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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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의 육아일기(D+185)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8. 13. 07:35
아이 눈이 점점 더 초롱초롱 빛난다. 꺄르르 꺄르르 웃는 소리도 점점 더 커진다. 도톰한 카스테라 빵 같은 팔뚝도 점점 더 굵어진다. 허리 힘이 세져서 앉아 있는 시간도 점점 더 길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점점 더 무거워진다. (미안하다, 딸아. 그래도 아빠는 너를 깃털처럼 가볍게 느낀단다.) 세상에 있는 모든 다른 직업처럼, 내가 하는 일에도 좋은 점, 안 좋은 점이 있지만, 프리랜서로 살아서 제일 좋은 점은, 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오전 오후 어린이집에 내가 데려가고 데려 온다. 어깨띠를 두르고 어린이집에 가는 도중에 아이가 고개를 들어서 아빠 얼굴을 직접 올려다 보기라도 하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숨이 멎을 것 같다. 우리 시대 아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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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의 육아 일기(D+175)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8. 4. 19:02
우리 딸 이름은 '봄'이다.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있을 때 아이 태명은 '기적'이었다. 무려 48세 아빠와 47세 엄마 사이에서, 그것도 자연적으로 온 생명이었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이름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원래는 '기적'이라는 이름을 주민등록에도 올릴 생각이었지만, 혹시라도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봐, 조금 더 일반적인 이름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나는 곰곰 생각해 보다가, '기적'이라는 이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이 우리에게 이 아이가 준 의미를 품은 이름으로, '봄'을 선택했다. 그러면, 왜 '봄'인가? 아내가 아이를 임신한 시기가 늦봄(5월)이었다. 잠시였지만 매서운 겨울처럼 느껴진 시험관 아기 시술을 두 번 실패하고 나서, 학창시절 봄방학 때처럼 잠시 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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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D+166)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7. 25. 07:23
간만에 아내와 단 둘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 번역하면 '잃어버린 딸', 저명한 배우 매기 질렌할이 이탈리나 나폴리 출신 작가인 엘레나 페란테가 쓴 소설 을 원작으로 삼아서 만든 아트하우스 영화. 나로서는 오스카 수상자인 올리비아 콜먼과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로 온갖 악평은 다 받았으나 실제 연기력도 괜찮고 배우 경력도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다코타 존슨이 출연한 영화기에, 꼭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아내에게 보러 가자고 간청했다. 우리 부부가 대낮에 영화를 보려면,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야 했다. 다행히 사랑이 많으신 장모님께서 한나절 이상 봄이를 맡아 주신다고 '먼저' 제안해 주셔서 마음 놓고 다녀왔다. 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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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의 '딸'이 쓰는 성장 일기(D+142)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7. 5. 06:11
참 이상했어요. 하늘에서 축축한 것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아빠가 어린이집에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제가 싫어하는 어깨띠에 올라탄 채 ) 아빠 품에 안겨서 집으로 가기 시작했는데, 일단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났어요. 저는 세상에 태어난지 4개월 밖에 안 되어서 사실 앞이 잘 안 보이거든요. 아무래도 귀를 통해서 세상을 만나고 있는데, 지금까지 들어봤던 소리 중에서 가장 소리가 크게 났어요. 아빠 재채기 소리도, 엄마가 꺄르르 웃는 소리도 이 소리보다는 적었어요. "봄아, 이게 비야. 장맛비. 이런 큰 비는 처음 보는 건가?" 아빠가 미소를 띈 채 저를 내려다 보면서 말하셨어요. 저 축축한 것이 '비'래요. '비'라구요? 이름이 재미있어요. 한 글자라서 기억해 두기도 좋고요. 그렇게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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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의 육아 일기(D+121)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6. 10. 14:42
"선천성 고관절 탈구 소견이 있네요." 우리 딸이 태어난 지 딱 2주가 지났을 때였다. 딸이 태어난 산부인과에서 근무하시는 소아과 전문의께서 우리 부부를 호출하시더니, 소견서(정밀 검사 의뢰서)를 한 장 써 주셨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 보라는 권고를 하시면서. 의사 선생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들어 보니, 우리 딸처럼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엄마 뱃속에서 몸 위치가 거꾸로 있게 되어서, 선천성 고관절 탈구 증상이 잘 나타난단다. 그리고 역시나 우리 딸도 고관절이 탈구되어 있는 소견이 보인단다. 고관절이 무엇인가? 다리와 엉덩이 뼈를 이어주는 관절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선천성 고관절 탈구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고관절이 빠져 있었다는 뜻이다. 부랴부랴 의학 정보를 찾아 보니, 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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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을 많이 한다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4. 21. 07:06
"그게 다~ 옛날 비디오를 틀어 놓는 거에요. 과거는 싹 지나가 버렸는데, 지금은 아무 의미도 없는데, 왜 바보처럼 옛날 비디오를 주구장창 틀어 놓는 거죠? 하지만 계속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법륜 스님, '즉문 즉설' 에피소드에서) 나는 욕을 많이 한다. 물론, 사람들이 있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전혀, 혹은 거의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체면도 지켜야 하고, 왠지 좀 있어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외부 사람들이 없을 때, 특히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욕이 수시로(?) 튀어 나온다: 혼잣말로 하기도 하고, 넌즈시 들으라고 방백처럼 하기도 한다. 내 딸이 똥을 싸면 아내가 나를 부른다. "오빠~ 우리 봄이 똥 쌌어요~" 그러면 내가 오른팔로 딸을 들고 화장실 세면대 앞으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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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54일차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4. 3. 18:09
"아니, 봄이 왔는데, 자기 계절이 왔는데, 봄이 집에만 있는 게 말이 되냐?" 이렇게 말하면서 고운 아내 손을 잡아 끌었다. 봄을 안고 집을 나섰다. 마스크를 쓸 수 없는 아기라서, 얼굴에 가제 수건을 씌웠다. "음냐음냐~."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한 봄 목소리가 저 하늘 햇살만큼 따뜻하게 흘러 나왔다. 이렇게 호기롭게 나왔지만 사람들이 '드글드글' 모여 있는 곳에는 갈 수가 없다. 커피 전문점에서 연유라떼와 제주영귤차 한 잔씩을 사 들고, 인적 드문 곳으로 향했다. 개나리가 거의 핵폭발처럼 터지듯 피어 있는 대로변을 걸었다. 가족 산책을 즐기면서 내 머릿 속에 떠오른 문장: 진짜, 봄이 왔나 봄. 48세 늙은 아빠가, 47세 여전히 고운 아내와 함께 만든 딸이 이 세상에 온 지 만 50일이 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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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 44일차임상사회사업가 이재원입니다/Personal Stories 2022. 3. 25. 17:57
"오빠가 이렇게 거친 사람인 줄 몰랐어요." 솔직히, 나도 몰랐다. 내가 이렇게 거친 사람일 줄은. 누굴 때리거나 힘들게 했다는 말이 아니다. 어느날 문득, 내가 아기를 대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한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아기를 거칠게 다루었다는 말이다. 아니지. 본인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거칠었다는 말이겠지? 나는 결혼할 때부터 아기를 낳을 생각을 했다. 우리 부부가 두 사람 다 나이가 적지 않아서 못 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결혼 결심에 이미 아기까지 들어 있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결혼이란 내가 창설한 가족을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달랐다. 적어도 마음으로는 내가 완전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딸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내가 보..