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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둘 수 없어요
    지식 공유하기(기타)/시네마 떼라피: 위안을 주는 영화 2022. 11. 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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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석권하고 있을 때 '조용히' 2등을 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조용한 희망' 이라는, 다소 재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 붙은 드라마다. 웬 가난한 싱글맘 이야기, 라고 하기에 흥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시험 삼아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았다가 완전히 빠져들어서, 마지막 회까지 단숨에 정주행하면서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최근 약 15년 사이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외국 드라마는 HBO 역사 초기에 제작된 극사실주의 형사 드라마, '와이어'였다. 하지만 '조용한 희망'을 보고 나서 가장 재미있는 외국 드라마가 바뀌어 버렸다.

    이유는? 첫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받을 수 밖에 없게 된)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국가로부터 사회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적나라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둘째,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처참한 현실을 충분히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그리면서도,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어디에 털나는 다소 민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가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참말로 많다. 어쩌면, 가난과 절망을 기본적으로 달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마음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사회복지사가 모든 어려움을 경험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일 첫 번째 노력으로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고 믿는다.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조용한 희망' 함께 읽기. 드라마 주요 장면을 함께 보고, 의미를 깊게 음미하는 글을 나눈다. 오늘은 제 3화 첫 번째 이야기.


    하우이(자원봉사 변호사): ‎하지만 정서적 학대는 ‎증명이 어려워요. ‎법적으로 우리 주에선 ‎가정 폭력으로 분류하지 않아요.

    데니즈(가정폭력 쉼터 사회복지사): 엉망진창이군. 

    알렉스: 전 가정 폭력 쉼터에 있는데, ‎거기선 정서적 학대는 가정 폭력이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법정에는 ‎아니라고 한다고요?

    하우이: ‎그래요. 

    알렉스: ‎그럼 전 망했네요. 

    하우이: ‎아뇨, 강력한 성격 증인을 ‎찾아야죠. ‎당신 입장에서 ‎말해 줄 사람 있나요?

    알렉스: ‎(엄마를 떠올리며) 그럼요. 

    하우이: ‎아이 아버지 집에서 ‎가까운 거주지는 구했나요?
    ‎알렉스: 내일 임시 주거지로 옮길 거예요. 
    ‎하우이: 좋아요. ‎내일 오후 7시까지 법원 서기한테 이 서류 내요

    알렉스: ‎내일 7시까지 이걸 다 작성하고 ‎일도 하고 엄마 교실도 가라고요?

     

    <해설> 

    알렉스는 법정 싸움을 걸어온 션에게서 딸 매디를 합법적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데니즈(가정폭력 쉼터 사회복지사)가 소개해 준 자원봉사 변호사, 하우디(익명 변호사)를 만나서 법률 상담을 받는다. 그는 원래 자산 변호사이지만,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가정폭력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생존 여성을 돕고 있다. 알렉스 케이스에서 핵심은 알렉스가 션에게 가정폭력을 입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업. 하우이는 알렉스가 들으면 기가 막힐 말을 전해 준다. 즉, 알렉스가 살고 있는 주에서는 (신체적인 접촉이 없는) 정서적 학대는 법에서 인정하지 않는단다. 알렉스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상황이다. 그나마 가능한 전략은, 알렉스가 매디를 키울 만큼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1) 사람과 (2) 서류를 준비하는 방법. 


    하우이: ‎네, 보충 영양 지원 프로그램 ‎등록 증거를 법원에 내야 해요. ‎푸드 스탬프 바우처랑 복지 카드죠. ‎직접 가서 신청해야 해요. ‎(서류가 알렉스에게 떨어진다.) 줄이 기니까 ‎일찍 가요, 거주 증명이랑 ‎소득 관련 자료 챙기고요. ‎(서류가 알렉스에게 떨어진다.) 정착 상담 봉사 기관 이름도 혹시 해당되면요. ‎법원에 경제적으로 ‎안정됐다는 증거를 보여줘야 해요. ‎(서류가 알렉스에게 떨어진다.) 합법적이고 수익이 있는 회사에 ‎고용되었다는 증거… ‎급여 명세서, 은행 계좌, ‎신용 카드 사본이 필요하고, ‎임대료, 공과금, 지속적인 의료비... (서류가 알렉스에게 떨어진다.) ‎취업 지원 보육 프로그램을 ‎이용할 계획이면 빈곤 가정 일시 지원 프로그램 ‎취업 지원 조건에 해당하는지 보고 ‎해당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해요. ‎저소득 가구 에너지 지원 ‎프로그램도요, 증명해야 해요. ‎친척, 친구, 응급 연락처, 이름, 전화번호, 주소, ‎당신 성격에 대한 서면 증언, 당신 편에서 얘기해 줄 사람, 당신이 훌륭한 어머니라는 걸... 

    관공서 안내 모니터: ‎"수속 중 - 컴퓨터 고장!"
    ‎알렉스: 빌어먹을!

     

    <해설> 

    영상으로는 한 방에 이해가 되지만, 글로는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장면이다. 그래도 시도해 본다면, 사운드 면에서는 하우이 변호사가 알렉스에게 법정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서류 목록을 안내해 주는 소리가 나오고, 시각적으로는 변호사가 조언해준 대로 관공서에 일일이 좇아 다니며 서류를 준비하는 알렉스 모습이 나오는데... 마치 누가 공중에서 알렉스에게 서류 양식을 하늘에서 날리는 장면이 연출된다.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서 서류를 떼어 본 사람이라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내가 최소한 너희 은행 돈을 떼어 먹고 도망갈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다양한 서류를 완비해서 내야 하는지 말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행정 서비스가 바로바로 빨리빨리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릴 텐데, 알렉스처럼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다면 정말로 하늘에서 눈이 보스보슬 내리는 듯 서류가 눈앞에 떨어질 것만 같다.


    알렉스: (청소업 선배인 키아라와 함께 빈 집에 들어서다가) 맙소사, 무슨 냄새죠?
    키아라: ‎오물, 불법 거주자나 ‎퇴거 명령 받은 세입자가 ‎물이랑 전기가 끊긴 뒤에도 살면서 ‎화장실도 쓴 거죠. ‎망할 놈의 자식들! 
    알렉스: (힘들어 하며) 토할 것 같아요. 
    키아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으로 숨 쉬어요. ‎(우리) ‎일을 나눠요. ‎난 먼지를 잘 터니까 침실을 맡죠. ‎(당신은) 부엌이랑 화장실을 맡아요. 
    알렉스: 왜 나만 나쁜 거 해요?

    키아라: ‎신참이니까.


    알렉스: (화장실을 청소하다가, 쥐 사체를 발견하고 입을 가리며 밖으로 뛰어 나가 난간에서 구토한다) 우엑...

    키아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괜찮아요, 신참? ‎못 참겠나 봐요? 

    알렉스: (계단에 앉아서) ‎못 할 것 같아요. 

    키아라: 그럼 관둬요, 욜란다한테 말하죠. 

    알렉스: ‎관둘 수 없어요. 
    키아라: ‎그럼 관두지 마요, 어쨌든 ‎변기가 저절로 깨끗해지진 않아요. 

     

    <해설> 

    하우이 변호사에게 법률상담을 받던 알렉스는, 자신이 너무나도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럼 전 망했네요" 라고 말한다. 알렉스가 살고 있는 주에서는 '정서적 학대'는 법적으로 '가정 폭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가정폭력을 입었는데, 입건 기록도 없고, 증거나 증인도 없으며, 법적인 현실 때문에 가정폭력 생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가 막히는 상황. 전형적인 사각지대에 서 있게 된 상황. 그런데 어쩌면 알렉스에게 진짜로 문제가 되는 '그럼 전 망했네요-상황'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장면처럼, 남이 버리고 간 집에 가서 코를 막아도 스며드는 악취를 참으며 화장실에 켜켜이 쌓인 X을 치워야 하는 상황 말이다. 알렉스는 어렸다. 너무 약했다. 진짜 세상을 몰랐다. 

    변기를 청소하다가 죽어 있는 쥐를 집어 들고 경악한 알렉스는 밖으로 뛰어 나가서 난간에 기대어서 구토한다. 옆에 서 있던 청소부 선배, 키아라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느긋한 표정으로 (아마도 처음에 다 경험한 일이겠지) "괜찮아요, 신참? 못 참겠나 봐요?" 라고 말한다. 맞아요! 알렉스는 한숨을 쉬며 "못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지만, 아니다. 관둘 수는 없다. 싫어도 해야 한다. 매디를 지키고, 자기 삶을 지키고, 이 험한 세상에서 책임을 지면서 살아가려면, 일을 해야 한다. 포기할 순 없다. (아마도 이런 갈등 상황도 먼저 경험했을 것 같은) 키아라는 여전히 느긋한 표정으로 "그럼 관두지 마요, 어쨌든 변기가 저절로 깨끗해지진 않아요" 라고 (알렉스 처지에서는) 약간 얄밉게 말하고 '먼지를 털러' 집 안으로 들어간다. 남겨진 알렉스는 영혼이 털린 듯한 모습. 

     

    <사회복지사 필견 드라마: "조용한 희망" 리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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