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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인 쓰레기, 넌 질거야
    지식 공유하기(기타)/시네마 떼라피: 위안을 주는 영화 2022. 11. 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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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서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석권하고 있을 때 '조용히' 2등을 한 드라마가 있다. 바로 '조용한 희망' 이라는, 다소 재미 없게 느껴지기도 하는 제목이 붙은 드라마다. 웬 가난한 싱글맘 이야기, 라고 하기에 흥미를 두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시험 삼아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았다가 완전히 빠져들어서, 마지막 회까지 단숨에 정주행하면서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최근 약 15년 사이에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외국 드라마는 HBO 역사 초기에 제작된 극사실주의 형사 드라마, '와이어'였다. 하지만 '조용한 희망'을 보고 나서 가장 재미있는 외국 드라마가 바뀌어 버렸다.

    이유는? 첫째,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는(받을 수 밖에 없게 된)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 국가로부터 사회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적나라하게'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둘째,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처참한 현실을 충분히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그리면서도,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어디에 털나는 다소 민망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셋째, 사회복지사가 현장에서 만나는 모든 (비자발적인) 클라이언트의 속마음을 깊이 성찰해 볼 수 있다.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참말로 많다. 어쩌면, 가난과 절망을 기본적으로 달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마음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기가 힘들다. 사회복지사가 모든 어려움을 경험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제일 첫 번째 노력으로 이 드라마를 꼭 봐야 한다고 믿는다. 보면서 충분히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조용한 희망' 함께 읽기. 드라마 주요 장면을 함께 보고, 의미를 깊게 음미하는 글을 나눈다. 오늘은 제 3화 두 번째 이야기.


    알렉스: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는다.)

    아무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알렉스에게서 냄새가 심하게 나는지 코를 막고 다른 자리로 옮겨간다.)

    알렉스: (그 사람 반응을 보고 자기 옷에 코를 뭍고 냄새가 나는지 확인해 본다. 냄새가 확실히 난다!) 

    알렉스: (변호사가 알려 준 서류 양식을 들여다 보다가 깜짝 놀란다.)

    서류: (원래 인쇄되어 있던 서류 양식 제목이 알렉스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네 엄마. 보조금만 축내는 년. 아무도 관심 없어. 나가 죽어. 백인 쓰레기. 꼴 좋다, 이건 약과야. 넌 질 거야. 넌 질 거야. 넌 질거야... 

     

    <해설> 

    하루 종일 불친절한 선배 키아라와 함께 남이 버려두고 간 집을 청소하면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구토를 참아가면서 X통을 청소하면서, 알렉스에게 그 모든 오물 냄새가 배이지 않을 수가 없다. (차가 없어서) 청소 도구를 바리바리 짊어지고 버스를 탔으나, 버스에 오물 냄새도 함께 탔다.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 있던 무명씨 아주머니가 코를 막고 다른 자리로 넘어가고, 알렉스는 이 굴욕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조금이라도 빨리 딸 매디를 데려 오려면 어쩔 수 없다. 매일 매일 오물 냄새 같이 지독한 현실을 견디면서 나아갈 수밖에. 

    변호사가 알려 주고, 하루 종일 관공서에서 줄을 서며 발급받은 서류 뭉치에 얼굴을 박고 한 장씩 넘겨보는데... 뭔가 이상하다. 서류 양식 제목이 자신을 향한 욕설처럼 보인다: 보조금만 축내는 년. 나가 죽어. 백인 쓰레기. 여러 가지 상황상 어쩔 수 없이 국가 지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알렉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이렇게 완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이 오면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든다. 더구나 바로 조금 전에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진짜로 냄새나는 쓰레기'로 취급받지 않았나. 아이고... 


    알렉스: (엄마인 폴라와 함께, 임시거주시설에 도착한다.) 맞아, 오늘 그런 날이야. 안녕하세요? 루이스죠? 

    루이스: (알렉스와 악수한다.) 

    폴라: 안녕하세요, 루이스? 

    루이스: 네, 이쪽이에요. 게스트는 알아두세요. 여긴 긴급 쉼터지, 집이 아닙니다. 매주 급여 명세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수입이나 자녀 양육비에 변화가 있으면 즉시 보고해야 합니다. 방문객은 묵고 갈 수 없습니다. 무작위로 소변 분석을 요청받을 수도 있습니다. 

    알렉스: 소변 검사해야 한다고요? 

    루이스: 주민 절반은 최근 노숙자가 됐고, 나머지 절반은 최근에 출소했어요. 그래서 규정상 약물이나 술은 절대 금지예요. 

    알렉스: 여기 사회 복귀 훈련 시설이군요? 가석방 중인 사람도 있어요? 

    루이스: 많은 경우가 있죠. 정부 보조 주택이 여기뿐이라서요. 여기랑 여기 서명해요. 

    알렉스: (말 없이 엄마 폴라와 함께 베란다로 나간다.)

    폴라: (루이스에게) 잠시만요. (알렉스에게) 진짜 괜찮네. 탄탄하게 지었다. 

    알렉스: 전과자 옆집으로 매디를 데려올 순 없어. 

    폴라: 무슨 소리야? 분위기만 밝게 꾸미면 돼. 내가 도와 줄게. 괜찮을 거야. 실내용 식물도 키우고. 매디 침대 위에 벽화도 그려주고. 원숭이랑 해바라기! 환하게 꾸미기만 하면 진짜 여자애 집이 될 거야. 괜찮을 거야. 

     

    <해설> 

    알렉스는 딸 매디를 독립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주장에 법적/제도적 근거를 대야 한다. 실질적 노숙인이기 때문에, 거주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회복지사 조디와 데니스에게 도움을 받아 소개 받은 정부 보조 임시거주시설을 돌아본다. 친절하고 책임감 강한 루이스와 함께 앞으로 묵게 될 방을 방문하는데... 알고 보니, '이곳 주민 중 절반은 최근 노숙자가 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최근에 출소한 전과자'였다. 말하자면, (철저하게 알렉스 관점에서 보면) 이곳은 감옥에 다녀온 범죄자가 득실득실대는, 대단히 위험한 곳. 엄마인 알렉스는 바로 생각한다. '과연 여기에서 안심하면서 딸 매디와 함께 살 수 있을까?' 

    당연히 대답은 '아니올시다'였지만, 역시... 대안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알렉스: (남자친구 션이 연락 없이 잠적하자, 찾아 나선다. 함께 자주 가던 숲 근처 호수에서 션을 발견한다.) 여기 혼자 찌부러져서는 뭐 하는 거야?

    션: 숨어 있는 거야. 저리 가. 

    알렉스: 일어날 수 있어? 

    션: 난 괜찮아. 코카인 기운 떨어지면 엉망이 되겠지만. 

    알렉스: 차 열쇠 줘. 망할 열쇠 내놔. 집까지 데려다줄게. 

    션: 난 엄마랑은 달라. 

    알렉스: 그럼, 네 엄마처럼 구는 거 관둬. 

    션: 여기 바다 유리가 왜 이렇게 많은지 알아? 전에 쓰레기장이었거든. 옛날에. 바다는 서서히 쓰레기를 보물로 바꾸지. 왜 이젠 날 안 좋아해?  

    알렉스: 네가 변호사를 써서 판사한테 애를 빼앗기도록 만들었잖아. 

    션: 아니, 그 전에 오래 전부터 날 그만 좋아했어. 왜야?

    알렉스: (지금처럼 약에) 취했을 때 데리러 올 만큼은 좋아하는데. 

    션: 왜지? 

    알렉스: 매디의 아빠니까. 

    션: 그게 유일한 이유야? 전엔 즐거웠는데. 함께 즐거워했잖아. 종종 여기 와서 함께 웃었지. 이제는 그냥... '넌 개자식이야, 션.' 

    알렉스: 항상 즐거울 수는 없어. 매디를 키우는 데는 큰 책임이 필요해. 

    션: 난 바다 유리야. 쓰레기가 아니라고. 시간을 좀 줘. 난 아니야. 

    알렉스: 알았어. 이제 가자. 

    션: (호수를 바라보며) 보물을 더 만들어, 파도야. (돌멩이를 호수에 던지다가 약 기운 때문에 넘어진다.)

     

    <해설> 

    연락 없이 잠적한 자신을 옹케 찾아온 알렉스에게 션은 "나는 쓰레기가 아니야" 라고 말한다. 아니다. 사실은 쓰레기다. 알콜 중독, 코카인 중독, 가정 폭력... 모두 션이 쓰레기라는 빼박 증거. 그런데도 션은 자신이 바다 유리(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유리 조각이 바닷물에 깎이면 보석처럼 변함)라고 강변한다. 코카인에 취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지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는데? 

    사실, 션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구석이 있다. 가난한 동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 션의 아버지도 현실에 부딪혀서 술과 약물, 그리고 폭력 뒤로 숨은 불쌍한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한 폭력, 특히 신체적 폭력 뿐만 아니라 정서적 폭력도 우리는 인정하거나 수용할 수는 없지만, 션이나 션 아버지가 느꼈을 좌절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절망감과 좌절감이 세대간에 전승되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는 이해해 줄 만 하다. 


    션: (법원 앞에서 알렉스를 만나서, 어색한 듯) 안녕. 

    알렉스: 안녕. 

    션: 방금 회의를 했거든. 어제는 미안했어. 고마웠어. 

    알렉스: 그래. 

    션: 긴급 청원인가 뭔가 하는 거 접을 거야. 완전 양육권은 됐어. 원하기 하지만 24시간 내내 매디 보면서 맨정신으론 못 있어. 빌어먹을 엄마랑 같이 살면서 바닥을 보이는 것도 못할 짓이고. 그리고... 매디가 널 보고 싶어 해. 

    알렉스: 그래? 

    션: '엄마, 엄마, 엄마', 내내 그래. '엄마 어딨어? 엄마 어딨어?' 난 이러지. '젠장, 내가 알겠냐?' 하지만 이렇게 하려면 공동 양육권으로 해. 내 애도 되는 거야. 

    알렉스: 그래. 알았어. 방법을 찾으면 돼. 

    션: 또 애 태우고 교통사고 나면 다시 법정에 설 거야. 

    알렉스: 알았어. 나도 마찬가지야. 또 애 맡은 동안 취하면. 

    션: 됐네, 그럼. 

    알렉스: 됐네, 그럼. 언제 내가 다시 데려와도 돼? 

     

    <해설>

    결국, 션은 법정 다툼을 철회한다. 알렉스처럼, 션도 아직 너무나도 어린 매디를 24시간 내내 돌볼 환경이 전혀 안 된다. 긴급 청원에 대한 법적 처분이 내려지는 날, 두 사람은 법원 앞에서 만나서 서로 한 걸음씩 물러서서 합의한다. 두 사람 모두, 상황이 어찌 되었든지, 부모로서 가진 약점이 무엇이고 얼마나 심각하든지, 그래도 매디를 깊이 사랑하고 걱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렉스 앞날이 밝게 보이진 않는다. 정말 최악인 상황에서 슬쩍 벗어날을 뿐, 두 번째 최악, 세 번째 최악이 계속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 따윈 조금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터널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글쎄... 이래서 이 드라마 제목이 '조용한 희망'일까? 희망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아서?

     

    <사회복지사 필견 드라마: "조용한 희망" 리뷰 목차> 

     

    사회복지사 필견 드라마: "조용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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