    반응형

    열일곱 살이었던 20XX년 여름, 나는 수업 시간에 뛰쳐나가 교무실에서 울고 말았다. 7년간 숨겨왔던 가정폭력 사실을 담임 선생님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그리고 경찰을 통해 어느 청소년 쉼터에 입소했다. 당시에 경찰관에게 왜 쉼터에 가고 싶은지 이야기하면서 죄책감을 크게 느꼈다. 내가 사실을 말하면 엄마가 폭력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힘들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쉼터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나를 24시간 감시하던 시선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살맛이 났다. 하지만 일 주일 후 엄마가 날 데리러 오셨을 때 집으로 돌아오라는 제안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고, 내 첫 쉼터 생활은 끝나게 된다.

    두 번째로 쉼터에 입소했을 때는 다음 해 O월이었다. 몇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학교생활을 좋아했지만 엄마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라고 압박했고, 갈등 끝에 결국 자퇴했다. 그 후로는 집에 갇혀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온갖 집안 일을 하며 남는 시간에는 강제로 공부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나는 부모님께 '영상을 배우고 싶다',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지만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 어떻게 살아야 내가 꿈꾸는 인생을 살 수 있을지 몰랐지만 이렇게 살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그래서 집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생각으로 가출, 당시 집에서 가까운 OO 쉼터에 입소하게 되었다.

    쉼터에 온 첫날, 나는 너무 두려웠다. 혹시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엄마가 보복할까봐 두려웠고, 반대로 집에 안돌아가면 다시는 동생을 보지 못할까봐 두려웠으며, 조금만 더 참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괜한 짓을 벌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다. 쉼터 선생님께서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엄마에게 알리셨을 때가 첫 고비였다. 집을 나오고도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엄마는 내 입소 사실을 알고는 계셨지만, 사실 나는 쉼터 선생님과 엄마가 통화시에 나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실지 불안했다. 다행히 담당 선생님은 통화 전에는 엄마와 어떤 대화를 할 것인지, 통화 후에는 실제로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알려주시고 다독여주셨다.

    첫 상담에서 쉼터 선생님은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 보셨고,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많았지만 아직 너무 막연했다. 쉼터 선생님의 권유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검정고시 준비부터 시작했다. 검정고시가 급하지는 않았지만, 매번 수업에 잘 참석했고 어딘가 소속되어 다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후로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가죽 공예와 미니어처, 메타버스 가상공간 제작을 배우고, 드론 조종자 1종 면허, 유럽 바리스타 자격증, ITQ자격증을 취득했다.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으나 못했던 레진 공예도 개별활동 지원을 받아 할 수 있었다. 용돈을 모아 재료를 더 사서 정말 마음껏 만들었다. 재료가 쌓일수록, 만든 작품이 늘어날수록 행복했다.

    겨울에 입소해 어느덧 여름이 되었다. 나는 쉼터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열고 과거에 경험한 가정폭력에 대해서 자세히 털어놓았다. 쉼터 선생님들께서 엄마를 가정폭력 건으로 신고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거란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온갖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다. 엄마를 신고하다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지키던 신념이 깨진 기분이었다. 진술서를 자세히 쓰며 과거 내 모습을 돌이켜 봤다. 열세 살 나는 매일 팔다리가 묶인 채 잠이 들었다. 열네 살 나는 머리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고, 열다섯 살 나는 자정까지 현관 앞에 서 있어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이 아팠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비참했다. 엄마가 두려웠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누군가 쫓아와서 날 없애 버릴 것 같았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에 대해 쉼터 담당 선생님, 그리고 쉼터에서 연결해 주셔서 만난 개인 상담 선생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전부터 상담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컸지만, 만남과 대화가 계속될수록 좀 더 차분하게 내 상황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형사님을 만났다.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집에 있을 어린 동생도 생각났다. 엄마가 처벌받지 않기를 바랐다. 신고 사실을 안 엄마는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이전에 나에게 한 온갖 말과 행동은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릴 용기가 생겼다. 우여곡절 끝에 재판이 끝나자, 비로소 내가 이렇게 힘들고 아팠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훌훌 털어낸 것 같아 마음이 후련했다.

    그 후에 사회적 기업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영상 제작 수업을 끝까지 들었다. 9개월 동안 진행되는 수업을 들으며 내 모습을 기록했다. 예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내 모습을 많이 발견했다. 그 모습 하나하나에 애정이 갔다. 이렇게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점차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나는 영상, 광고, 디자인 분야로 진로를 정했다. 그런데 내 학습 진도는 학교를 그만 둔 열 일곱에 머물러 있는데 내가 이미 열 아홉살이 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잘 하고 싶은 욕심이 마음에 가득해서 조바심이 났다. 쉼터 선생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문제집을 지원받고 봉사자 수학 선생님을 만나 과외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입시컨설팅 선생님을 만나 나에게 맞는 학교도 찾아갔다. 예전보다 훨씬 바쁘고 힘들었지만 이 모든 기회가 감사하다.

    쉼터에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도 집에서 지내기가 힘들어서 나왔다. 맞기 싫었고,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는 이유로 혼나기도 싫었고, 그냥 친구랑 평범하게 떡볶이 먹으러 다니고 싶었다. 나에게 집이란 철조망 같았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지만 항상 나를 아프게 하고 마음대로 오가지도 못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쉼터에 오고 드디어 나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갈 둥지가 생겼다. 이곳에선 내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다. 밖에 다녀오면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들과 더 가까워졌고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쉼터에 오면서 이렇게까지 마음의 안정을 얻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서 내가 웃음이 많아지고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현재 나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에 목표한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과 논술고사를 준비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쉼터 야간 근무자 선생님께서 비빔밥을 만들어 주시고 점심에는 조리사 이모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 독서실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같이 신나게 놀 친구들이 있다.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다. 일 년에 두 번 가는 캠프도, 쉼터 근처로 떠나는 마실도 정말 신난다. 가끔 통금 시간을 지켜야 할 때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내 인생에서 여기만큼 편한 곳이 없다.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냉난방도 잘해 주고 밥도 정말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고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날마다 변화해가는 내 미래가 정말 기대된다. 이상으로 쉼터에서 생활해 온 내 이야기를 마친다. (언제나 저를 격려해주시는 OO쉼터 선생님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우수사례 공모전에 내기 위해서 쉼터 청소년이 직접 쓴 글이다.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웃으며 함께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적막(?)이 흘렀다. 지난 일이 머리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긴 시간 동안 묵묵히 잘 버텨온 아이들이 대견했다.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고 있다가 동료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모두 숨죽여 울고 있었다. 고마움, 대견함, 안쓰러움, 기대감 등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어떤 선생님응 아이들이 이 정도로 성숙하게 생각하는지 미처 몰랐다며 이 글을 출력해서 벽에 붙여놓고 혹시라도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오면 다시 읽어보겠다고 말씀하셨다.

    쉼터에서 청소년을 돕다보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것 같아서 힘이 쭉~ 빠지는 순간이 아주 가끔씩 온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함께 기억하기로 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절대로, 절대로 헛된 일이 아님을,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전혀 아니란 사실을. 아울러, 그 모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면서 우리 아이들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잊지 않기로 했다.  (OO청소년 쉼터 OOO 사회사업가)


    "우리 아이들 중 몇 명이 자기 삶에 대해서 글을 써서 청소년복지시설 우수사례 공모전에 냈거든요. 왠지 선생님께도 공유 드리면 감동이 배가 될 것 같아서요." 

     

    위 글은 OO 청소년 쉼터에서 생활해 온 청소년 당사자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마다하지 않으시는 OOO 사회사업가께서 쓰셨다. 며칠 전에 나에게 공유해 주시면서 읽어 보라고 권하셨다. 공유해 주신 글 네 편 모두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지만, 여기에 소개한 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OOO 사회사업가께서 써 주신 글도 짧지만 무척 강렬했다.  그런데 솔직히, 어떤 면에서는 흡족하지 않았다. 쉼터 선생님들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강점관점으로 접근하셨는지'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이 OO 쉼터에 입소해서 처음 들었던 질문은 ‘무엇을 하고 싶냐?’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우리가 사람을 도울 때 자주 사용하는 '무엇이 필요하냐?' 질문과 대단히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 질문에 담긴 관점을 기준으로 세심하게 평가한다면 굉장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무엇이 필요하냐?'는 질문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은 자신을 '상대에게 결핍되어 있는 뭔가를 (일방적으로) 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반면에, '무엇을 하고 싶냐?' 질문은 상대가 느끼는 결핍이 아니라 아니라, 앞으로 원하는 바를 채워갈 수 있는 가능성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은 자신을 '상대가 나아가는 방향을 따라 가면서 (필요한 경우) 도와 주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중심은 청소년이 '원하는 바'이고, 내가 도와 주는 행동은 부차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나는 OO 쉼터 선생님들께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보고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쉼터 선생님들께서 입소한 청소년에게 '무엇을 하고 싶냐?' 질문을 하시는지 이해한다. 우리들 생각 속에서 청소년 쉼터는 어떤 곳일까? 상처받은 피학대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곳? 맞다. 그래서 이름이 '쉼터'겠지. 하지만 OO 쉼터 선생님들께서는 청소년 쉼터를 단순히 보호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보호를 넘어서서, 청소년이 다시 걷고, 뛰고, 심지어 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신다. 선생님들께서 쉼터 입소 청소년을 다른 평범한 청소년처럼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가끔씩 보이는 공격적(?) 행동이나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감정기복은? 원치 않게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에게 이런 증상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 중요한 요소는 이런 증상으로 청소년을 바라보지 않으시는 선생님들의 관점이다.

     

    덧붙임: 사실은, 나도 위 청소년 글을 읽으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어리석은(?) 행동을 이어 오신 선생님들이나, 감당하기 힘든 온갖 일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견디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온 청소년이나, '손상된 피학대 청소년'이라는 견고한 관념을 당당하게 깨 부수고 계신 모습이 무척 존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청소년이 앞으로 어떤 삶을 이어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까지 겪은 일보다 더 크고 어려운 위험에 빠질 수도 있겠다. 말할 필요도 없이,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으니까. 다만, 소녀는 어느덧 커서 훌륭한 여성이 되었다. 더 이상 무력한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 여성에게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응원하고 싶다. 우리가 그녀를 믿고 조금만 도와 준다면, 눈앞에 새로 펼쳐진 낯선 길 위에서도 홀로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을 테니까.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50주 동안 이어질 강점관점실천 공부 자료 나눔 프로젝트

    내가 가르친 뛰어난 사회사업가께서 들려 주신 이야기: "제가 돕는 청소년이 너무 기특한 행동을 하기에, 저나 제 동료들이나 아주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되었어요. '우와~ 너 어떻게 이렇게 한

    empowering.tistory.com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강의/자문/상담 문의는?>
    강점관점실천연구소 이재원
    (010-8773-3989 / jaewonrhie@gmail.com)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